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국은 5~7세기 동안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투루판분지를 한나라출신 국씨를 중심으로 한족이 이 지역을 지배했던 정권을 말하며 국씨 고창국이라고 한다. 고창국의 유적으로는 현 투루판 도심에서 동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창고성이 남아 있으며, 이 고창국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현장법사 일행이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천산산맥 남쪽에 위치한 투루판은 한대에 천산산맥 북쪽의 흉노족 침입을 막기 위한 거점으로 둔전이 있었다고 한다. 투루판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지만 오랜 기간 한족이 살아왔기때문에 한족문화와 중앙아시아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남북조시대에 서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크게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투루판 도심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아스타나 고분군은 당나라 시대 이 곳 투루판 분지의 중심이었던 고창고성 부근 포도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고창국과 당나라때의 무덤군이다. 아스타나 고분군에서는 무덤이 약 456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전체가 제대로 발굴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곳 무덤들에서 무게가 총6톤이 넘는 2,700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소그드, 위구르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가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아스타나는 위구어로 휴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 이전 고창국부터 당나라 시대에 주로 사용된 공동묘지라 한다. 이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나라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고 고분인지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낮은 봉분들이 고분군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 있는 투르판 지역 유물들은 대부분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유물로 20세기초 일본 교토의 니시혼간지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가 총3차에 걸친 중앙아시아 원정을 통해 구입하거나 약탈한 유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재벌이 데라우치가 총독이었던 시절 조선총독부에 기증하여 오늘날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장의 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약탈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타니가 수집한 5천여점의 유물중 1/3이 중앙박물관에, 1/3은 일본에, 1/3은 중국 뤼순에 있다고 한다. 오타니는 혜초가 신라의 승려였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아스타나 무덤은 서역 북도의 투루판 시에서 동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하고 있다. 아스타나와 카라호자의 두 구역으로 나주지만, 일반적으로 아스타나 고분군이라고 부른다. 1959년부터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 약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스타나에서 무덤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시작되어, 국씨 고창국(502~640)과 당 왕조 지배기(640~8세기 후반)에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일부 무덤은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 시신을 놓은 수혈식이지만, 대부분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과 시신을 놓은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벽화를 비롯하여 비단, 마포, 종이에 그린 회화, 문서, 직물, 묘지,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기, 나무 그릇, 금속기, 화폐 등이 발견되었다. 투루판에는 일찍부터 한족 집단이 형성되었던 까닭에 아스타나 고분군 출토품은 중국적인 요소와 중앙아시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이스타나 고분군 중 내부가 개방된 216호분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의 머리부분이다. 우리나라 무령왕릉에서도 상상의 동물 진묘수를 볼 수 있다.
투르판의 아스타나, 카라호자 무덤에서 흔히 출토되는 진묘수(鎭墓獸)의 머리에 해당한다.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널방의 문에 한 쌍이 배치되며, 때로는 천왕을 표현한 인형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앞다리를 세워 정면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 자세를 취한다. 묘를 지키는 역할에 어울리게,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두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사람 얼굴을 보여준다. 머리 윗부분에는 잘려나간 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목 아래에도 짐승의 털이 묘사되어 있어 진묘수의 머리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창조신 복희와 여와(복제품), 투루판 아스타나, 7세기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에 세워진 복희와 여와의 상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중앙에 두 신이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하고 등장하며, 왼쪽이 여와, 오른쪽이 복희이다. 각각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다. 이는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배경에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하나의 소우주를 재현하고 있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얼굴과 손에 보이는 음영 표현, 해와 달의 형상화 방식에서 중앙아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출처:중앙박물관>
무인상과 문인상, 투루판
여인의 얼굴과 여인상, 투루판, 7~8세기, 여인의 얼굴상은 섬세한 얼굴표현과 머리부분의 금박 장식이 눈에 띈다. 그리고 화전, 연엽, 사홍, 점진이라고 불리는 화장을 했다. 화전은 이마에 기하학 무늬나 꽃무늬를, 연엽은 입가 좌우에 보조개가 있는 것처럼 무늬를 그리거나 잘라 붙이는 것이다. 사홍은 광대뼈 바깥쪽에 초승달 모양의 무늬를 그려 넣은 것이고, 점진은 입술 채색을 가리킨다. 여인상은 7~8세기 당대 여인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형들이다. 납이 섞인 흰색안료인 연백을 바른 후 채색을 하여 색이 매우 선명하다. 머리부분에는 금박의 장식이 있어 고위층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을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왼쪽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무덤주인이 사후세계에서도 음악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장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문인상,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당대의 전형적인 관식인 복두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출처:중앙박물관>
환관,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이 지역 무덤에서 출토된 다른 남자 인형과 비교할 때, 얼굴이 희고 수염이 없어 환관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라한왕조 동전, 투루판 카라호자, 10~12세기. 카라한왕조는 940~1132년 파미르고원 일대를 지배했다. 이 왕조의 동전은 불규칙한 원형이며 양면에는 아라비아 문자가 있다. 투루판에서 이 동전을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죽은 이의 입에 머금게 하거나 눈을 덮는 데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꽃무늬 바구니, 투루판 카라호자, 13~14세기. 출토 예가 많지 않아 주목되는 유물이다. 평직으로 된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표면에 둥근 자수를 놓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장식했다. 아래쪽의 붉은 부분도 자수를 놓은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자수로 장식한 주머니(13~14세기), 빗(6~7세기), 투루판 카라호자, 주머니는 투루판과 니야 등 동투르키스탄은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주머니이다. 거울이나 빗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면에 기하학적 문양을 자수를 놓아 장식했다. 제작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주머니 안쪽에서 차카타이 문자편이 발견되어 원대(1271~1368)로 추정된다. 빗은 빗살을 배치한 방식과 형태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이 중에는 손잡이 부분에 동심원 문양의 장식이 있는 예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속장식, 투루판 카라호자
표주박 그릇, 투루판 아스타나
나무합,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나무신발, 투루판, 6~7세기. 안쪽에 마나 면으로 된 헝겊을 붙이고 칠을 입혔으며, 표면에도 칠을 입힌 흔적이 남아 있다. 투루판에서 발견된 칠기는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수입한 것이지만, 이 경우 투루판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릇받침,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물새, 투루판, 6~7세기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진묘수),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나무공(7~8세기)과 나무조각(6~&세기), 투루판 카라호자, . 여기 보이는 실타래 같이 생긴 나무조각은 묘실에 안치된 죽은 자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한 이래로 유행한 장옥, 옥돈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투루판지역에서 옥 대신 나무로 만들어 무덤에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그릇, 투루판
묘표, 투루판 카라호자, 582년. 방형의 전돌에 붉은 글씨로 무덤 주인의 성명, 사망일, 관직을 기록했다. 무덤의 주인이 결혼한 여성일 경우에는 남편의 관직이 적혀 있다. 내용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인 색겸의는 국씨고창국에서 호아장군과 상상장의 관직을 지낸 가매구의 부인으로 8=582년 2월 21일에 사망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묘표, 투루판 카라호자, 600년. 바탕을 옅은 회청색으로 칠한 후 붉은 색으로 격장형의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글씨를 썼다. 내용에 따르면, 무덤으 주인은 국씨 고창국 시기의 지배자 국씨 일가의 일원으로 상상장, 곡척장, 권중장을 역임한 국효승의 부인 장씨이며, 그녀는 600년 2월 19일에 사망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묘표(Epitaph tablet)
방형으로 다듬은 돌이나 전돌 위에 죽은 이의 이름과 관직, 사망일자, 사망 당시의 나이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무덤 입구에 매장했다. 투루판에서는 고창고성 인근의 아스타나, 카라호자 무덤과 교하고성 인근의 야르호 무덤에서 많은 수가 출토되었다. 묘표에는 반드시 관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인과 그의 가족의 무덤에만 매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인의 이주와 함께 유입된 문화로 5~8세기까지 제작되었으며, 당시의 제도와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새머리 장식이 있는 병,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주구와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주구가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니노코에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구슬문양으로 장식된 그릇,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그릇 표면을 장식한 문양을 연주문이라고 하며, 작은 흰 구슬을 이은 것과 같은 모양을 띤다. 서아시의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문양으로, 중앙아시아,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여기 전시된 그릇은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든 명기로 주로 쟁반에 얹어 시신의 머리맡에 놓았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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