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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석굴(국보24호),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불교미술 걸작인 석굴사원

younghwan 2012. 6. 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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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보24호로 지정된 경주 석굴암 석불이다. '석불사'라고 불린 이 석굴암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전세의 부모를 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앞쪽은 사각형 전실, 본존불을 비로한 불상들이 모셔진 주신을 원형을 하고 있다. 아마도 동양의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형이라는 사상이 이 석굴을 조성할 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실에는 그 존재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보살상.나한상.거사상.사천왕상.인왕상.팔부신중상 등 불교에서 모셔지는 많은 부처,보사,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주실과 전실사이에는 복도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석굴암 본존불에 대해서 앉은 자세나 손갖춤 등이 정형화된 불상과는 달라서 그런지 석가여래라는 의겨도 있고, 비로나자불이라는 의견도 있다.

 석굴암 석굴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대승불교의 전파경로인 아프카니칸.중앙아시.중국을 거져 한국으로 전해진 대표적인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전파의 형태이기도 하다. 인도에는 1,200여개이 석굴사원이 있다고 하며,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의 수행자들이 수도를 하는 곳으로 인도나 중앙아시아의 더운 지방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때 만들어진 바라바르 언덕의 석굴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인도의 아잔타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석굴, 중국 둔황 석굴, 윈강석굴 등이 유명하다. 인도나 중앙아시아, 중국의 석굴들은 바위산에 굴을 파서 석굴을 조성한 것과는 달리 석굴암은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하여 만든 것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창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석굴들은 대부분 부처의 일생이나 설법내용을 그린 벽화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석굴암 석굴에는 화강석을 조각해서 만든 본존불을 비롯하여 많은 부조상들로 석굴내부가 채워져 있다.

 석굴암은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등산로로 3km 정도 떨어진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토함산 정상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본존불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문무왕 수중왕릉인 대왕암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은 신라천년 고도인 경주 동쪽편에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는 큰 산으로 해발 745m의 높은 산이다. 토함산이라는 명칭은 이 산이 바다 가까이에 있어 안개가 자주 끼고, 산이 바다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 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표현 것이라고 한다.



국보 24호로 지정된 석굴암 석불. 지금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2차례에 걸치 석굴암 보수공사의 결과로 석굴암 본존불은 유리창안에 있고, 그 앞에는 보호각을 만들어 놓고 있다.


석굴암 석굴로 올라가는 계단길


석굴암 석굴로 올라가는 계단길 옆에는 석굴암을 수리(1913~1915, 1962~1964) 할 때 교체된 옛 석굴건축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이 놓여 있다.


석굴암 석굴 내부 감실벽석


감실천정석


석상받침석


홍예석편, 간석, 신방석, 초석형석재


감실벽석과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석재들


많은 사람들이 수학여행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석굴암 석굴 답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찾는 학교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석굴암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교육자들을 만난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2차례에 걸친 석굴안 석불 수리과정에서 이 석굴사원의 보호를 위해서 세워진 보호각. 오랜세월동안 동해를 바라보고 있던 석굴암 본존불은 지금은 이 보호각으로 시야가 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석등이 세워졌던 자리(?)


석굴암 석불 내부(2004년 봄)


석굴암 문수보살, 십일면관음보살, 보현보살. 석굴암 본존불 바로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과 본존불 앞에 있는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일제강점기에 석고로 본뜬 것이라고 한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원본의 섬세한 조각수법과 예술성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지금도 각처에 새로 만들어진 관음상을 비롯하여 석불상을 볼 수 있는데, 이 불상처럼 섬세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석굴암 석굴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지. 멀리 동해바다의 문무왕 수중릉이 있는 대왕암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경치가 빼어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석굴암 앞 마당. 마당전체에 연등을 달아놓고 초파일 준비에 한창이다.


석굴암 석굴에서 내려오는 길


석굴암 석굴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석굴암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석굴암 석굴 아래에 있는 불전


초파일을 맞아 많은 연등들을 걸어놓고 있다.


석굴암 아래에는 지금 꽤 큰 규모의 사찰이 들어서 있다.


석굴암 석불을 배경으로 수학여행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학생들. 지금도 전형적인 수학여행 사진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또다른 추억의 사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함산 중턱에 닦아놓은 석굴암 들어가는 길. 지금은 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다. 지금의 모습은 아니지만 석굴암이 생긴 이래로 이곳에 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굴암 입구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는 20여분을 걸어들어가는데 숲이 우거져서 그늘이 많고 동쪽편으로 경치도 좋아서 우니나라에서 걷기좋은 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 들어가는 길


석굴암 입구의 일주문


토함산석굴암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석굴암 입구


출입문 옆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석굴암 주차장


석굴암 입구에 세워진 종루


석굴암 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 벌판과 남산



석굴암 석굴(국보 24호), 경주시 진현동
이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처음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렸다. 경덕왕때에는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황룡사대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만들어져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룬다. 석굴의 평면구조는 앞쪽이 네모났고 뒤쪽은 둥글다. 석굴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둘레에 천부상.보살상.나한상.거사상.사천왕상.인왕상.팔부신중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 사원과는 달리 화강암을 인공으로 다듬어 조립한 이 석굴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걸작이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둥근 형태의 주실 천장을 교묘하게 축조한 것이다. 이 건축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뛰어난 기술이다.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석굴암은 신라 예술의 극치이자 동양 불교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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