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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충주 억정사대지국사비(보물16호), 조선초에 세워진 간략한 형식의 비석

younghwan 2011. 10.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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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옛 억정사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6호로 지정된 대지국사비이다. 이 비는 고려말 고승이 대지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대지국사는 양주 출신으로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의 제자로 출가하여 당대의 고승인 정혜국사, 수자화상에게 배웠다고 하며, 주로 공민왕 때 왕실과 가까웠다고 하며 1283년에는 왕사로 책봉되어 원응존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불교 역사나 사상에 큰 영향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고승으로 명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승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은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함께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승탑이 원래 없었는지 훼손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탑비만 남아 있다. 이 비는 거북받침돌이나 이수가 없는 단순한 형태의 돌에 글자를 새겨 놓은 단순한 형식으로 14세기 비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억정사가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비석만 남아 있고, 옛 절터는 농가에서 과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석이 남아 있는 절터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면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석재나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추정하고 있다. 억정사 절터가 위치한 엄정면 지역은 남한강 이북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와 원주, 제천을 연결해주는 교통로와 가까이 하고 있어서 고려시대 이 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많이 들렀던 것으로 보인다.



보물 16호로 지정된 충주 억정사대지국사비. 거북받침돌이나 이수가 없어고 양질의 석재를 사용하지 않아서 조형미는 떨어지는 편이나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또렷히 남아 있고, 동시대 비석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비석이다.


비석에는 비의 건립 연대나 대지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주인이 대지국사임을 상단부에 큰 글씨로 새겨놓고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아주 또렷하게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거북모양의 받침돌을 사용한 이전의 비석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간략하된 받침돌을 사용하고 있다.


비각에 모셔진 억정사대지국사비


대지국사비가 있는 억정사 절터는 남한강 이북 충주지역과 원주를 연결해주는 교통로에 있는 마을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절터의 모습으로 볼 때 억정사는 그리 크지 않은 중간 정도 규모의 사찰이었던 같다.


과수원과 농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 절터에서 옛 억정사지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억정사 절터에서 내려다 본 마을. 충주에서 원주로 연결되는 교통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억정사 북쪽편 원주로 향하는 길


억정사 절터에 있는 사과 과수원.


가을이라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큰 길에서 보이는 억정사 옛 절터가 있는 마을. 멀리 언덕에 비각이 보인다.



억정사대지국사비(보물16호),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고려때 고승인 대지국사의 비로 조선 태조 2년(1393)에 세워졌다. 비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비의 건립 연대 및 대지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대지국사는 양주 한씨로 본명은 찬영이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 충주에서 태어나 14세에 중흥사에 들어가 32세때부터 62세로 입적한 공양왕 2년(1390)까지 고려 왕실을 가까이에서 섬겼다. 이 비는 거북모양 및 용머리가 없는 14세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보각국사 정혜원융탑비와 모양이 같다. 주변에 기와조각이 많이 나오고 있고 석재 등이 흩어져 있어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대지국사의 부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충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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