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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인계층 중 외교문서작성과 통역을 맡았던 사역원 하급관리인 역관과 더불어 이들 중인계층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직종은 관상감에 소속되었던 음양관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천문을 관측하고 일식과 월식의 예보, 역서의 간행을 맡았던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가진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많은 천문도와 실록에 나타난 천체현상에 대한 기록 등으로 보아서 상당한 수준의 천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아전에 속했던 하급관리로 서리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양반들이 가지기 힘들었던 행정업무 능력으로 관아를 끌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관아서리들이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많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까닭에 오늘날 중인계층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며 이런 인식이 오늘날 공무원사회에 대한 일반인이 인식으로 이어진 듯 하다.

 화원은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로 같은 중인계층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다른 중인계층에 비해서 천시되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지식인 사회에서 예체능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반면에 이들 화원들은 권문세가나 부자들의 초상화, 행사도 등을 그려주면서 얻은 부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웃대문화를 이끌어간 이들은 누구인가?
중인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계층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의 신분제도는 양인과 천인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점차 양반.중인.평민.천민의 네 계층으로 분화되어 갔다. 중인은 좁게는 역관과 의관 등 기술직 중인을 말하며 넓게는 기술직 중인 이외에 경아전.서얼 등을 포함한다. 기술직 중인은 중인 계층의 핵심으로 이들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기술을 전수하며 직업을 세습하였다. 경아전은 중앙 관청에서 일선 행정을 맡아보는 실무자로 녹사와 서리가 이에 해당한다. 서얼은 양반의 첩 자손으로 '경국대전'의 '한품사용조에 의하면 2품이상 고급 관원의 서얼은 기술직 관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기술직 중인과 서얼은 같은 관청에서 기술직 관원으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함께 묶어 중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밖에 조선 후기에는 향촌에 거주하는 교생을 비롯하여 향리를 중인으로 보기도 하였다. 중인은 다른 계층에 비해 수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직업적 특수성과 행정실무의 필요성에 의해 갖추어진 교양과 전문적 지식으로 예술과 문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며 당대의 문화를 선도하는 주요계층으로 성장하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음양관
음양관은 관상감이라는 기관에 소속된 관원을 말한다. 관상감은 천문학.지리학.명과학(운명과 길흉을 다루는 기관)의 세 부서와 부속기관인 금루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음양과는 관상감에서 음양학을 일정기간 공부한 생도들이 응시할 수 있었는데, 초시와 복시 2단계의 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음양관 역시 역관.의관과 마찬가지로 정3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음양관 중 가장 높은 자리인 삼력관은 17세기 시헌력 시행 이후 신설된 직제인데, 음양과를 통해 급제한 사람만이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정조 때 관상감 제술관이었던 김영은 음양과 출신이 아니었으나 역대 역법과 의기의 제도 및 변천을 상세하게 설명한 <국조역상고>를 편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삼력관으로 제수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기록이 <일성록> 1796년(정조20) 4월 25일 기사에 있다. 관상감 천문학 부서 관원들이 일상적으로 맡았던 일은 역서의 편찬과 간행, 천재변이의 관측과 보고, 일식과 월식의 에보와 구식례(일식에서 태양을 구하는 의식) 등이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역서의 편찬과 간행이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혼천전도, 18세기


천세력, 철종년간 간행본, 1849~1863. 정조의 명에 의하여 관상감에서 편찬.간행한 역서이다.


신법보천가, 이춘양, 1862년. 철종 13년에 관상감인 이준양이 편찬한 천문서로 이책은 음양과의 시험과목이 되었다.


윤도, 조선후기. 조선시대 천문을 관측할때 위치와 방향을 잡기 위해 사용한 도구로 보인다.


해시계,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휴대용 해시계들이다.

화원
화원이란 궁중에서 그림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던 관청인 도화서에 소속되어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화원은 역관.의관 등 다른 기술직 관원들보다 천시되었다. 조선초기에는 도화원으로 불렸다가 성종연간(1469~1494)에 도화서로 강등되면서, 소속 화원들의 직위도 별좌에서 별제로 되었다. 이후 18세기 영.정조대에 대내외적인 행사에서 화원들의 활약이 부각되면서 도화서의 직제도 증설되었다. 화원은 기술직 관원을 뽑는 잡과를 통하지 않고 별도로 운영되었던 취재를 통해 뽑히거나, 천거라고 하는 양반 관료나 유력 가문의 추천으로 뽑혔다. 1783년(정조7)에는 정조의 명에 따라 자비대령화원 직제가 공식적으로 신설되었다. 자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 중 별도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로 규장각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화원의 업무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어진의 제작이었으며 왕가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도 화원의 몫이었다. 이밖에 의궤의 행렬도나 기물, 궁궐도, 진찬도 등 왕실의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양반 가문의 수요에 부응하며 그림 제작을 하기도 하였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경수연도, 1655년


경현당도, 경현당어제어필화재첩, 작가미상, 1741년. 1741년(영조17) 6월 22일 영조가 경희궁 경헌당에서 승정원과 홍문원의 관원들을 초견하면서 춘추의 강독을 마쳤다는 말을 듣고 이에 선은을 베푼 모임을 기록한 첩이다.


언성군 김중만 초상. 이들 도화서 화원들은 국왕의 명에 따라서 또는 사적으로 그린 많은 초상화들을 오늘날 남겨 놓고 있다.

경아전
경아전은 중앙관서의 서리를 말하는 것으로 녹사와 서리 등으로 구분되었으며, 행정 말단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하급관리였다. 이들은 양반들이 천시했던 회계나 문서에 관련된 중앙관서의 실무를 도맡아 했기에 행정에 능통하고 어느 정도 문학적 소양도 가지고 있었다. 선발.충원 방법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과거가 아닌 취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권세가의 청탁을 통해 권세가의 겸인(청지기)들이 경아전으로 진출하게 되어 취재조차 없어지게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중앙의 기관 가운데 권력이 집중되어 있거나 국가와 왕실의 재정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관청을 중심으로 서리직의 세습화 경향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집안으로 영월엄씨, 선산백씨, 남원유씨 등이 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홍치년간 이훈 고신, 1501년. 이 문서를 작성한 문씨 성을 가진 사람의 서명이 남아 있어 당시 서리의 업무형태를 알 수 있다.

1501년 12월 27일 병조에서 발급한 인사 문서로서 이훈의 품계를 문순부위(종7품)에서 병절교위로 올린다는 내용이다. 이 문서의 중간 하단부에 <書吏 臣 文 (서명) > 부분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당시 병조에 소속된 문씨 성을 가진 서리가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선전기 인사문서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기재 방식이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유서필지, 19세기말~20세기초. 조선시대 공문서 작성지침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유학자와 서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조선시대 공문서의 서식 등을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행정 사무용 지침서이다. 상언.단자.고목.문권 등과 같은 공문서들의 서식, 이두사용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행정업무를 담당한 목민관, 서리들 뿐 아니라 일반 평민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참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이관요처, 19세기. 실무적인 문서작성 용례이다.

조선후기에 작성된 필사본 자료로서 형조소속 이관, 즉 하급 관원들의 실무에 필요한 문서작성 용례들이 수록되어 있다. 초기, 계 등의 보고문서, 공사, 관 등의 업무협조 및 통보문서, 조인 심문문서 등의 다양한 용례가 사례별로 기재되어 있다.<출처:서울역사박물관>


이학지남, 1458년

이학지남은 일종의 행정.법률 사전으로 내용은 크게 세부류로 나뉜다. 공문서에 사용하는 행정용어에 대한 해석과 법률용어에 대한 해석, 그리고 관리들의 행동지침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관리의 덕목과 자질, 모범 관리들의 사례 등도 적혀 있다.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기술직 관청 직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