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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고분에서는 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관총과 서봉총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기는 했지만, 70년대에 시범적으로 발굴한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는 당시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것들을 금.은으로 만들어서 무덤의 껴묻거리로 묻은 화려한 금.은 그릇들과 서역에서 수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 제사의식에 사용하는 청동제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주로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천마총을 비롯한 여러 고분들에서 출토된 것들은 경주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 중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 중 금으로 만든 그릇들은 껴묻거리용으로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금동제나 은으로 만들 것들은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과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제 그릇들은 청동기시대 출토 유물과 후대에 사용했던 예를 보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제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중 청동자루솥은 전형적인 제기로 볼 수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금.은 그릇
신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화려한 금.은그릇들이 출토되었다. 종류는 굽다리접시, 사발, 합, 국자 등 매우 다양하다. 금.은굽다리접시는 흙으로 빚은 굽다리접시와 모양은 똑 같으나, 하트모양의 날개가 달려 있어 매우 화려하다. 이러한 금.은그릇은 실생활에 사용하였다기보다는 대형무덤에 껴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경주박물관>



금굽다리접시 (보물 626호), 5세기,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으로 만든 유물로 토기로 만든 굽다리접시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하트모양의 장식을 달아서 조형미가 빼어난 유물이다.

황남대총 북분 금제고배 (보물 626호)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굽다리 접시(고배)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높이 10㎝, 주둥이 지름 10㎝, 무게 169g의 금제 굽다리 접시는 북쪽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토기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따라 반구형 몸통 밑에 나팔형 굽다리를 붙인 전형적인 양식이지만, 장식이 가해지고,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용품이라기 보다는 껴묻거리(부장품)로 제작된 듯하다. 아가리 부분은 밖으로 말아 붙였고, 나뭇잎 모양 장식 7개를 2개의 구멍을 통하여 금실로 꿰어 달았다. 굽다리는 작은 편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사각형 모양의 창을 어긋나게 뚫어서 장식하는 신라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하고 있다. 찌그러진 부분이 많으나 발견된 경우가 드문 금제 굽다리 접시이다. <출처:문화재청>


금굽다리접시(5세기, 황남대총)와 금동합(6세기, 천마총)


금사발, 5세기, 황남대총


은합, 5세기, 황남대총. 은으로 만든 식기는 오늘날까지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당시 귀족층에서 실생활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은굽다리접시, 5세기, 황남대총


은국자, 5세기, 황남대총


부리달린 은단지, 5세기, 황남대총. 이런 형태의 유물은 초두라 불리는 청동제 제품과 그 기능이 비슷해 보이는데 일종의 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유리그릇은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보이지 않고, 5~6세기에 축조되었던 경주지역의 신라왕릉급인 황남대총.금관총.금령총.천마총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리제품은 유라시아대륙을 건너 중국과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계리 출토품 등 일부 제품은 신라에서 제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최근에 조사된 합천 옥전고분에서 금령총의 유리그릇과 비슷한 것이 출토되어,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른 문화의 확산을 엿볼 수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유리잔(보물 620호), 5~6세기, 천마총.서봉총.안계리 등. 신라를 대표하는 일반인들이 생각을 뛰어넘는 유물인 유리잔이다. 주로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역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그 구입경로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많은 것 같은데, 당시 국제도시였던 장안에서 구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천마총 유리잔 (보물 620호)
천마총은 경주 황남동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1973년 발굴하여 금관, 팔찌 등 많은 귀중한 유품들과 함께 천마 그림이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유리잔은 천마총 무덤 내에서 발견되었는데, 높이 7.4㎝, 아가리 지름 7.8㎝의 크기이다. 원래 2개가 발견되었으나 다른 하나는 복원이 불가능 할 정도로 파손되었다. 청색의 투명한 유리제로서 기포가 보이지 않고 아가리 부분 등에서 약간 은화(銀化)된 부분이 있을 뿐 높은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잔의 두께는 일정하지 않고, 아가리는 약간 밖으로 벌어져 있다. 전체 형태는 U자형을 이루며, 바닥은 원에 가까우나 닿는 자리만 안으로 불규칙하게 눌러서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표면에는 일정하지 않은 길이로 굵은 세로선을 그어 돌리고. 그 밑으로는 바닥만 제외하고 부정형의 원형 무늬가 연속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원형 무늬는 깎아낸 것이 아니고 만들 때 굳어지기 전에 눌러서 만든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야광조개. 야광조개는 남방지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금동제 고배와 야광조개 국자, 6세기, 천마총

다양한 그릇
일반 백성들은 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을, 왕족과 귀족들은 금은이나 청동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였습니다. 멀리 서역에서부터 가져온 유리그릇은 당시 최고로 귀한 그릇이었습니다. 재질의 차이뿐 아니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그릇이 만들어졌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청동자루솥, 5세기, 서봉총. 자루솥은 물.술 등 액체로 된 음식물을 데우는 그릇이다. 이 자루솥은 뚜껑에 연꽃잎장식이, 자루끝에는 나무잎을 물고 있는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비슷한 형태의 보물로 지정된 청동자루솥도 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봉총에서 출토된 초두를 전시하고 있다. 세발달린솥과 함께 중국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제기이다.


청동긴목항아리, 5세기, 황남대총


청동세발솥, 5세기, 황남대총,


청동합, 5세기, 인동총


청동다리미, 5세기, 황남대총


주변 나라를 아우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군사력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다른 세력들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력이었습니다. 신라는 일찍부터 주변 지역을 차지해가며 통치하고자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달려 직접 통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지배세력을 인정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지방의 주요 무덤에서 발견되는 화려한 금제품입니다. 금동관이나 귀걸이, 큰칼 등 다양한 위세품들이 수도인 경주를 중심으로 그 신분에 따라 지방의 유력 세력에게 주어졌습니다. 금동관은 대구, 경산, 의성, 부산 뿐 아니라 강르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신라의 영향력이 미친 범위를 알려줍니다. 이처럼 신라는 지방 수장들의 권한을 인정해 주는 정치력으로 지방을 점차 차지하며 고대국가 신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