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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서의 청동기시대는 요동지역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 고조선이 있었다. 청동기시대는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가 있기는 했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전국을 통치하는 국가는 아니고 특정지역만을 세력권으로 두면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던 형태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한반도에는 고조선 이외에도 중요 교통로 및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형태의 소규모 국가가 건설되었는데, 이들 유적은 주로 평야지대와 강이 발달했으면서 한.중.일 해상무역로와 가까왔던 한반도 서남부 지역으로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유적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경주가 위치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는 울산 천전리 각석반구대 암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울산지역과 고령 알터마을을 비롯한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사천 늑도창원 다호리 지역에서 중국과 교류하면서 청동기문화를 발전시켰던 세력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인의 조상으로 생각되는 청동기시대의 경주는 형산강 주변과 안강, 영천 일대의 넓은 농토에서 벼농사를 하던 사람들로 경주가 한.중.일 해상무역로와 거리가 있었고, 큰 강이 없었던 까닭에 청동기시대에는 큰 세력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힘든것 같다. 이런 까닭에 경주에서는 청동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되지는 않고 경주 입실리나, 황남동 등지에 일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경주지역은 해상무역로에서 발전했던 세력들을 위협하기고 하고, 이들로부터 물품을 수입하던 수요처 역할을 했던 변방 세력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경주
청동기시대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신라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이전의 신석기시대와 달리 일년 단위의 생계전략을 세웁니다. 이런 변화는 벼농사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벼농사는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한 곳에 오랜 동안 자리 잡고 벼를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년 단위의 생계전략이기 때문에 흉년이 들 경우 그 다음 해에 먹을 것이 모자라게 되는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가 생기고 이를 관장하는 제사장이 나타납니다. 제사장 외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과 거둔 곡식을 나누어 주는 결정권을 가진 사람 등이 나타나 계층사회로 바뀌어 갑니다. 또한 가을에 거둔 쌀을 갈무리하기 위한 창고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방어시설 등이 나타납니다. 청동기시대에 이 땅에서 농사를 짓던 이들이 바로 신라를 건국한 사람들의 선조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청동기시대의 간석기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도끼, 끌, 자귀 같은 나무를 다듬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농사에 사용하는 도구는 거의 나무로 만든 것이었고 날이 무뎌지면 다시 갈아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간돌검(마제석검), 청동기시대


돌검(마제석검), 청동기시대, 김해


바퀴날도끼와 돌창, 청동기시대


반달돌칼, 청동기시대, 경주황성동/대구


돌괭이, 청동기시대


항아리(경주 충효동/경주 구정동)


구멍무늬 바리(경주황성동)


바리(경주 평동), 항아리(경주 황성동)

한국식동검문화
좀 더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날이 곡선적인 요령식 동검 대신 좀 더 직선적인 한국식동검을 만들었습니다. 이 동검을 가지고 전쟁에나가면 더 많은 적을 물리칠 것이며, 더 많은 노획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요령식동검, 기원전 8~7세기, 청도 예전동. 전형적인 요령식 동검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출토되고 있는 유물이다.


한국식동검, 기원전 4~1세기, 경주 구정동/평양. 요령식 동검에 비해서 직선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청동기문화가 발달했던 평양지역과 한반도 해안지역을 따라서 형성된 해상무역로에 발달한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경주에서 출토된 것은 이들 지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청동투겁창, 기원전 4~1세기, 경주 입실리/평양. 청동칼이 의식적이 용도가 있었던데 반해서 실제적으로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한 무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청동투겁창은 그리스로 대표되는 지중해지역을 비롯해서 많은 고대국가에서 사용한 무기로 생각된다.


청동꺽창, 기원전 2세기, 경주 입실리


꺽창집부속구, 기원전 1세가, 대구 평리동


칼집부속구, 기원전 1세기, 대구 평리동


청동말방울, 기원전 1세기, 대구 평리동


닻모양 청동방울, 기원전 2세기, 경주 입실리. 청동방울은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출토되는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를 비롯하여 시베리아지역의 샤먼들이 사용했던 주술적인 의미를 갖는 제기로 하늘이나 혼령과 방울소리를 통해서 소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