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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고 동쪽으로는 산줄기가 낙동강과 만나는 화산이, 서쪽편으로는 낙동강의 절경인 부용대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봉화 닭실마을, 안동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이 마을은 풍산류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고위관리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마을에는 종택인 양진당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양반가옥들이 남아 있다.

 하회마을에는 조선시대 부유한 양반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오래된 고택과 함께 선비들의 삶을 보여주는 서원과 정자 등이 여럿 남아 있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동쪽편 화산자락 아래 낙동강 경치가 아름다운 서애 류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을 비롯하여 부용대 아래에 위치한 류운룡을 모신 화천서원과 마을의 유력 인사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정자인 빈연정사, 원지정사, 겸암정사, 옥연정사 등이 남아 있다. 서원이 많은 사람들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정자들은 개인적으로 조용히 쉬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빈연정사
이 정사는 겸암 류운룡이 관직을 사퇴한 후, 선조 16년(1583)에 서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살림집인 양진당 근처에 지었는데, 1914년에 풍남초등학교를 개교하면서 현재 위치로 정사를 옮겨 양진당과는 다소 떨어지게 되었다. 이 정사의 이름은 부용대 절벽 아래의 깊은 물을 '빈연'이라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지금의 형상으로는 짐작할 길이 없으나 류운룡은 정사 앞마당에 작은 연못을 파고 연꽃도 길렀다고 한다.


하회마을 서쪽 낙동강과 부용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빈연정사. 이 정자는 서애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류운룡이 은퇴한 후 지은 정자로 원래는 양진당 근처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빈연정사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촐한 건물로 온돌방 1칸, 대청마루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마루에는 앞,뒷면에 판문을 달아 놓고 있으며, 여름철에 판문을 열면 3면이 개방된 정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이다.


'빈연정사'라 적힌 현판이 걸린 대청마루 내부


빈연정사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절경인 부용대와 강변에 조성된 울창한 소나무숲.


낙동강변에 공터에 조성된 놀이마당에서 보이는 빈연정사


빈연정사 옆 초가집


하회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변을 따라서 조성된 산책로. 길가에 심어진 나무는 70년대 이후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회마을을 휘감고 도는 부용대 아래 낙동강변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홍수를 방재하기 위해 숲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의 빼어난 12절경 중 하나인 부용대


낙동강변 백사장


소나무숲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원래 제방 위에 있던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방풍림이 조성된 지역 북쪽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제방이 있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돌고 북쪽으로 흘러가는 낙동강


낙동강 제방길


방풍림 안쪽으로는 농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초가집들이 주로 들어서 있다.


초가집들이 있는 뒷편으로 북촌댁 바로 옆에 있는 원지정사가 보인다.


앞면 5칸의 '-'자 형태를 하고 있는 초가집. 마당이 넓은 편으로 중간정도의 경제력이 있던 농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제방과 양반가옥인 북촌댁 사이에는 많은 초가들이 들어서 있다.


초가 뒷편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한 양반가옥


낙동강 제방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큰 길. 옛날 낙동강 나룻터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입구의 초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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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 하회빈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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