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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화도진은 구한말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된 인천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설치된 포대들을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기존의 해안가에 위치한 여러 진(鎭)에 비해서 관아의 규모가 큰 편이며, 개항 이후 제물포항을 통해서 오가는 외국 선박과 인원을 통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화도진은 1982년 서구 국가와 처음으로 맺은 조약인 한미수교통상조약이 체결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화도진은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관아건물들 또한 없어졌다가 최근인 1988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관아건물이 복원되었다. 복원된 관아 건물 중 동헌 앞 행각건물은 한미수교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도진 전시관에는 당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신헌 장군의 영정을 비롯하여 미국측 당사자인 슈펠트제독의 사진을 비롯하여 당시 조선군이 해안방어를 위해 사용했단 블랑기포를 비롯하여 다양한 화포와 무기류, 당시에 사용했던 각종 문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이 청나라 실력자인 리홍장에게 알선을 요청하여 체결된 조약으로 조선이 서구제국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이후의 조약들은 대부분 한미수호통상 조약을 준용하였다고 한다.

한미수호통상조약
한미수호통상조약은 고종 19년(1882) 5월 22일에 우리나라와 미국간에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은 1880년 3월 슈펠트 제독을 부산에 보내 일본영사 곤도신조를 중재자로 해서 수교요청을 하였으나, 조선측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슈펠트는 조선에 영향력이 있던 청국 북양대신 리홍장에게 조선과의 수호통상을 알선해 주도록 요청하여 1882년 3월 슈펠트는 청국 사신 마건충.정여창과 함께 인천에 들어와 청국사신의 알선으로 조선측 전권대관 신헌, 부관 김홍집과 4월 4일 전문 14관으로 이루어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1883년 4월 13일 미국 전권공사 푸드(H.Foote)가 입국해서 비준서를 교환하였고, 조선정부에서도 같은 해 6월 전권대신 민영익, 부관 홍역식을 미국에 보냄으로서 양국의 역사적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로서 미국은 한국과 국교를 맺은 최초의 구미국가가 되었으며, 이후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와 체결하는 수호조약은 거의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준용하였다. <출처:인천시청>

당시 외국인의 활동상황
인천에 지계를 설정한 여러나라는 거주.통상.경제는 물론 치외법권이라는 특권까지도 향유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일본,청국,영국 등 7계국 조계지도를 설정하여 치안.상업등의 경제생활을 유지하였다. 1884년 미국인 알레 박사의 기독교 포교 및 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광혜원의 설립, 아펠젤러 목사의 1885년 배재학당, 1886년 이화학당 설립 등 의학.문화 무분의 공헌은 지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경인선 철도부설과 광산 개발 등 경제부분이 이권 개입,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에 속속히 조약을 체결한 영국.독일 등 유럽의 국가들은 영사관을 설치한 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였다. <출처:인천시청>


화도진 동헌에는 당시 신헌 장군과 슈펠트 제독이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화도진 전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헌 앞 행각

화도진전시관
본 전시관은 후손들에게 조상의 얼을 되새기고, 외세의 개항 압력을 둘러싼 근대사의 전개 과정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것으로 동헌의 일부였던 행랑채를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신헌 장군의 영정을 비롯해 불랑기 4, 5호, 대완구 등 무기류와 집기류 등 50여종의 군사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출처:인천시청>


신헌 장군 흉상. 조선국 신헌은 1882년 5월 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에 서명함으로 처음으로 두 나라 사이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 동상은 한미 외교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1983년에 한미수교 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세웠다.


신헌 장군과 그의 아들이 신정희 영정. 신헌(1810~1888년)은 조선시대의 무신. 외교가로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1882년에 전권대관이 되어 미국의 슈벨트와 한미수호조약을 체결하고 판삼 군부사가 되었다. 예서와 문장에 뛰어났다. 신정희(1833~1895)은 조선말기의 무신, 판중추부사 헌의 아들, 그는 1894년 친군통위사 한성부판윤을 거쳐 독판내무부사로 일본공사 오오토리 케이스케이와의 내정개혁안 합의가 결려되자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 그후 통위사를 역임하는 등 조부 의직, 선친 헌과 더불어 3대가 무관출신이다. <출처:인천시청>


로버트 슈펠트 제독(Rear Admiral Robert Wilson Shufeldt), 슈펠트 제독은 1882년 5월 22일 한.미간 평화,우호,통상 및 평화조약을 교섭 서명함으로써 한국과 미합중국간의 외교관계를 처음으로 수립하게 되었다.


중국 천진에서 슈펠트와 이홍장


옛 그림에 남아 있는 화도진


조미수호통상조약집, 1882년, 규장각 소장, 1882년(고종19)에 조선과 미국이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구미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각궁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활로 크기에 비해 탄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전통은 각종 화살을 넣고 다니는 통이다.


무관상복, 무관의 복식으로 사모.단령에는 흉배와 관대가 따르기 마련이고, 버선과 목화를 착용했다(3품 당상관은 쌍호, 당하관은 단호 흉배를 달았다.


구군복,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었던 전투복의 일종, 동다리에 전복을 입고 전립을 쓰며, 허리에는 전대를 매며, 목화를 신고 등채


사령복


갑옷, 조선시대의 무관들이 입었던 전투복


병부주머니, 발병부를 넣어 두던 주머니 (허리에 찬다), 발병부, 조선시대에 군사를 동원할 떄에 사용하던 표찰


병서(兵書)


각종 문서류


문서함


철퇴와 육모방망이, 근접전투용 타살무기의 하나


조총, 임진왜란때부터 조선후기까지 널리 사용된 화승식 소총


화약통은 각종 화포 및 화기에 장전하는 화약을 넣어 다니는 통이다. 군궤는 군사 문서 등을 넣어 두는 서류함


구포, 완구와 동일한 형태의 화포로 각종 선박에 장착하여 사용, 포구에 장전하고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


비격진천뢰,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


자포, 불랑기에 사용되는 자포 화승과 병목과 탄호환을 장진한 후 불랑기에 삽입하여 발사하는 것이다.


블랑기 4호, 임진왜란 이후 사용된 대형화포로 화약과 발사틀을 포의 후미에 장전하는 후장식 화포. 5개의 자포에 화약과 발사물을 장전한 후에 발사 1호에서 5호까지 다섯종류가 있으며, 그중에서 네번째로 큰 불랑기이다. 불랑기 5호, 가장 작은 형태의 불랑기이다.

 


별황자총통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대형화포 중에서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포이다. 천자총통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대형화포 중에서 가장 큰 화포. 대장군전을 발사한다.


지자총통은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화포, 장군전을 발사한다. 현자총통은 지자총통 다음으로 큰 화포, 차대전을 발사

 


대완구, 조선시대에 사용된 대형화포로 일명 댕구라고도 하며, 돌로 만든 단석을 발사한다. 단석, 완구류에서 발사하는 탄알의 일종


삼지창을 비롯한 각종 창


화도진 전시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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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동구 화수1.화평동 | 화도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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