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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대륙의 광대한 초원지역에는 고대 기마유목민으로 화려한 황금문화를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사르마트, 훈족, 아바르족, 고트족, 페체네그족, 폴로비츠족, 몽고의 킵차크 한국 등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활동했다. 고대로 로마를 멸망시킨 훈족의 대이동 이래로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그 존재감이 급속히 높아진 민족은 슬라브민족이다. 슬라브 민족은 흑해에서 발트해, 동유럽, 발칸반도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스키타이가 활동했던 흑해북안의 초원지대에는 오늘날 동슬라브인이라고 일컫는 민족들이 키예프공국이라고도 부르는 키에프 루스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키에프 루스는 882년에 건국되었으며, 동로마 제국과 교역 등을 통해 10세기에 동방 정교를 받아들임였다. 번영을 누리던 키에프 루스는 몽골군의 공격으로 몰락되었고, 키에프 루스의 영역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로 분열되는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키에프 루스가 몽골에 점령된 이후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4세기에는 리투아니아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16세기에는 폴란드, 17세에는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잠시 독립하기도 했으나 다시 소비에트연방으로 합쳐졌다가 1991년 연방 해체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오랜 기간 동안 타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초원 유목민족답게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용맹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카자크(또는 코사크)라고 부르는 군사집단이 존재했기때문이라고 한다. 소설 '대장 부리바'에 등장하던 민족으로 생각되는데 그 용맹성은 현대화된 무기가 맹위를 떨치던 20세기초까지 코사크 기병대는 명성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배(Chalise), 1730~1740년대, 은 에나멜

우크라이나의 장식예술, 16~20세기
루스 미술의 전통은 16~19세기에도 우크라이나의 보석 장식품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 시대의 우크라이나의 보석미술은 우크라이나의 민족문화의 요소가 스며든 것으로 당시 유럽에 지배적이었던 스타일에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바로크 시대(17세기말 ~18세기 중엽) 우크라이나 장인들의 제작이 가장 빛났던 시대였다. 이 시대의 보석 장식품 제작의 중심이었던 곳은 키예프였다. 이번에 전시된 복음서, 찻주전자, 접시, 성상화의 장식, 성찬배 등은 바로 키예프 장인들의 작품이다. 17~19세기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더욱이 서구제국과 밀접한 경제.문화적 관계가 있다는 증거로 다양한 성속제품을 들 수 있다. 성서를 보호하는 씌우개, 보석박힌 성모상이나 성배는 러시아 보석 세공 장인이 애호하는 칠보 나열로 기법에 따라 제작되었다. 서구의 작품(잔,접시,손잡이 달린 잔, 항아리, 주전자 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보석 세공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코자키는 어떻게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의 근원이 되었나
폴란드 지배 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정치적, 종교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독립불기의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동남족에 펼쳐진 변경지대에 힘입은 바 크다. 이 곳을 거점으로 형성된 우크라이나 코자키는 기본적으로 수렵, 어로에 종사하거나 주변지역과 물자를 교환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크림 한국의 주민들 특히 노가이 타타르를 비롯한 인근 유목민들의 잦은 습격에 대비하여, 혹은 그들 스스로 주변 유목민들을 습겨하여 물자를 약탈하기 위해, 무장하였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러시아 지배 아래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지배 아래서도 우크라이나인은 한 동안 자치권을 누릴 수 있었으나 자치권은 곧 제한되기 시작하였다. 차르는 종주권의 표시로서 병권과 민사행전권을 함께 장악한 도절제사(voevoda)를 키예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파견하였으며 중앙기구인 소러시아청을 설치하여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제국의 한 지역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지배 아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러시아인이라 불리면서, 러시아 제국 문화에 차츰 동화되어 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1991년 말 소련의 해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완전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성배의 장식

종교건축물을 본뜬 종교장식 미술
17세기말~18세기 초 종교장식 미술은 주로 바로크 양식을 따라 아칸서스 잎, 꽃, 과일 등의 요철무늬를 많이 활용하였다. 또한 종교용품 장식에는 종교 건축물 모형도 자주 활용되었는데, 페디르 레비츠기가 제작한 은제 성궤는 2층짜리 종탑 모양을 본 뜬 것이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성궤(Tavernacle), 18세기 중엽, 은

종교서적 장식
성서를 비롯한 종교서적의 표지는 주로 금이나 은으로 도금하고 그 위에 귀금속, 애나멜 등으로 장식하였다. 이같이 책을 금은으로 제본하는 방식을 비잔티움 제본이라 한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복음서, 1727년, 은


십자가(성물함, Cross-reliquary), 1671년, 은.홍옥수.유리


찻 주전자, 1715년 경, 은.나무.산호

키예프의 금은세공 장인
18세기 키예프에는 이반 라비치, 예레미야 빌레츠키, 페디르 레비츠키 등을 비롯하여 종교적 의전용품 제작으로 이름을 떨치는 금은세공업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작업장을 운영하였다. 이들의 작업장에서는 성상호(icon) 장식, 제단 십자가(altar cross), 성배(chalice), 성궤(tabernacle, 예배가 끝난 후 축성 받은 빵을 환자들을 위해서 보존해서 넣는 용기), 예배용 주교관(mitre), 성모상, 목걸이 십자가 등을 제작하였고, 종교서적의 장식도 이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파나이아(Pangia), 17세기말, 은.상아.에나멜


잔 홀더(19세기말,은),


메달리온(1843년,은), 메달리온(18세기,은)

정교의 성모상, 파나이아
정교에서는 성모상을 파나이아(그리스어) 혹은 파나기아(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라고 부른다. 이는 모든 이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여인이라는 의미이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파나이아


성상화(성모자상 커버), 1720~1730년대, 은.유리


대형잔(Tankard), 1620~1625년, 은


찻 주전자, 18세기경, 은


접시, 1640~1677년,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