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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 북촌댁은 양진당이나 충효당처럼 마을에서 종갓집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으로 원래 이름은 화경당이나 마을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가장 큰 규모라서 북촌댁이라 부른다. 대지 1,700여평에 72칸에 이르는 대저택인 북촌댁은 정조대인 1797년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철종대에 증손이 류도성이 안채, 큰 사랑채,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하회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부용대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마을에서 북쪽택부터 안쪽 충효당까지는 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이 분가한 충효당을 비롯하여 하회마을에서 큰 벼슬을 하고 경제적를 부를 축적했던 후손들이 세운 큰 저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화경당(북촌댁),
조선 정조 21년(1797)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철종 13년(1862)에 증손자 류도성이 안채, 큰사랑채, 사당을 지었다. 집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의 격식을 완벽하게 갖추어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큰 사랑채의 누마루에 앉으면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300여년의 세월을 품고 서 있는 큰 사랑채 뒤편의 소나무는 하회마을을 굽이 돌고 있는 강물의 형상을 하고 있어 또 다른 볼거리이다. 화경당은 화(和)로 어버이를 섬기고 경(敬)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다. <출처: 안동시청>


안동 하회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북촌댁으로 들어가는 길


원래 이름은 화경당인 북촉댁은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화재를 막지 위해 기와와 회백토로 담장을 쌓고 있다. 대문은 솟을대문을 하고 있지만 문간채를 두고 있지는 않다.


북촌댁을 들어오는 골목길


북촌댁 안채건물.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구조로 중문 양쪽으로 작은 사랑채인 화경당과 수신와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본채 오른편에는 이 저택을 크게 중건한 철종대 류도성이 세운 바깥사랑채인 북촌유거가 있다. 이집 주인이 주로 거처하는 북촌유거는 앞면 7칸에 이루는 큰 건물로 왼쪽에 부엌, 그 옆으로 방과 대청마루, 누마루가 배치되어 있다. 누마루에서는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과 북쪽편 절경인 부용대를 비롯하여 마을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 뜰에는 화회마을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을 닮은 수령 300년의 하외마을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뒷편에서 본 북촌댁 안채.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궁궐 전각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다.


마을 북쪽편 낙동강변에서 본 북촌댁 담장


북촌댁 옆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 지은 서울의 문간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솟을대문이 있는 저택이 있다.


이 집은 문간채와 솟을대문은 크지만, 북촌댁 옆에 있어서 그런지 실제 가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회 북촌댁을 들어가는 골목길 입구의 큰길.


큰길에서 남촌으로 연결되는 골목길


큰 길가에 있는 문간채가 있는 집. 큰 길 주위로 경제력을 쌓았던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큰 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북촌댁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입구에 있는 집. 문간채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큰 규모의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집이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양반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에 대청마루와 누마루를 두고 있는 격식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안채 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는 토담을 쌓아두고 있다.


안채 왼편으로는 초가지붕을 얹은 별채가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마을에서는 중간정도의 규모를 하고 있다.


맞은편에 있는 마당이 넓고 규모가 있는 기와집


하회마을 종택인 양진당 바로 옆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 건물의 형태로 볼 때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솟을대문이 있는 큰 문간채와 본채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의 양식에서 구한말 서울의 주택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은 마당이 꽤 넓고 나무를 많이 심어 정원을 잘 꾸며놓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에서는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마도 일제강점기 일본식 주택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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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 하회북촌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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