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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교동도는 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지금은 강화군에 속한 마을이지만 삼국시대때부터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화와는 별개로 고목근현이라 불렀으며 신라경덕왕때 교동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국방상의 중요성으로 병자호란 이후에는 수영이 남양에서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633년에는 삼도통어사가 설치되어 경기도.황해도.충청도의 수군을 총괄하던 고장이다.

 교동도에 지금은 옛 교동부 관아의 흔적은 읍성을 쌓았던 성곽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고,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 남쪽 기슭에 관아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 향교가 남아 있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모셨던 유서깊은 향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한강 입구가 보이는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영조때 관아와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교동향교는 후묘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과 동.서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강화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교동향교 전경. 경사진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대성전이 높은 곳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


교동향교 들어가는 길


교동향교 외삼문


외삼문 앞에 만들어 놓은 방형의 연못


향교 앞쪽으로는 교동도호부 관아가 있었던 교동읍성이 있고, 앞쪽으로 바다와 석모도가 보인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향교에 심어진 고목


향교 강학공간 중심 건물인 명륜당. 앞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교동도 겨울 날씨가 추운 까닭에 대청마루에 문을 달아 놓고 있으며, 건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뒷쪽에서 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인 서재. 바닷바람에 세차게 부는 고장이라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동재와 마찬가지로 서재도 'ㄱ'자형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동재 건물 바깥쪽 굴뚝.


노룡암은 원래 교동현 동헌 북쪽뜰 층계 아래에 있었는데, 위에는 울창한 숲속에 늙은 소나무가 있고 아래에는 숙단이 있었다. 1717년(숙종43)에 충민공 이봉상이 노룡암이라고 3자를 지었는데 1773년(영조 49)에 그의 손자 달해가 글지은 것을 새기었다. 1820년(순조 20)에 가서 통어서 이규서가 "호거암장군이 풍기를 깨끗이 하였다'는 7자 글자를 새기었다. 1987년에 교동향교로 옮겼다. <출처:강화군청>


명륜당 뒷편에 심어둔 은행나무


제향공간이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원래 교동향교에는 고려 충렬왕때 안향이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다가 이 곳에 모셨다고 한다.


대성전 앞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서무


대성전 담장


대성전 바깥쪽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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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향교,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조선 영조 17년(1741)에 지부 조호신이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남쪽 기슭으로 옮겼다. 향교 안에는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의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좌우에 선현들을 제사지내는 동.서무를 두었고,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는 명륜당과 동.서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제기고, 내.외삼문이 있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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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 교동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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