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지역박물관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슬라브민족과 키에프 루스(키예프 공국)

younghwan 2012. 3. 6. 21:19
반응형


 슬라브는 현재 동유럽과 유라시아대륙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로 러시아.폴란드.체코.세르비아 등에 살고 있다. 이들 민족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 종교, 언어 등에 따라서 카톨릭 신자가 많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을 서슬라브인, 유라시아대륙 북부의 러시아,우크라라이나, 벨루로시인들을 동슬라브인, 발칸반도 주변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인 등을 남슬라브인이라고 한다. 슬라브인은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훈족의 대이동에 따른 연쇄적인 민족이동이 있었던 3세기까지는 역사에 전면에 등장하지 않다가, 유라시아 초원에서 훈족을 비롯한 유목민 세력이 약화되던 6~10세기 유럽역사에 급격히 드러났던 민족이다.

 키예프공국이라고 불리는 키에프 루스는 880년경부터 12세기까지 흑해북안 현재의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대표적인 슬라브민족이 세운 국가로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벨루로시의 기원이 된다. 키에프 루스는  블라디미르 1세때 비잔틴으로부터 동방 정교를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서슬라브를 제외하고 슬라브민족을 대표하는 종교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동방정교가 전파될때 같이 전해진 키릴문자는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슬라브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공식문자라고 한다. 키에프 루스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다가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하였으며, 이후 우크라이나, 벨루로시, 러시아로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던 유라시아 초원유목민의 땅을 물려받은 케에프 루스는 스키타이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기술을 이어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상당한 수준의 금속가공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슬라브와 키에프 루스, 9~14세기
6~10세기의 유럽 역사에 존재감을 급속히 높힌 것은 슬라브민족이다. 슬라브의 '대확산'도 이 시대의 일이었다. 흑해에서 발트해까지 영역을 넓힌 강대국 키에프 루스의 유물은 화려하고 우아한 점이 특징이다. 루스의 건국은 882년의 일로, 그 때 노브로로드공국의 올레크가 키에프를 탈취하여 루스의 남북 땅을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세웠다. 국가의 원수가 된 것은 리우릭 가문 출신의 키에프의 대공이고, 한편 제후나 귀족은 각 영지를 지배하고 있었따. 9~13세기 초 루스의 장인들의 기술 수준은 꽤 높았다. 그들은 중세에 알려졌던 금.은.동.청동의 가공기술을 모두 익혔다. 이번 전시에는 11~13세기 초의 흥미로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금제의 콜트와 늘이개, 은제의 목걸이, 가슴장식, 글을 새긴 그릇, 제사용 십자가, 촛대, 작은 항아리 모양의 드리개, 창 끝, 도끼, 칼 등이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말형 장식판(Plaque in the shape of horse), 6~7세기, 은


사람형 장식판(Plaque in the shape of man), 6~7세기, 은


펜던트(Temple pendant, 7~8세기,은), 옷핀(Fubula, 7~8세기, 은)

키에프 루스의 형성
9세기 후반 무렵,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계 주민인 바이킹들이 동슬라브 평원에 이주하여 슬라브 국가형성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동로마제국과의 통상교섭로를 찾아 왔다가 다시 그 중 일부가 기후가 좀 더 좋은 남족으로 내려와 키에프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 흑해 북동쪽 연안, 카스피해 연안 초원의 서쪽과 북쪽에서 9세기부터 슬라브족 국가가 탄생하여 농경정착민의 국가로서 발전해 갔다. 자기네들 사이에서는 루스라는 이름이 일반적이었고, 드니프로(러시아식으로는 드네프르)강가의 키에프를 중심으로 발전했기때문에 오늘날에는 키에프 루스, 혹은 키예프공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이 정치체는 동슬라브인을 주축으로 하는 세나라, 곧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공통의 기원이며 이 세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주고 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노르만족, 즉 바이킨의 일족인 바라그인이 루릭을 수장으로 862년 라도가 호수가의 노보그라드 일대에 정착하여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 루릭이 사망한 이후 그를 계승한 올레그가 882년 키에프를 점령하고 일대의 슬라브족을 통합하여 키에프 루시를 세웠다. 이것이 러시아 국가들의 기원이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도끼, 칼, 창살촉, 검, 군도, 12세기


도끼


칼과 창살촉


칼자루의 장식

키에프 루스와 유목민
키에프 루스는 남쪽과 동쪽으로는 유목민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키에프국이 형성되던 시기에 그 남쪽 초원지대에서 최대 세력을 자랑하던 집단은 하자르 한국이었다. 동슬라브 부족들은 국가를 수립하기 전까지 하자르인에게 조공을 바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키에프 국가 수립 후에는 관계가 역전되었다. 하자르 제국의 공백을 일시적으로 메운 것은 페체네그인이었다. 이들은 볼가강 하류, 돈강 하류, 우랄산맥 기슭에 퍼져 거주하였고 8세기 무렵부터 기록에 등장하였다. 이들은 세력권을 확대하였지만 유목민 특유의 생활방식 때문에 항구적인 국가를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페체네그인은 동로마제국이 마자르족이나 케에프루스와 같은 흑해 북쪽의 전투적인 집단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완충세력을 해 주었으며, 따라서 동로마 제국과는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가졌으나 키에프 루스와 충돌하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는 적대적 이웃 관계에 있었다. 폴로비츠인은 무만, 혹은 킵차크라고도 불리는데, 11세기에 페체네그인을 몰아내고 루스 국경너머 동남부의 너른 초원지대를 차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동로마제국을 수시로 침범할 정도로 강력했다. 남부 키에프 루스의 일부 세력은 폴로비츠인과 잦은 전추를 벌였다. 키에프 루스 동쪽의 가장 세력이 큰 유목민은 볼가 불가르인이었다. 러시아 도시 브라디 미로에는 루스인이 볼가 불가르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아름다운 건물, '네를리 강변의 수호자' 교회가 그 옛날 루스인과 유목민의 관계를 기념하고 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글씨가 새겨진 그릇(Bowl with greek inscription, 11세기, 은), 램프(Icon lamp, 13세기 초, 동)


<컬트>관자놀이 펜던트, 11~13세기, 금


관자놀이 체인, 귀걸이 펜던트, <컽트> 관자놀이 펜던트, <오칠이아>머리장식 - 11~13세기, 금


팔찌와 토르크(목걸이), 11~12세기, 은


토르크(목걸이), 금과 은, 11~12세기

키에프 루스, 최강의 유목민 몽골 군대 앞에 무너지다.
까마득히 먼 동북아시아 초원지대에서 갑자기 구름처럼 몰려든 몽골인은 유라시아 남부 동남부 일대를 석권하면서 그때까지 이 지역에서 세력을 균분해온 유목민 집단과 정착민 사이를 일시에 자신들의 세력권 아래 두게 되었다. 키에프 루스는 몽골 군대의 공격으로 몰락하였고 루스 땅은 세 지역으로 나늬어 각기 다른 역사적 과정을 겪게 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비잔틴 - 루스 관계와 케에프 루스의 기독교 수용
키에프 루스의 지배자들은 인근 주민들로부터 조공으로 받거나 약탈한 물품들을 배에 싣고 발트해에서 흑해로 이어지는 수로를 따라 남북으로 오르내리면서 장사를 하였다. 당시 기독교권 최대의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군림하던 동로마(비잔티움)제국이 그러한 그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루스인들은 평화적 교역을 위해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자주 방문하여 제국과 호례교역조약을 맺고 하였다. 키에프 루스가 기독교를 정식으로 수용하여 국교로 삼게 된 것은 슬라브인과 동로마제국 사이에 밀고 당기고가 계속되고 있던 10세기 후반 블리디미르 대공 치세 때였다.


촛대(Candelstick, 11~12세기, 동)와 사자형 물병(Ewer, 13세기, 동)


컵과 숟가갈, 6~7세기, 비잔틴, 은


십자가(제의용, Processional cross), 11세기, 비잔틴, 동.철


체인(Chain), 12~13세기, 금


메달리온, 12세기초, 비잔틴, 금


체인과 이콘장식(Chain with pendant-icon), 11~13세기, 비잔틴, 금.패갈탄.가넷.수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