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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유적_고인돌

포천 금현리 지석묘, 북방식 고인돌

younghwan 2011. 5. 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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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인 지석묘이다.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지석묘는 한반도와 요서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무덤의 형태로 청동기 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보통 강이나 넓은 벌판, 바닷가와 가까운 지역에 많이 남아 있는 지석묘는 북방계통의 탁자식과 남방계통의 바둑판식이 있다. 포천시는 의정부와 경계가 되는 광릉부근부터 북쪽의 한탄강 지류가 흐르는 지역까지는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상당히 넓은 벌판이 있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한반도 북부 동해안과 금강산으로 가는 중요한 육상교통로 중의 하나였다. 금현리 지석묘가 있는 가산면은 옛 포천의 중심지이자, 고구려 산성인 반월산성에서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방세력과 남방세력이 만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금현리 고인돌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전형적인 북방식인 탁자식 고인돌로 그 크기는 비교적 큰 편이며, 고인돌을 만든 수법 또한 강화도 고인돌처럼 세련되고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다. 이 고인돌은 덮개돌, 굄돌, 막음돌이 온전히 남아 있어서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고구려산성인 반월산성과 함께 북방세력들이 오랜 기간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석묘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유물들이 도굴당했다고 한다.


포천 금현리 지석묘. 고인돌이 오래된 고목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 왔다는 느낌이다.


포천 금현리 지석묘. 덮개돌, 굄돌, 막음돌로 이루어전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이다. 


길이 5.5m 큰 돌을 올려놓은 덮개돌.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을 하고 있다.


원래 모습은 아니겠지만 상당 큰 규모인 무덤방. 앞쪽은 뚫려있고, 옆과 뒤를 굄돌과 막음돌로 막아 두고 있다. 앞쪽에 막음돌은 도굴 등의 사유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 무덤방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인 막음돌은 아주 세련되게 가공되어 있다. 전국에 남은 고인돌 중 막음돌이 남아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이 곳 금현리 지석묘에서는 막음돌이 남아 있다. 아마도 후기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뒷쪽에서 본 고인돌


옆쪽에서 본 고인돌


포천 금현리 고인돌


마을 한쪽편에 고인돌을 중심으로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남아 있는 고인돌 중에서는 강화 고인돌과 함께 세련된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고인돌이다.


포천 금현리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는 4~5만개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의 형식은 굄돌을 지상에 세워서 돌방을 이루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무덤방이 땅속에 있으면서 굄돌에 덮개들이 놓인 바둑판식, 맨 땅위에 덮개들이 놓인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금현리 고인돌은 모두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는데, 덮개돌과 굄돌 그리고 막음돌로 조성된 전형적인 탁자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5.5m, 너비 4.8m, 두께 0.65m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옆을 흐르는 우금천 물줄기와 수긱인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았다. 무덤방은 길이 1.7m, 너비 1.4m로 경기북부지역의 지석묘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이미 도굴당해 출토유물은 알 수 없지만, 규모와 석재를 다듬은 솜씨 등을 보아 상당한 기술력을 지닌 집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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