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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국가의 큰 행사나 국왕의 통치행위를 기록한 의궤 중 국가적인 경사를 기록한 의궤들이다. 조선시대 국가적인 경사를 가례라고 하는데 이는 왕실의 혼인, 책봉, 존호, 각종 잔치 등을 말한다.. 국가적인 행사로 왕의 즉위식을 우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 국왕의 즉위는 선왕의 장례 절차의 일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기때문 이에 대해 별도로 기록한 의궤는 없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 큰 행사는 왕비, 왕세자비, 왕세손 등을 책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는 의궤는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왕실의 혼인의식 또한 국가적으로 성대하게 치루는 잔치로 많은 기록과 그림들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행사였다. 조선시대에는 큰 행사를 치를때는 도감을 설치하고 철저한 준비와 절차에 의해서 행사를 치루며, 그에 대한 기록 또한 보고서 형태로 의궤에 남겨두고 있다.

나라의 경사
가례는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존호, 각종 진연, 진찬 등의 의식 예법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가례는 곧 왕실의 혼인 의식, 그중에서도 특히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국왕은 대부분 앞의 왕이 사망하여 장례가 진행되는 도중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국왕의 즉위식을 기록한 의궤는 거의 없다. 왕의 책봉과 달리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왕세손빈을 정하는 일은 경사스러운 분위기로 치루는 국가의 중대사였다. 존호는 대개 왕과 왕비를 각각 상왕과 대비로 존숭하거나, 기념이 될만한 날에 경사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올렸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올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때 어보, 어책, 교명 등이 함께 올려져 왕실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냈다. <출처:중앙박물관>


현종명성왕후가례도감의궤, 1651년(효종2), 현종과 명성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로 당시 행사 장면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남겨 놓고 있다.

현종이 왕세자시 세자빈을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동회연을 치르기 위해 별궁에서 궁궐로 가는 세자빈의 연과 이를 호위하는 행렬을 그린 반차도이다. 왕세자가 사신을 보내 신부를 모셔오도록 하였기 때문에 행렬에 왕세자는 그려지지 않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순조순원황후가례도감의궤, 1802년(순조2), 순조와 순원왕후의 혼례. 그림의 색감이 아주 화려하고, 웅장한 잔치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친영 의식을 마친 후 국왕이 친히 왕비를 궁궐로 모셔오는 장면을 담은 반차도로 왕의 연이 그려졌다. 순원왕후는 19세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서 헌종.철종대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혼례식의 절차
납채례 納采禮: 신부의 집에 청호서 보내기
납징례 納徵禮: 혼인 성립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의식
고기례 告期禮: 혼인 날짜를 알리는 의식
책비례 冊妃禮: 왕비 또는 세자빈을 책봉하는 의식
친영례 親迎禮: 신부를 맞이해 오는 의식
동뢰연 同牢宴: 신랑 신부가 서로 절한 후 술과 음식을 나누는 의식
조현례 朝見禮: 신부가 왕실의 어른들에게 첫 인사를 올리는 의식 <출처:중앙박물관>


왕이 혼인을 청하는 의식, 납채의

하루 전에 액성서에서 어좌를 인정전 북쪽 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보안을 어좌 앞 동쪽 가까운 곳에 설치하여, 항안 둘을 인정전 밖 좌우에, 교서안을 보안의 남쪽에 설치한다. 장악원에서 헌현을 인정전 뜰 남쪽 가까이 북향으로 배설하고 - 진설을 하되 연주는 하지 않는다. 뒤의 경우도 이와 같다 - 협률랑이 깃발을 드는 자리를 서쪽 계단 서쪽 가까운 곳에 동향으로 설치한다. .... <출처:중앙박물관>


헌종효현왕후가례도감의궤, 1837년(헌종3), 헌종과 효현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이다.

헌종이 효현왕후를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동뢰연도에는 왕과 대궐로 들어온 왕비가 서로 절하는 자리와 술과 음식을 나누는 동뢰연의 기물 배치도가 그려져 있다.<출처:중앙박물관>


인선왕후책례도감의궤, 1651년(효종3), 인선왕후 왕비 책봉을 기록한 의궤

효종비인 인선왕후 장시를 세자빈에서 왕비 즉 중궁전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금보와 보통의 규격과 제작에 든 재료를 기록하였다. 도제조는 영의정 김육이 담당하고 일방에서는 옥책을 제작하고 이방에서는 금보를, 삼방에서는 옥책과 금보를 싣고 갈 여련의 제작을 담당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영조왕세제책례도감의궤, 1721년(경종1). 영조 왕세자 책봉. 연잉군(후의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당시 후사가 없었던 경종 임금은 모후인 인원왕후 김씨의 뜻을 받들어 당시 28세인 이복 아우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였다.

왕의 동생을 왕위 계승자로 정하기를 칭하는 상고
신축년(1721) 정언 이정소가 상소하기를
"미리 세자의 자리를 정하는 것은 국가의 큰 근본이요 종사의 지극한 계책입니다. 예로부터 도리에 밝고 지혜로운 임금은 세자 정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은 이가 없으니, 세자의 자리를 미리 세우지 않으면 종사가 맡길 곳이 없고 인심이 매달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황이 내린 중임을 받으시고 선왕의 어렵고 큰 당부를 계승하였으나 춘추가 한창인대도 아직껏 후사가 없으시니 단지 조외의 신민이 근심스럽게 걱정하고 탄식하기만 할 뿐이지 않습니다. 삼각 생각건대 우리 자성(대비)꼐서는 큰 상중의 슬품 속에서도 반드시 걱정을 더할 것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선왕의 혼령께서도 반드시 돌아보시고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조중께서 이미 행하신  명령과 법전이 있으니, 어찌 오늘날 마땅히 쫓아서 행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고 인심은 흩어져 있으니, 더욱 마땅히 나라의 대본을 생각해야 합니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조왕세손책례도감의궤, 1759년(영조 35). 정조 왕세손 책봉.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을 왕세손으로 책봉한 과정을 담은 의궤로 흑칠궤, 죽책의 그림과 재료 등이 기록되었다. 형인 의소세손이 1752년에 3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후, 8세가 되던 해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정조왕세손 책봉옥인함, 1759년(영조 35). 옥도장 보관함.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될 때 받은 옥인을 보관하던 함으로 나무에 어피를 덮어 씌워 만들었다.


정종황세손 책봉옥인, 1759년(영조 35). 정조 왕세손 책봉 옥 도장.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때 내린 옥인이다. 옥인의 인면에는 '왕세손인'이라고 새겨져 있다.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의 책봉례가 거행될 떄 교명과 함께 죽책, 옥인이 내려졌다.


정조왕세손 책봉죽책과 정조왕세손 책봉교명, 1759년(영조 35).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때 내린 죽책이다. 죽책은 책봉 받는 이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대나무에 새긴 것으로 일종의 임명장과 같은 것이다. 정조 왕세손 책봉을 위한 글은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때 내린 교명이다. 교명은 임명받는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책임을 다할 것을 훈유하는 글로서 화려하게 만들었다. 왕실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하사되었으며 이것을 나중에 신위와 함께 종묘에 보관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순왕후가상존호도감의궤, 1787년(정조11).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식. 영조의 계비인 왕대비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가상하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로, 옥보를 채여에 싣고 옮기는 반차도가 그려졌다. 이때 올린 존호는 '영선'으로 여섯번째 존호에 해당한다.


순원왕후가상존호도감의궤, 1841년(헌종7).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린 의식. 헌종이 대왕대비인 손조비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가상할 때의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로 이때 올린 옥보의 도설이다. 존호를 올릴 때 왕과 왕비가 살아 있을 때에는 옥보와 옥책을 올리고, 승하후에는 금보와 옥책을 올렸다.

왕실의 어른, 신정왕후
풍양 조씨 민영의 딸로서 1808년에 태어났으며, 12세 때인 1819년에 손조의 장남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되었다. 세손인 헌종을 낳았으나 불행하게도 부군이 효명세자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왕비는 되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의 신분이 되었으며,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승하한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83세로 장수하면서 헌종, 철종, 고종 대에 풍양 조씨 세도 정치의 중심 인물로 안동김씨의 권력을 견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조대비로도 불린다. <출처:중앙박물관>


정해진찬도, 1887년(고종 24). 신정황후 팔순 기념잔치를 그린 그림. 중앙에 대비자리에 대비의 그림이 없다.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기념하여 경복궁에서 열린 진찬을 그린 것이다. 고종은 1월 13일에 경복궁 근정전에 나아가 대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며 옥책 등을 올렸다. 이를 축하하는 내진찬과 야진찬이 1월27일에 열리고 1월28일에는 고종이, 1월29일에는 왕세자가 주빈이 되어 잔치가 열렸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궁중잔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으로 조선시대 궁중무용인 선유락과 포유락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궁중무용 '선유락'을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선유락은 궁중무용 가운데 가장 화려하며 많은 인원이 출연한다. 배 위에 노는 춤이라는 뜻의 선유락은 실제 배 모양을 만들어 무대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궁중무용 포구락 잘 그려져 있다. 포구락은 고려 문종 27년(1073) 중국 송나라로부터 전래된 춤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무용수들이 포구문 위의 구멍에 공을 던져 넣어 성공을 하면 상으로 꽃을 받고 실패하면 벌로 얼굴에 먹점을 그린다


신정황후 팔순 기념 잔치 축소 모형. 1887년에 열린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 잔치 중 경복궁 만경전에서 열린 내진찬 장면의 일부를 축소하여 제작한 것이다. 당시에 고종임금, 왕비, 왕세자빈, 좌명부의 대표가 차레로 술잔을 올리고 음악과 무용을 공연하였다.


한쪽편에 왕과 왕세자가 앉아서 잔치를 즐기고 있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장면


순원왕후신정왕후존승도감의궤, 1836년(헌종2). 순원왕후와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식을 기록한 의궤이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와 익종의 비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이다. 헌종 즉위 후 순원 왕후는 대왕대비로, 신정왕후는 왕대비로 진봉되었으며, 대왕대비에게는 '문인'의 존호를, 왕대비에게는 '효유'의 존호를 올렸다. <출처:중앙박물관>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1819년(순조19). 효명세자와 세자빈 조씨의 혼례. 금혼과 금혼의 예외조항이 적혀 있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첫째 아들인 효명세자와 세자빈 조씨의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1819년 4월 16일에 금혼령을 내리고 5월 6일에 7인을 초간택 했으며, 19일 재간택을 거쳐 8월 11일에 부시직 조민영의 딸을 삼간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금혼과 금혼의 예외조항
기묘(1819년) 4월 16일 전교하였다. 세자의 관례 후 태묘(종묘) 및 진전(역대왕의 초상화를 모신곳), 비궁(사도세자 사당)에 가서 아뢰고 이를 마치후 가례를 차례로 거행하가 19세부터 13세까지의 처자는 금혼한다.

같은날 예조에서 올린 국혼을 금하는 한도 외로 혼인을 허락하는 경우의 별단.
일. 국성(전주이씨)
일. 성의 본관이 같지 않은 이씨 성
일. 왕대비전(정순왕후:경주김씨)과 동성은 5촌 이내 친척으로 한정
일. 중궁전(순원왕후:안동김씨)과 동성은 7촌 이내 친척, 이성은 6촌 이내 친척으로 한정
일. 가순궁(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반남 박씨)의 동성은 5촌 이내 친척으로 한정
일. 세자의 이성 친척 중 마땅히 혼인을 해야 할 자는 8촌 이내로 한정 <출처:중앙박물관>


인조장렬왕후존승도감의궤, 1686년(숙종12). 장렬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식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에게 존호를 올릴 때의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다. 원 표지를 유지하고 있어서 어람본 의궤 표지의 재료와 장정 방범을 알 수 있다. 초록색 구름무늬 비단으로 표지를 싸고 놋쇠로 변철을 대고 5개의 박을못으로 고정시켰다. 변철의 중앙에는 둥근 고리를 달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순강원상시봉원도감의궤, 1755년(영조 31). 인빈 김씨에게 시호를 올림

원종(인조의 부친)의 생모인 인빈에게 경세라는 시호를 올리고 그 묘소를 순강원으로 봉하고 사당과 묘소를 정비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그 중 묘우조성소의궤에는 신주를 모시는 장인 신장을 비롯해 신탑, 신의의 제작방법, 재료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1769년(영조 36).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가장 유명한 반차도가 이 의궤에 그려져 있다.

정비인 정성왕후와 사별한 영조가 3년 상을 마친 1769년에 16세 된 정순왕후 김씨를 계비로 맞이하는 혼례식을 기록한 의궤이다. 육례의 각 절차에서 비치 할 각종 기물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영조가 정순왕후를 데리고 궁으로 가는 50인에 달하는 <친영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379필의 말과 1,296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출처:중앙박물관>


효명세자책봉의식, 1812년(순조12).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첫째 아들 효명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