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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한반도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은 한반도와 요동 전체를 통치하지는 않고, 수도인 평양을 중심으로 일정지역만 그 세력권에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 시기에 한반도 서남부에는 송국리유적지로 대표되는 다양한 성읍국가 등장하였는데,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 시기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고조선이 멸망한 시기에 중국 동북지역에는 부여와 고구려, 한반도 동북지역에는 옥저와 동예, 중남부지역에는 삼한이 있다. 이 시기 부여와 고구려는 주변세력과의 갈등과 긴장속에 일찍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였고, 삼한은 백제,신라,가야로 통합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한은 기원전1세기~기원후3세기에 한반도 서남부 지방의 54개 소국의 연맹체를 말하며, 고조선시대의 성읍국가가 약간 발전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마한의 소국들의 주도세력은 기존의 토착세력을 중심으로 고조선 멸망 전후 시기에 남하한 고조선세력과 백제로 대표되는 만주지방의 부여계 인사들이 합류했다고 볼 수 있다. 주민들의 이동과 함께 철기문화와 한국식동검문화가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존의 교역관계와 한.중.일 해상무역을 통해 중국의 물자와 문물을 한반도와 일본에 전파하는 주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한의 여명
마한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후반까지 존속하였으며, 한강유역과 중서부 지방에서 시작하여 호서와 호남 지방에 분포하였다가 백제가 금강 이북의 마한 지역을 직접 지배하게 되면서 해체되었다. 마한 지역에는 기원전 3세기 경 기존의 송국리형 문화와는 다른 덧띠 토기문화가 유입되어 한국식동검문화와 함께 발전하면서 토착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철기문화가 마한지역까지 파급되어 점차 토착사회를 재편하여 마한 54개 소국을 이루게 되었다. <출처:부여박물관>


검은간토기(Black-burnished pottery), 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보성 교성리, 청양 분향리, 논산 원북리, 마한


흑연(Graphite), 보령 고성리, 마한


덧띠토기(Pottery with clay stripe), 보령 교성리, 마한


덧띠토기(Pottery with clay stripe), 보령 교성리, 마한


쇠뿔잡이 단지, 보령 교성리


굽다리접시(Mounted dish), 서천 도삼리, 보령 교성리


완(Bowl), 마한


한국식동검, 꺽창, 쇠도끼, 쇠끌, 부여합송리 마한


청동종방울(Bronze bell with clapper), 별난동기, 잔무늬거울, 부여 합송리, 마한


마한, 강력한 철기문화를 발전시키다.
마한은 2세기 후반부터 한 군현의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세력을 확장하여 정치적으로 성장하였다. 3세기 중반에는 낙랑과 대방을 접수한 위나라의 분열책에 강력히 반발하여 중국 군현과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철기 문화가 점차 발전하여 정형성을 갖추게 되었다. 무기류는 둥근 고리형태의 손잡이를 가진 민고리자루큰칼, 찌르기에 편리한 쌍날이 있는 대형의 쇠칼, 자루 끝의 모양이 직선이거나 제비꼬리 모양인 쇠창, 쇠살촉 등이 주종을 이룬다. 농공구는 쇠낫, 쇠끌, 쇠도끼, 쇠손칼 등이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쇠투겁창(Iron socked spearhead, 금산 수당리, 아산 용두리), 괭이(Iron hoe, 아산 용두리)


쇠손칼(Iron knife, 공주 남산리, 천안 청당당), 쇠낫(Iron sickle, 서천 봉선리, 백제)


민고리자루칼(Sword with ring pommel), 청원 송대리, 공주 하봉리, 서천 봉선리, 마한


쇠살촉(Iron arrowheads), 공주 장원리, 서천 추동리, 천안 청당동


마한의 사회구성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국연맹체 사회이다. 마한 연맹체의 맹주는 진왕으로 불리었으며, 다른 소국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연맹체를 구성한 세력 가운데 가장 강한 세력이 맡았다. 마한은 진변한의 소국들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특히 변한의 대표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마한의 강력한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은 다른 소국들보다 우월한 문화상을 나타낸다. 목지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천안, 성환, 직산, 아산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짧은 목항아리(Jar with short neck), 깊은 바리(Bowl), 천안 청당동, 마한


말모양 허리띠고리, 천안 청당동, 마한


뚜껑굽다리항아리(Mounted jar with lid), 아산 용두리, 마한


짧은목항아리(아산 용두리), 깊은 바리(서천, 선도리), 마한


짧은목항아리(공주 하봉리)


계란모양 토기, 아산 갈매리, 마한


마한토기, 새로운 기술을 채용하다.
마한토기는 중국 전국계 및 낙랑의 새로운 토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이전과는 다른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토기 기벽을 두드리는 타날기법을 사용하고, 물레를 사용하여 토기 제작이 빨라졌으며, 지붕 있는 가마의 도입으로 소성온도를 높여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를 계승한 경질무문토기도 사용되었으나, 3세기 중엽이 되면 대부분 소멸되고 두드림무늬토기가 성행하게 된다. 마한 지역에서는 두귀단지, 겹입술토기, 새모양토기, 톱니무늬토기 등과 같이 강한 지역색이 드러나는 특징적인 토기가 만들어졌다. <출처:부여박물관>


받침모루(Anvil), 서천봉선리, 대전 용계동, 바탕흙(Pastes), 진천 산수리.삼룡리


이기재(Kiln tool), 서천 지산리, 마한


짧은목항아리, 진천 산수리


깊은바리(Bowl), 서천 봉선리


깊은바리(Bowl), 서천 봉선리


귀때 달린 토기(Pot with spout), 서천 지산리


거치문이중단지(Pottery with saw-tooth), 논산 연산면, 마한


두귀단지(Jar with two handles), 서천 송내리


새발자국무늬토기, 대전 오정동, 마한


겹아가리토기, 부여 초촌면, 청원 송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