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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토기는 4세기 후반에 다리에 엇갈린 구멍을 뚫은 굽다리토기가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되는데 회전하는 물레를 사용하여 형태를 빚은 뒤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서 얇고 단단한 그릇을 만들게 된다. 신라토기는 그릇 종류로 큰 항아리, 굽다리접시, 잔, 그릇받침 등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가야 토기에 비해서 직선적인 것이 특징이다.

 4~6세기에는 경주 월성 북서쪽으로 많은 왕이나 귀족층 등의 무덤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들 고분에선 금관을 비롯한 금속세공품과 더불어 상당히 많은 양의 토기들이 같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황남대총에는 4천여점의 토기들이 껴묻거리로 묻혀 있었다. 고분에 묻힌 토기들은 다량의 껴묻거리를 만들기 위해 대량생산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용하기 위한 내구성 등을 고려했다기 보다는 모양새를 갖추어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제작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신라의 대표적인 토기인 굽다리접시는 그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의 높이가 낮아지고 크기도 작아져서 형태로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표본이 되기도 한다.

단단한 토기를 대향 생산하다.
사람들은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약 2천 년 전에는 새로운 토기문화를 받아 들여 더욱 발전한 그릇을 만듭니다. 회전판을 이용하여 빚은 뒤 밀폐된 가마에서 구웠습니다. 이처럼 토기를 구우면 얇으면서도 더욱 단단한 토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점차 더 높은 온도로 구워내어 토기를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전문 공방을 만들어 대량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4세기 후반 다리에 엇갈린 구멍을 뚫은 독특한 형태의 굽다리 그릇과 함께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4~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에는 매우 많은 토기가 부장된 것이 특징입니다. 황남대총 같은 왕릉에는 한 무덤에 삼천여점을 묻기도 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황남대총에 껴묻거리로 묻혀있던 토기들. 약 4천여점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토기와 덩이쇠 등이 같이 출토되었다.


황남대총 출토 유물

4~6세기의 신라토기
신라토기는 영남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이전 시기의 토기문화에서 출현합니다. 빠르게 회전하는 물레를 사용하여 빚은 뒤 굴가마에서 1,000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서, 얇고 단단한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4세기 후반에 다리에 엇갈린 구멍을 뚫은 독특한 형태의 굽다리그릇이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합니다. 굽다리그릇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의 높이가 낮아지고 전체 크기도 작아져서 6세기 중엽이 되면 낮은 굽이 붙게 됩니다. 5~6세기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매우 많은 토기가 부장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황남대총 같은 무덤에는 수 천점을 묻기도 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 월성로 가-6호 무덤출토, 6세기


경주 월성로 가-13호 무덤출토, 4~5세기


경주 월성로 가-1호 무덤출토, 6세기


경주 인계리 3호 무덤출토, 5세기


안계리 유적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5세기

 



황남대총 남분 출토


경주 천마총 출토, 5~6세기


천마총 출토


계란.장군, 6세기, 천마총


경주 천마총 출토, 5~6세기


독무덤과 출토명기 , 5~6세기, 경주 인왕동


독무덤과 출토명기, 6세기, 경주 계림로


수레모양 토기, 6세기, 경주 계림로

계림로 25호와 수레모양토기
1973년 대릉원 동쪽의 계림로를 새로 내는 공사 중에 56기의 신라 무덤들이 노출되었습니다. 이 중 계림로 25호라고 이름 붙여진 무덤에서는 수레모양토기가 출토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계림로 25호는 항아리 두개를 이어서 만든 독무덤으로 수레모양토기를 비롯해 흙으로 만든 구슬, 소형그릇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수레는 바퀴와 차체, 끌채 등을 자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살이 촘촘한 바퀴는 중앙에 차축을 끼우기 위한 구멍이 있습니다. 차체는 양 옆과 뒤쪽을 판으로 막았고, 판에 장식띠를 덧대고 못을 박은 모습이 매우 정교합니다. 차체 바닥에는 차축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차체 양 옆에서 길게 뻗어 나온 끌채는 부러져서 원래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수레는 여기에 함께 묻힌 소형의 유물과 함께 무덤 주인공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장송의례용으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신라인들이 어떤 수레를 사용했는지를 잘 알려 주는 것으로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합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