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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어 지방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유행으로 불교식 장례문화인 화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유물들이 껴묻거리로 묻혔던 거대한 고분은 더이상 조성되지 않고, 껴묻거리도 형식적인 모습으로 간소화 된다. 이런 연유로 경주로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은 그 이전시대에 비해서 많이 출토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사찰이 조성되면서 불전을 크게 건축하고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승탑이 많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시대 부산은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중앙집권하에서 하나의 작은 지역으로 양주(지금의 양산)에 속한 동래군으로 편재되었다. 부산의 통일신라 유적으로 화엄10찰 중 하나인 범어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편이며 일상생활용품 등을 만들었던 토기가마터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부산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목적으로 695년(신문왕5)에 지방제도를 개편하여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통일신라의 중앙집권화는 고구려.백제.가야 토기가 사라지면서 신라토기가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전지역에 보편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통일 전부터 유행했던 앞트기식.굴식돌방무덤 등의 전통적 매장방식에 중국 당나라로부터 12지신상을 받아들여, 12방향의 둘레돌에 부조하는 풍습이 수도 경주에서 유행하였다. 지방에는 무리를 이루던 고분이 사라지고 1기의 무덤만 있는 독립묘가 나타난다. 붉교의 유행으로 불교식 장법인 화장을 하고 뼈를 항아리에 담아 묻는 매장형태가 경주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지방으로도 확산된다. 또한 사원 건립에 주력하여 지방에도 많은 사찰이 세워진다. 부산은 양주(지금의 양산)의 동래군으로 편제되고, 757년(경덕왕16)에 동래라는 한자식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부산과 관련하여, 신라왕들이 동래온천에 행차했다는 기록과 진성여왕에게 정치개혁을 건의했다가 좌절한 최치원이 해운대에 와서 머물렀다는 이야기 등이 전한다. 이 시기 불교의 보급으로 부산에도 화엄10찰의 하나인 범어사가 창건되는데, 현재 3층석탑(보물250호)과 석등이 남아 있다. 부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유적은 토기가마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많으며, 이 시기에 기와건물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출처:부산박물관>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 통일신라 766년, 국보 233호, 지리산 암벽 아래 암자터에서 발견된 곱돌을 다듬어서 만들어진 항아리이다. 항아리 표면에 15행으로 비로자나불의 조성기록과 함께 영태2년(신라 혜공왕 2년, 766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신라의 비라자나불 좌상의 제작연대가 8세기임을 확인해준 역할을 한 문화재이다. 내용은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기를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의 지방행정조직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증가한 영토와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통치조직을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정비하였다. 수도 경주는 6부 55리 260방으로, 지방은 주군현제를 기본으로 전국에 9주 5소경 117군 293현을 두어 일부 주.군.현에 중앙관리를 파견하였다. 757년(경덕왕16) 전국적인 군현 개명시에 부산은 거칠산군을 고쳐 동래군이라는 한자식 지병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양주(지금의 양산)의 12개군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동래군 밑에 옛 대증현이었던 동평현과 옛 갑화량곡현이었던 기장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출처:부산박물관>


뚜껑접시, 통일신라 7세기, 출처미상


굽다리접시,


접시, 토제벼루,


대접, 통일신라 8세기, 두구동 임석3호가마

통일신라의 생활과 문화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면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문화면에서 국제적인 당 문화 수용에 따른 변화와 수도 경주문화의 전국적 확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불교사원.성곽.건물.유원지 등 종교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시설물이 증가하면서, 유물도 기와.불상.12지신상.중국제 도자기.생활토기 등이 성행한다. 토기는 통일 전에 유행하던 삼각집선문과 반원점문이 사라지고 말발굽무늬.물방울무늬.지그재그무늬.꽃무늬 등의 찍은 무늬가 토기 표면에 장식된다. 부가구연목항아리.뚜껑접시와 같은 형태가 유행하고, 개인.가정.취락.관아.사원 등에서 규범화된 토기를 전국적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부산에서는 이러한 통일양식토기를 생산하던 가마가 두구동 임석유적에서 조사된 바 있다. <출처:부산박물관>


기와, 통일신라 8~9세기, 기장 동부리 유적


녹유전, 통일신라시대에는 바닥전, 벽전, 기단전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전(벽돌)이 주요한 건축자재로 이용되었다. 주로 바닥전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보상화문이나 연화문을 시문하여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한편 무늬가 없는 전의 경우 연유를 시유한 녹유전이 확인되고 있다. 녹유전은 귀하게 사용되어 그 예가 드문 편이며, 대개 사격이 높은 성전사원이나 원찰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최상의 건축물에 한정적으로 사용된 매우 귀한 재료로 생각된다. <출처:부산박물관>


굽다리접시, 파수부독


접시, 뚜껑접시, 오륜대유적 출토 유물, 통일신라 7세기


부가구연목항아리,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기장 교리 출토유물, 통일신라 7세기

통일신라의 장례문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삼국시대에 유행하던 앞트기식.굴식 돌방무덤 등의 전통적 매장방식이 계승되면서, 수도 경주에서는 중국으로부터 12지신상을 받아들여 무덤 둘레돌에 조각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일부 왕릉 앞에는 돌로 만든 조각상을 놓아 장중하게 보이게도 하였다. 지방에는 대규모 고분군이 사라지고, 1기의 무덤만 있는 독립묘가 나타난다. 무덤에 넣은 부장품은 종류와 양이 매우 적어졌으며, 일부 무덤에는 흙으로 만든 인형 또는 12지신상을 껴묻었다. 흙인형에는 남녀.문인과 무인.신라인과 외국인 등이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옷모양새와 머리맵시에서부터 당을 통한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신라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불교의 영향으로 불승.국왕.귀족들 사이에 화장을 하고 그 뼈를 용기에 담아 묻는 장골이 유행하였다. 부산에서 조사된 통일신라의 분묘유적으로는 기장 교리유적.오륜대유적.덕천동유적의 돌방무덤과 연산동유적의 뼈항아리가 있다. <출처:부산박물관>


뼈항아리, 통일신라 7세기, 연산동고분군

산골과 장골
통일신라에서는 불교의 융성으로 무덤을 만드는 풍속도 많이 바뀌는데, 가장 큰 변화가 시신을 태우는 화장의 등장이다. 화장한 후 남은 유골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산골과 장골이 있다. 산골은 화장한 후 매장 용기없이 유골을 산.강.바다 등에 뿌리는 것을 말하며, 장골은 화장 후 유골을 용기에 담아 땅속에 묻거나 부도.석탑 안에 봉안하는 것이다. 유골을 담은 용기는 토기.중국도자기.청동항아리 등 다양하며, 갖가지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부도에 봉안된 장골은 주로 입적한 승려들의 유골을 담은 것이며, 탑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사리용기. 불교경전.작은탑.불상.각종 공양품이 껴묻힌다. 이것을 사리장엄이라고 하며 불교경전과 당시의 불교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부산박물관>


뼈항아리, 통일신라 7세기, 출처미상


항아리, 통일신라 8세기, 산청 석남사터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신라의 중앙집권지배체제 및 지배층의 특권을 옹호해 주는 이론적 근거로서 국가의 보호 아래 크게 발전하였다. 당으로부터 전래된 화엄종 등의 종파를 중심으로 사상체계로서 성립되었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사후극락왕생사상이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확산되어 신라사회의 이념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승려는 당에 유학하여 해동화엄종을 개창한 의상과 정토신앙을 내세워 민중불교를 성립시킨 원효이다. 불교의 발달로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전국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고 불교문화가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부산에도 화엄10찰의 하나인 범어사가 678년(문무왕18)에 초창되었다고 전해지고, 9세기 흥덕왕 때 중건된 것으로 보아 불교가 융성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범어사 경내에 있는 3층석탑과 석등은 부산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출처:부산박물관>


석조여래삼존불상, 삼국시대


청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 국보 200호, 지금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탄생불, 청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


불상불탑전


녹유천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