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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의 유목민들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민족 대이동을 통해서 세계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동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인구의 증가, 가뭄과 기근 등의 자연환경의 변화 등 많은 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유목민족의 이동은 문명사회라고 일컫는 지중해와 근동지방, 중국, 인도 등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기원전 10세기 이전의 아리안족 대이동으로 오늘날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에게해 일대에 큰 변화가 있었고, 이들이 떠난 자리를 스키타이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들이 초원의 주인으로 활약했다. 고대사회를 끝내고 중세 사회로 들어서는 동기가 되었던 훈족의 압박은 고트족,반달족,프랑크족 등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이끌어 로마제국의 붕괴와 중세사회가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흉노의 끊임없는 압박과 흉노 붕괴 이후 5호16국과 남북조시대 또한 초원 유목민족의 압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로도 몽골의 원정, 티무르제국, 터어키 제국 등에 이어 20세기들어 소비에트 공화국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했다고도 할 수 있다.

 로마제국 붕괴를 이끈 훈족의 대이동 이후에도 중앙아시에 초원지역에서는 많은 민족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는데, 흉노의 일파로 보기도 하는 훈족을 비롯하여 아바르족, 고트족, 하자르족, 페체네그족, 폴로비츠족에서 몽고의 킵차크 한국까지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활동하였다. 현재는 흑해 북안의 초원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공국 이래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슬라브계통의 민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세 초원의 유목민족들, 4~8세기
유럽 역사를 크게 동요시킨 유목민의 이동이 일어난 시대, 흔히 말하는 민족대이동시대에도 흥미로운 금제 장식품이 만들어졌다. 5세기 중엽까지 강성했던 훈족 등과 같은 부족연합이 존재했다. 석류석에 상감기법을 사용한 훈시대(4~5세기)의 독특한 금제 장식품과 금으로 된 허리띠 장식품이 전시되었다. 6세기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여러 종족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중핵을 형성하는 것을 튀르크어(터어키어)계 민족이었다. 가장 강력한 정권의 하나는 아바르 부족연합으로 7세기 후반에는 불가르와 하자르가 독립된 정권을 세웠다. 이 시기를 잘 나타내는 것으로 크리키아와 흑해 북쪽 연안에서 출토된 6~7세기의 아바르 띠장식이나 폴타바 지역 호로루시에서 출토된 6~7세기의 청동제 전사상이 있다. 7~8세기의 크로독시 유물(키로보그라드 지역 크로독스에서 출토)에 포함된 호화로운 금제 드리개와 가슴 장식은 하자르시대의 것이다. 이 유물은 호화로운 부장품을 동반한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이 시대 장인들의 훌륭한 작품은 작은 알갱이 무늬, 작은 알갱이와 비슷한 무늬, 꼰 끈 무늬, 상감 등의 기법에 의해 장식되어 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이동

훈족(Hunts)
훈족은 서기 4세기에 동유럽 지역에 새롭게 등장한 유목종족연합체였다. 훈족의 기원은 아직 분명하지 못하나, 흉노의 일파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토착종족들과 혼합하여 훈족을 이루었다는 말이 가장 일반적이다. 훈족은 스텝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였으며, 4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훈족이 아랄해 유역에서 서쪽을 이동을 하였다. 훈족의 전성기는 아틸라왕의 통치기였다. 아틸라는 451년에 갈리아를 침략하는 등 로마제국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453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훈족의 제국도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훈족은 455년에 게파드족이 일으킨 반란에 패배하여 흑해북안으로 밀려나며, 469년에 발칸반도로 재진입하고자 일으킨 전쟁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훈족은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으며, 흑해북안과 볼가강 유역에서는 서기 6세기까지 존속하였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검(Sword), 4~5세기, 훈족, 금.철.석류석


십자형 금구(Bridle mount)와 벨트 버클(Belt buckle), 4~5세기, 훈족, 금.홍옥수


전사 소(小)상(Statette of warrior, 7~8세기, 동)와 허리벨트세트(동.가죽)

아바르족(Avars)
서기 6세기에 중앙유럽으로 이동하여 아바르 한국(汗國)(562~823)을 건설하였다. 인종적으로 몽골어계, 이란어계, 혹은 투르크어계라는 여러 설이 있으며, 유연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아바르족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아바르족은 단일민족이 아니었고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투르크어계 종족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대개 동의한다. 아바르족은 서기 555년에 투르크족들에게 서쪽으로 밀리는 유목민족으로 처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896년에는 아바르왕국의 중심지였던 판노니아 지역을 헝가리인들이 차지하였고 아바르인들은 그들에게 융화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허리띠 장식금구(Decorative plaques for a belt), 6~7세기, 아바르족, 금.은.구리.유리.가넷

허리띠 장식 사용방법

고트족(Goths)
고트족은 게르만족의 일파로서 스칸디나비아에서 기원하였으며, 서기 2세기에 스웨덴에서 발틱해를 건너 비스와 강 유역을 장악하였다. 고트족이 이동하자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서 반달족과 루가족이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이로 인해 현지의 종족들이 지중해 쪽으로 이동하면서 로마제국의 동북 경계를 침입하였다. 3세기에 고트족은 흑해연안으로 내려갔고,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나뉘었다. 동고트왕국은 538년에 동로마에 의해 멸망당한다. 서고트족은 507년에 프랑크족에 패배한 다음에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으며, 711년에 아람의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관자놀이 장식과 옷핀, 서기 6~7세기, 고트족, 은


독수리 이미지의 버클, 7세기 후반, 고트족, 은.유리.가죽

하자르족(Khazars)
하자르족에 대한 기록은 투르크 한국의 일원이었던 서기 6세기부터 확인되며, 현지의 이란어계 종족, 도래한 우고르어계와 투르크어계의 종족들이 결합되어 형성되었다. 하자르족은 처음에는 지금의 다게스탄 지역에 거주하였지만 서기 7세기와 30년대에 투르크 한국이 멸망하고 난 다음에 볼가강에서 크림반도, 돈강에서 코카서스 산전지대까지의 광대한 스텝과 삼림초원지대를 차지하는 하자르 한국(汗國)(650~969년)으로 발전하였다. 하나르 한국은 9세기 후반에 키에프 대공국의 스비트슬라브 대공이 볼가 강 하류 지역의 수도 이틸과 돈강 하류의 상업-수공업 중심지인 사르켈을 공격하였을 때에 멸망하였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펜던트(Pendant)와 가슴장식(Chest decoration), 7~8세기, 하자르, 금

페체네그족(Pechenegs)
서기 8~9세기 무렵에 형성된 유목종족연합체로서, 투르크어계 종족에 속하며, 중앙아시아의 스이리다리야 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던 강거(康居)의 일파로 여겨진다. 9세기 말에 가뭄과 이웃 부족들의 압력에 의해 우그르족이 살고 있던 동유럽의 스텝지역으로 이동하였다. 페체네그족은 875년과 915년에 러시아의 아스콜드 공후 및 이고리 공후를 각각 접촉하며, 941~944년에는 러시아-페체네그 연합군이 하자르 한국으 편에 서서 비잔틴왕국의 ㅋㄴ스탄니노플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하자르 한국이 멸망한 다음에 그 영역을 페체네그족이 차지하였다.  1036년에 페체네그족은 키예프를 포위 공격하였으나 야로슬라브 대공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고, 나중에 새로운 베렌데이 종족 연합에 흡수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마구장식(Bridle decorations), 10세기, 페체네그, 은

폴로비츠족(Polovtsy, Polovtsians)
투르크어계의 유목민족이다. 11세기 초에 볼가 강 동쪽지역에서 흑해북안으 스텝지대로 이동하였다. 당시 이곳에 살던 페체네그족은 드네프르 강 서쪽을 밀려났다. 하지만 폴로비츠족은 드네프르 강을 건너 다뉴브 강 하구까지 진격하였으며, 마침내 다뉴브 강에서 시베리아의 이르트이쉬 강까지이 대초원지대의 주인이 되었다. 고대 루시와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자주 루시의 땅을 공격하였다. 12세기 초에 폴로비츠족은 루시의 대공들에 의해 코카서스로, 볼강강 서쪽으로, 돈 강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1125년에 블라지미르 모노마흐 대공이 죽은 다음에는 다시금 루시 대공들의 내분에 간섭하였다. 폴로비츠족은 제2볼가르왕국(1186~1230년)의 건립에서 동맹자 역할을 하였다. 1236~1242년에 일어난 몽골군의 원정으로 폴로비츠족은 독자적인 정치체로서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하였고, 나중에 킵차크 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투구(Helmet), 12~13세기, 폴로비츠, 철


향로와 뚜껑, 12~13세기, 폴로비츠, 은

몽골제국과 킵차크 한국(Mongole Empire and Kipchak Khanate)
몽골제국(1206~1368년)은 1206년에 칭기스칸 칭호를 받은 테무친이 몽골을 통일하고 주변 종족들을 정복함으로써 형성되었다. 몽골군대는 금을 정복하였고 1219~1220년에는 중앙아시아의 호레즘을 정복하였으며, 1223년에는 루시-폴롭츠이족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계속해서 크림반도를 약탈하였다. 칭기스칸은 서하를 토벌하다가 1227년에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1236년에는 몽골군대가 볼가 강으로 진격하였고, 1237~1240년에는 리잔, 모스크바 등 키예프 루시의 수많은 도시들을 점령하였다. 몽골제국의 영역은 중부아시아, 남시베리아, 동유럽,근동, 중국, 티베트 등 역사상 가장 광대하였으며, 그 영향력은 다뉴브 강에서 동해에 이르렀다. 칭기스칸은 서방원정을 마친 다음에 유목지역을 여러 아들과 동생들에게 분할통치하게 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원제국, 킵차크 한국, 차가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으로 분여라는 기초가 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술잔(Goblet)과 국자(Scoop), 13~14세기초,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