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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서울 경운동 민병옥 가옥과 민영휘 일가 저택이 있었던 경인미술관

younghwan 2013. 2. 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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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 앞에는 '민가다헌'이라고 적힌 한옥이 남아 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경운동 민병옥 가옥'이란 이름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H형 평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건물로 안방을 비롯한 주요한 방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채광과 전망을 좋게하였다. 전통한옥과는 달리 대청마루는 작게 하고, 별도의 방에 응접실을 설치한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방들 앞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하여 보온과 채광을 고려하였으며, 현관과 출입문을 뒷편에 배치해 놓고 있다. 이 가옥을 설계한 박길용은 일제강점기에 화신백화점 등 많은 건축물들을 설계했던 건축가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개량한옥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가옥은 민영휘의 아들인 민대식이 두아들을 위해 지어준 같은 모양의 한옥중 북쪽편에 있던 한옥이다.  남쪽편에 있던 한옥은 '정순주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가 1994년 월계동으로 이건되어 '월계동 각심재'라는 이름으로 재실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옥 서쪽편에는 '경인미술관'이라는 사설미술관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은 남산골한옥마을로 옮겨진 '관훈동 민씨가옥'이 있던 곳이다. 경인미술관을 중심으로 약 4천여평의 부지는 민영휘 일가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최고 부호가 살았던 집이라 할 수 있다.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이자이기도 한 민영휘는 명성황후의 먼친척으로 구한말 대표적이 탐관오리로 임오군란때부터 공공의 적으로 지탄을 받아 그의 집이 부서지는 등 화를 입었으며, 갑오경장때는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유배를 받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탐관오리를 하면서 수탈한 재물을 불려서 조선최고의 갑부가 되었으며 휘문고등학교와 풍문여고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 경운동 민병옥 가옥, 서울 종로구 경운동, 1930년대
이 집은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이 두아들 민병옥과 민병완을 위해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지은 두 채의 주택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인 박길룡(1898~1943)이 설계하였으며, 현재 이 집은 음식점으로 고쳐서 사용되고 있다. 박길룡은 전통적인 한옥에서 채광이 잘 되지 않는 안방과 불편한 동선을 개선하고자, 모든 방들이 집약된 H자형 평면으로 설계하였다. 안방을 비롯한 주요 방들은 전면에 배치하여 채광과 전망을 좋게 하고, 대청을 한 칸 규모로 축소하는 대신 별도로 응접실을 두었다. 현관.화장실.욕실은 후면에 두었으며, 이것들을 긴 복도로 연결하여 거주자의 편의를 꾀하였다.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하였다. 이 주택은 한옥 개량 운동을 펼친 박길룡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930년에 근대적 주거양식이 전통 한옥에 접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출처:서울시청>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에 위치한 민병옥 가옥.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대표적인 개량한옥이다.


현재 건물은 '민가다헌'이라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도심한 가운데 호젓한 한옥으로 남아 있다.


이 가옥은 1930년대에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H'자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대청마루를 좁게 하고 안방, 거실 등을 전면부에 배치하고, 건물 뒷편에 현관을 두고 있다. 부엌, 욕실 등을 건물내에 배치한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방, 응접실 등 생활공간을 햇볕이 잘 드는 남쪽에 배치하고 있다 툇마루 바깥쪽에 유리문을 설치하여, 바람이 잘 통하지만 추웠던 기존 한옥의 불편함을 보완하고 있다.


거실로 보이는 큰 방 앞 마당. 전면부는 전체적으로 유리문을 두고 있어 개방된 느낌을 준다.


본채 서쪽편의 작은 별채


출입문은 현관이 있는 뒷편에 있으며, 문간채를 두고 있지 않고 작은 쪽문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가옥을 출입하는 현관을 뒷편에 두고 있으며, 마당과 정원 또한 뒷편에 넓게 두고 있다.


마당을 장식하고 있는 수석


이 가옥은 민영휘의 아들인 민대식이 두아들이 위해 2동의 개량한옥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뒷편에 있던 '민병옥가옥'만 남아 있고, 앞쪽에 있던 가옥은 월계동으로 옮겨져 재실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민병옥가옥'은 구한말 탐관오리이자 친일파인 민영휘 일가가 살았던 대지 4천여평에 이르는 한옥 중 일부이다. 이곳에는 천도교중앙교당, 라이온스회관, 운현궁, 탑골공원이 모여 있는 곳으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부호들이 모여살았던 종로 도심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이곳은 4천여평의 대지위에 있었던 친일파 민영휘 일가가 살았던 대저택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옮겨졌던 '관훈동 민씨가옥' 중 남아 있던 안채와 중문간채가 있던 곳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민병옥가옥을 포함해서 주변 4천여평이 민영휘의 가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안채와 중문간채가 있던 곳에는 사설미술관인 '경인미술관'이 세워져 있다. 미술관은 여러동의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건물들을 남산골 한옥마을로 옮기면서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고 한다.


원래 민영휘 일가가 살았던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미술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미술관 입구에 세워진 작은 정자


한옥의 형태로 지어진 전시관


중부지방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ㄱ'자형 한옥으로 건물을 지어 놓고 있다. 마당에는 다양한 현대조각을 전시해 놓고 있다.


마당 안쪽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전시관. 주전시관으로 보인다.


마당 한쪽 장독들


남산골 한옥마을로 옮겨진 민영휘 일가가 살았던 가옥 중 일부인 '관훈동 민씨가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안채와 중문, 그리고 복원한 건물인 사랑채와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다. 구한말에 주로 지어진 건물로 규제가 심했던 조선시대에 비해서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대저택이다. 인근에 있던 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 비해서 규모가 작지 않았던 대저택이다. 아마도 운현궁 못지 않은 큰 저택에서 살고자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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