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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규장각에는 주로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백종의 고지도를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고지도는 19세기에 그려진 목판본 지도인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비록 국내에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선초 권근을 비롯한 문신들의 주도로 원나라지도와 우리나라지도, 일본의 지도를 편집하여 그린 혼일 강리역대국지도는 당대에서는 가장 수준 높은 지도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지도는 조선후기에 구한말에 많이 그려진 세계지도, 민간의 학자들이 그린 <대동여지도>같은 수준높은 전국지도, 회화의 형식으로 그려진 군현도, 변방 방위를 위해서 그린 관방도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진경산수화의 발달에 따른 산수화풍의 도성도가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이런 고지도들은 대동여지도처럼 목판본으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접 그림으로 그린 채색필사본이 대부분이며 그림으로서도 상당히 수준이 높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 보물 1358호인 동여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필사본으로 대동여지도 목판몬의 원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동여도는 철종·고종 연간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필사본의 전국 채색지도로,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되어 있다. 총 23첩으로 맨 앞첩은 목록집이고, 제1첩부터 제22첩까지는 각 지역의 지리가 그려져 있다. 지도는 산천표시와 함께 주현별(州縣別) 경계선을 그어, 주현간의 도로를 표시하였다. 그 바탕 위에 영진(營鎭), 주현(州縣), 진보(鎭堡), 역도(驛道), 목소(牧所), 방면(坊面), 창고(倉庫), 봉수(烽燧), 능침(陵寢), 성(城), 도로(道路), 파수(把守) 등을 표시하였다. 지도상의 거리는 제1첩 1면에 방안을 그려놓고 '방십리매편(方十里每片)'이라고 하여 매방(每方)의 실거리가 10리임을 표시하였다. 동여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동여지도의 필사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밀·정확하게 그려진 훌륭한 지도첩이다. 도화서에서 그린 지도제작 솜씨와도 같은 뛰어난 그림과 글씨, 채색 등이 18세기 후반기 조선지도 제작기술의 높은 수준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출처:문화재청>


대동여지도와 동여도.


아국총도, 18세기 말

정조대의 지도첩인 <여지도>에 수록된 전국지도. 전체적인 윤곽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다. 이 지도는 화려한 색채기 돋보이는데, 특히 녹색의 산줄기와 청색의 하천, 각기 다른 색으로 설채된 팔도의 군현이 눈길을 끈다. 또 해안의 섬들을 아주 자세하게 표시하고 있어, 이 시기 도서 지방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독도가 울릉도 동쪽 동해에 우도라는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어 주목된다.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좌향, 동서 및 남북의 길이, 사방의 끝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그리고 각 도 군현의 수가 기재되어 있다. <출처:규장각>


도성도, 19세기전반에 그려진 지도로 그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당시 서울의 인구와 마을 분포 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따.

<동국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도성도. 궁궐과 관아를 중심으로 그린 일반적인 도성도류와 달리 성 안을 기와집으로 가득 채워 서울의 융성함을 나타냈다. 도성 밖에도 주요도로를 따라 황색 초가가 군집해 있는 큰 마을들이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강, 마포, 용산 지역에 가옥이 밀집되어 있어 18세기 이후 상업 발달에 따른 성저 지역 특히 한강변의 인구 증가가 반영되어 있다. <출처:규장각>


연무대도. 아마도 시흥 부근의 지도인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


진주지도, 19세기. 진주를 마치 위성사진처럼 그려놓은 지도이다.

진주성 일대를 그린 그림지도. 지도이기보다는 오히려 회화에 가까울 정도로 진주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1823년에 건립된 의기사가 촉석루 서편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1823년 이후에 제작된 지도이다. 진주성 내부에는 병마절도사의 군영인 병영의 각종 건물이 포진해 있고 진주목 관아 건물은 성벽 밖의 북쪽 산쪽에 위치애 있다. 근처에는 장터도 표시되어 있으며 감옥의 모습을 울타리로 그려 표현하여 격리된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강가에는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왜적장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던 곳이 의암도 선명히 그려져 있다. <출처:규장각>


지구전후도, 1834년

최한기가 중국의 장정빙이 만든 세계지도를 고쳐 제작한 세계지도 및 천문도. 김종호의 도움을 받아 판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그린 <지구전도>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일부를 그린 <지구후도>, 그리고 천문도인 <황도북항성도>와 <황도남항성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면은 <지구전도>이다. <출처:규장각<

조선시대의 세계지도
전통시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천원지방'의 천지관을 가지고 있었고, 유학의 확립과 더불어 중국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인식하는 중화적 세계 인식이 지배적인 사고로 확립되었다. 조선시대의 세계지도 제작은 이와 같은 '천원지방'의 천지관과 중화적 세계 인식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15세기의 대표적 지도는 140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원나라 지도의 영향을 받은 이 지도에는 원나라의 세력이 미쳤던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그려져 있는데, 지도에 표현된 영역에서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세계지도의 범위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화적 세계인식을 탈피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에 지작된 세계지도들을 15세기에 비해 표현된 지리적 세계가 크게 축소되었다. 즉 유럽, 아프리카, 아라비아 등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중국과 조선을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시켜 그렸으며, 나머지 주변 국가들은 지명만 표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6세기 주자성리학이 사회운영의 원리로 정착됨에 따라 세계 인식의 측면에서도 중국 문화 중심의 화이관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에 기인하다. 17세기 이후 조선에 전래된 <곤여만국지도>, <직방외기> 등의 서구식 세계지도와 지리서는 조선인들의 전통적 세계인식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서구식 세계지도를 통해 중국을 넘어선느 더 넓은 세계를 천하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중화적 지리관을 부정하게 되었다. 또 서양 지리 지식의 도입은 전통적 세계지도 제작에도 변화를 가져와 <원형천하도>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지도가 출현하였다. 19세기 들어 천주교 탄압으로 서학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는 가운데서도 서구식 세계지도의 도입.제작과 서구 지리 인식의 수용은 계속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한기의 <지구전후도>이며, 1860년에는 1674년에 페르비스트가 만든 <곤여전도>를 중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중국과 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지도도 꾸준히 제작되어 전통적인 중화적 세계인식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혼일 강리역대국지도(복제), 1402년에 중국 원나라의 지도와 우리나라, 일본의 지도를 편집해서 그린 지도로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표현하고 있다.

1402년에 대사성 권근,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 검상 이회가 만든 세계지도를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 사이에 필사한 지도.  중국을 중앙에 배치하고 동쪽에는 조선과 일본, 서쪽에는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구대륙 전역을 포괄하여 담아냈는데, 그 중 조선을 다른 나라보다 크게 그림으로써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단에 적힌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중국의 <성교광피도>와 <혼일강리도>, 조선전도, 그리고 일본의 지도를 합하여 새롭게 편집, 제작한 것이라 한다. 15세기 초의 세계지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꼽힌다. 권근의 발문은 <양촌집>에 <역대제왕혼일강리도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출처:규장각>


강화부궁전도, 1781년이후. 강화부 행궁 중 외규장각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숙종의 영정을 모셨던 만녕전


강화부 행궁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 행궁 일대의 궁전 배치도. 국왕의 임시 처소인 행궁, 숙종의 영정을 모셨던 만녕전 등과 함께 1781년에 지어 왕실의 비책, 어제, 어필, 교명, 책보 등을 보관했던 외규장각이 나타나 있다. <출처:규장각>


곤여만국전도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 이탈리아 예수회선교사 마테오리치가 중국에서 명나라 학자 이지조와 함께 제작한 목판본 지도이다. 1603년 북경에 파견되어 있던 이광정과 권희가 이 지도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한국에 최초로 전래되었다. 이후 숙조의 하명에 따라 관상감정을 역임한 이국화와 유우창이 화가 김진여와 함꼐 채색 곤여도를 본떠 다시 제작되었다. 전시된 병풍은 숙종대 제작된 지도의 사진을 확대하여 복제한 것이다. <출처:규장각>


백두산정계지도

1887년 5월 26일 제2차 조.청국경회담에서 조선감계사 이중하와 청의 감계관 발랑 등이 회담 결렬 뒤 양측이 주장한 투문강의 수원을 각각 표기한 채색지도이다. 지도에는 조선과 청 양국이 주장하는 토문강의 수원에 '차수정계'라는 표식을 해 두어 간도 국경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출처:규장각>

규장각 소장 고지도의 종류와 특징
고지도는 과거에 존재했던 세계와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각자료이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예술성 등이 반영되어 있고, 더 나아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관련된 종교적 믿음 등도 그 속에 담겨져 있다. 또한 고지도는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되며 지역간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규장각한국학 연구원은 국내 최대의 고지도 소장처로서 그 수효는 약 220여종, 1,100여책, 6,000매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유일본으로서 정교한 양식과 뛰어난 회화성이 특징이다. 대부분이 채색필사본으로 되어 있고 목판본, 동판본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제작시기는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있으며, 국가 기관에서 제작한 것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도 포함되어 있다. 유형별로는 세계지도 24종, 전도 53종, 도별지도 20종, 군현지도 53종, 외국지도 32종, 관방지도 13종, 기타 26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지도의 여러 유형 가운데 세계지도는 지역간 문화교류와 당시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전도는 조선초기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되었는데,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국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는 민간의 뛰어난 지도학자들이 지도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18세기 중반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거쳐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이어졌다. 군현지도는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인 부, 목, 군, 현을 그린 고을 지도로 현존하는 고지도 가운데에서는 가장 많은 분량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군현지도는 전도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지며, 추상화된 표현방식보다는 회화적인 수법을 가미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시대의 왕도인 서울은 왕권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왕도를 아름답고 품위있게 표현 하려는 노력은 일찍부터 있었으며, 특히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발달과 더불어 뛰어난 도성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관방지도는 국방을 목적으로 군사적 요충지나 방어시설 등을 그린 지도이다. 외적의 침입으로 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를 위해 국경지방의 형세를 파악하거나 요충지에 군사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관방지도들이 제작 .활용되었다. 각종 산성지도, 군사기지를 그린 진보지도 등도 국방 강화의 일환으로 계속 제작되었다. 이상의 지도 이외에도 풍수의 산도, 궁궐도, 사찰도, 천문도 등도 다양하게 소장되어 있다. <출처: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