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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방어상 취약했던 부분을 보강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산성 방어시설을 보완하는 것과 함께 행정적으로도 산성내 행궁을 설치하면서 광주목 관아도 산성내로 옮겨지면서 행정중심 도시로서의 기능도 함께 했다. 광주목사는 원래 외관직 정3품의 상당히 높은 관직이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목이 광주부로 승격되고 고을 수령도 오늘날 장.차관급에 해당되는 광주유수로 승격되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별도의 군사조직인 수어청이 정조대에 남한산성으로 옮겨지면서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남한산성내 동쪽편에 위치한 행궁은 광주부 수장으로서 행정의 중심지였다면 산성내 중앙도로 북쪽편에 위치한 연무관과 주위 건물들은 군사조직인 수어청 산하 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내에는 평상시 약 천명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승병들을 위한 사찰이 7개, 산성내 마을에는 약 1천호 4천명의 주민이 상주하였다.



남한산성 내 관아건물 중 현재까지 그 원형이 남아 있는 연무관. 원래 연무당이라 부르던 것을 숙종대 연병관, 정조대에는 수어영이라 개칭했으나 통칭 연무관이라 부른다.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높은 기단 위에 건물이 세워져 있어서 웅장해 보인다. 수원 화성 연무대의 경우는 사방이 뚫려 있는 정자와 같은 형식을 하고 있으나, 남한산성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내부는 열린 공간이지만, 삼면에 판문을 달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무관 현판과 주련


연무관 내부는 칸막이를 하고 온돌을 설치한 일반적인 관아 건물인 동헌과는 달리 내부가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들보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연무관은 군사조직인 수어청 수사가 병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는 공간으로 수어사를 겸직했던 광주유수 근무처가 행궁내에 있었기때문에 이 곳에서 관리들이 상근했던 곳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수원화성의 연무대와 마찬가지로 군사훈련 지휘소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수원화성 연무대와 달리 바람을 막기 위해 양쪽에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연무관 주춧돌과 섬돌


남한산성 연무관


연무관 들어오는 길에는 남한산성과 그 역사를 같이한 오래된 고목을 볼 수 있다.


연무관 동쪽편에는 산성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보통 옛 관아가 있던 곳에서는 객사가 초등학교로 변한 경우가 많은데 원래 이 곳에는 수어청 소속 관아 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남한산성 옛 지도에는 이곳을 영고(營庫)라 표시되어 있으며, 여러 건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무기고를 비롯하여 군인들이 근무하던 장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산성초등학교


연무관 올라가는 길


연무관 입구는 오일장이 열리던 장터였다한다. 조선말까지 성내에 읍지소가 있었고 민가가 일천호나 되는 큰 마을이었다. 주민들간에는 지금도 이곳을 장터라 부른다.


장터가 들어섰던 연무관 앞 큰 길.



연무관은 군사들의 훈련을 위하여 건립한 곳으로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연무당이라 부르던 것을 숙종 때, 수어사 김좌명으로 하여금 다시 짓게 하고 연병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정조 때에는 수어영이라 개칭하였으나 그 뒤에도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연무관 규모는 약 330m²로 규모가 크고 육중하며 높은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건물내부 가운데 있는 대들보에는 전,후면에 용을 그렸고 측면쪽 대들보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출처:광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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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 연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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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두도인 2011.12.23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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