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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고도이다. 또한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영남지역의 중심도시로 동경 또는 경주라고 불려왔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경주는 종2품의 외관직인 부윤이 고을 수령인 지금의 직할시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에 부(府)가 설치된 도시는 한성과 평양,경주에 먼저 설치되었고 함흥과 전주, 큰 도시였던 의주,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경주는 조선시대에도 큰 고을을 유지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흔적으로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있는 경주읍성과 월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주향교를 들 수 있다.

 현재 경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경주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반촌이 형성되어 있는교촌마을로 신라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원래 신라 신문왕에 682년에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자리로 고려시대에는 향햑이, 조선시대에는 향교가 자리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현재 경주향교의 모습은 조선 성종 때 성균관을 본떠서 앞쪽에 대성전을 두고 뒷쪽에 강당인 명륜당을 둔 전묘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그 중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주심포계 건물로 경북에서는 향교 건축물로는 규모가 가장 큰 건물로 최근에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보수지역인 지역인 경주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곳에서는 전통결혼식을 자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곳과는 달리 대성전 마당을 개방해 놓고 있었다.



경주향교 전경. 전면에 공자와 선현들을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를 두고 있고, 뒷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두고 있다.


경주향교 외삼문. 이 출입문을 잠겨 있으며 향교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동쪽편 고직사를 통해야 한다.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하는 경주향교 대성전. 앞면 3칸, 옆면 3칸에 웅장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대성전 기단부.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하고 있는데, 아마도 경주지역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건물에서 사용했던 석재를 가져다가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단에서도 낡고 오래된 느낌을 주고 있느데, 이 또한 절터나 건물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대성전 앞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서무


대성전 내삼문


대성전 뒷편 흙담


대성전 뒷편으로 강학공간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심이 되는 건물인 명륜당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명륜당 앞 마당에서는 향교에서 주관하는 전통혼례식이 자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


동재 뒷편으로 서적을 보관하던 존경각이 있다.


향교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물던 고직사


향교를 관리하는 사무소라고 하는데 고직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결혼식 준비를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고직사 마당의 오래된 우물


명륜당 앞 마당에서 전통혼례식을 올리는 장면


건물 곳곳에서 옛 건물터에서 사용했던 석재들을 볼 수 있다.



경주향교, 경주시 교동
경주향교는 본래 신문왕 2년(682)에 창설한 국학(지금의 국립대학)이 있던 곳이며, 고려시대에는 향학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향교로 이어져 지방 교육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해 왔다.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이며,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서재는 강학을 하는 곳이다. 경주 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성균관을 본 따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선조 37년(1604)에 동무.서무를 광해군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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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경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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