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동문은 적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성문앞에 옹성을 쌓고 있으며, 양쪽으로 2개씩 성문을 호위하기 위히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문은 문루를 설치한 개거식 성문을 하고 있으며, 2층 문루에는 낙풍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문 주위 성벽은 상당히 큰 돌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고 있으며, 성문 주위에만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낙안읍성, 사적 302호,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대리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특히 성 안에는 전통적인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읍성은 고려 후기에 왜구의 잦은 침입이 있어 조선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쌓아 성의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 전체 모양은 장방형이며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족 3곳에 성안의 큰 도로와 서로 연결된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4군데의 치성이 성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성 안에는 90여 가구의 민가들이 있는데, 보통 1가구당 2~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구성되었다. 초가집들은 3칸 정도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와 재래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성의 일부가 점진적으로 붕괴 소실됨에 따라 1983년 사적 302호로 지정하고 읍성의 종합적인 보존사업을 시작하였다. 특히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들 가운데 보존가치가 가장 높은 9동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하였고, 일부 변형되었거나 낡은 집들은 복원.수리하였다. 관청터에서는 관아와 객사 주변의 담장.월대.삼문 등을 발굴.복원하고 성곽과 문루 등을 복원하였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중앙에는 선정을 베풀었던 군수 임경업의 선정비가 있고, 600여년 이상된 노거수 은행나무가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고 매년 추모.당제를 지내고 있다. 동문 밖 1km 거리에는 낙안향교가 있어 예전에는 지역 선비들을 양성하였으나, 지금은 당시의 풍속과 생활문화를 전하고 있다. <출처: 순천시청>
낙안읍성 들어가는 길. 지금은 동문을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다. 낙안들판과 남해안 벌교지역과 동문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순천방향으로 고갯길도 동문을 통해 연결된다.
왜구들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에 위치한 동문은 튼튼하게 쌓은 옹성과 양쪽에 설치된 치성으로 엄호를 받고 있다. 성문은 일반적인 문루 형태를 하고 있는 개거식 성문을 사용하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해자를 설치하지 않고 있지만,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동문 앞에는 깊지는 않지만 도랑을 파서 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문앞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 그 앞에 돌을 깍아서 조각한 석수를 세워 놓고 있다.
낙안읍성 동문 문루인 낙풍루와 성문을 지키는 옹성. 옹성은 상당히 큰 돌로 아주 정교하게 쌓고 있다. 다른 성벽과는 달리 옹성과 성문 주변에는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여장은 조총이 보편화된 조선후기의 방어시설로 아마도 조선후기에 보강된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 동문 남쪽편 성벽. 상당히 튼튼하게 성벽을 쌓고 있다.
홍예식 성문에 비해서 견고함이 떨어지는 개거식 성문을 하고 있다, 아마도 앞쪽에 튼튼한 옹벽을 쌓아 화포의 공격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져서 개거식 성문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옹성 내부는 원형으로 쌓은 옹성에 비해서 좁아 보인다.
낙풍루라 적힌 현판. 문루 지붕는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단청으로 장식해 놓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보는 익공계를 사용하고 있다.
읍성 내부에서 본 낙풍루.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누각형태를 하고 있는 문루이다.
성벽 위에서 본 문루.
우물마루를 깔아놓고 있는 문루 내부
문루를 장식하고 있는 단청과 천장. 도깨비 문양을 그려놓고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문루에서 내려다 본 읍성내부 동문과 서문 사이에 큰 대로가 있고 북쪽편에는 관아건물들이 남쪽편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여장이 설치된 옹성으로 나가는 길
옹성은 성문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방어시설로 안팎으로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옹성 위에서 내려다 본 동문으로 들어오는 길.
옹성에서 내려다 본 남쪽편 성벽. 성문 주위에만 여장이 설치되어 있고, 멀리 성벽 바깥으로 돌출된 치성이 보인다.
동문 남쪽편 성벽
성벽에 설치된 여장. 성벽에 설치된 여장은 조총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설치한 방어시설로 총안과 흉벽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에는 여장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은데 조선후기에는 일본의 위협이 크지 않았으며, 대규모 전쟁에서 읍성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여장은 주로 조선후기에 보강된 산성이나 한양 등 대도시 성곽에 주로 설치되었다.
남쪽편 모서리 부근에 설치된 치성. 치성은 방어가 치약한 지점이나 성문을 호위하기 위해서 설치하는데 낙안읍성에는 동문 좌우에 2개씩, 4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동문 문루와 주변 성벽 위
동문 북쪽편 성벽.
성벽 위에서 보이는 옹성
성벽 바깥쪽에 있는 작은 초가.
동문 북족편에 설치된 치성
2008년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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