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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고조선의 유민을 흡수하다. (영천 어은동, 경주 사라리 출토 유물)

younghwan 2011. 9. 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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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7년에 건국된 신라는 처음 나라를 세울때는 사로국이었다. 진한은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형성한 삼한 중 경상도 지역에 형성되었으며 경주 사로국을 비로하여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들 소국은 그 규모가 작아서 큰 곳이 4~5천호, 작은 것은 6~7백호 정도라고 한다. 이 지역의 소국들은 주변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중 고조선 유민들과 함께 고조선 문화를 받아들였다. 경주 인근에서 발견되는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유적지로 영천 어은동 유적, 영천 용전리 널무덤, 경주 사라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그 중 영천 어은동 유적과 경주사라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청동기와 철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출토유물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국거울과 이를 모방한 청동거울, 동물모양의 띠고리, 한국형동검, 청동꺽창 등으로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기원전.후 시기의 유물들과 큰 차이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성립, 고조선의 유민을 흡수하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습니다.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이름은 사로국이었습니다. 이 무렵 외부의 선진문화도 받아들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조선 문화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첫 머리에는 "조선의 유민이 각 지역에 나누어 거주하여 6촌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진한 6부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신라가 건국되는 기원 전후의 무덤에서는 고조선과 관련된 것들이 자주 발견됩니다. 영천 용전리 널무덤에서 발견된 은으로 만든 칼집장식을 비롯해 경주 입실리에서 발견되 꺽창은 평양 토성동 486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물은 바로 경주지역 고유의 문화입니다. 신라는 자신들의 문화에 고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영천 어은동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어은동의 금호강변에 있는 구릉에서 1918년에 발견되었다. 아무 시설이 없는 구덩이 안에서 많은 청동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최근의 연구로 볼 때, 널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거울과 이를 모방한 청동거울, 동물모양 띠고리, 말과 사슴머리 조각, 그리고 수많은 청동꾸미개가 한꺼번에 발견되었다. 중국거울은 '日光'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과 훼룡문이 새겨진 것이 있다. 중국거울을 모방해서 만든 대부분의 청동거울은 지름이 5.0~6.0cm로 작다. 청동 꾸미개는 뒤쪽에 가는 철사가 가로질러져 있는데, 옷이나 신발의 겉면에 달아 꾸미는데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어은동 발견품은 영남지방의 널무덤 출토품과 비교하였을 때 기원후 1세기 무렵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호랑이모양띠고리. 영천 어은동 유적과 경주 사라라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출토되는 호랑이 모양의 띠고리이다.


청동단추. 청동으로 만든 단추는 북방 흉노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한다.


청동거울.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중국거울을 수입한 것과 이를 모방해서 만든 것들이 있다.


말모양장식, 사슴모양장식, 개구리모양장식. 동물모양의 장식은 후에 흙으로 만든 토우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한반도인의 정신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장식


석궁 방아쇠뭉치. 중세 유럽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석궁은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에서는 고대국가에서 사용되다가 발사속도와 말을 타고 사용할 수 없는 점 등으로 인해서 사용되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석궁은 후에 노(弩)의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수전. 중국에서 한무제때부터 유통되었던 동전으로 고조선시대에 많이 볼 수 있었던 명도전에 비해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청동거울, 기원전 1세기, 경주 조양동 유적은 원삼국시대의 분묘유적으로 조양동의 동서로 뻗은 낮은 구릉지대에 있다. 나무널무덤.독무덤.나무덧널무덤.돌덧널무덤 등 시기를 달리하는 무덤들이 발굴되었다.


청동꺽창, 청동투겁창. 영천 용전리 출토유물, 기원전 1세기


유리목걸이와 수정목걸이, 3세기, 경주 황성동. 

유리로 만든 구슬과 옥으로 만든 구슬을 꿰어 목에 걸었습니다. 금과 은보다는 구슬을 좋아하여 다양한 색깔의 유리로 만들었습니다. 투명한 유리는 만들기 어려워 수정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 사라리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사라리의 낮은 구릉에서 많은 삼한.삼국시대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130호 무덤은 삼한시기의 널무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다. 130호 무덤은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로 다른 널무덤에 비해 뚜렷하게 크다. 부장갱을 갖추고 있으며 묻힌 이의 지위를 알 수 있는 껴묻거리도 많이 출토되었다. 널안에서는 목걸이.청동팔찌.호랑이모양 띠고리와 함께 청동거울.청동검과 칼집 등이 나왔다. 널 바닥에는 촘촘히 쇠도끼를 깔았다. 널 밖에는 칠기, 철기, 청동기, 와질토기 등을 껴묻었다. 사라리 130호 무덤은 널무덤의 마지막 형태로 덧널무덤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인 2세기초에 만들어졌으며,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출처:경주박물관>


청동검, 쇠칼. 경주지역에서의 한국식 동검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과 청동으로 만든 유물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모양 띠고리


청동띠고리와 '8'자모양 띠고리


유리목걸이


유리목걸이


청동팔찌


청동단추


청동거울, 청동팔찌, 청동반지. 경주 사라리 130호 무덤 출토유물, 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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