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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박물관에서는 2013년 가을 "120년 만의 귀환, 미국으로 간 조선악기"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전시회에 전시된 유물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당시 조선에서 가져간 구한말 악기들과 국립국악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악학궤범'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음악과 관련된 중요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구한말 조선은 1880년대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이후 서양열강들과 차례로 국교를 수립하면서 세계와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조선은'대조선'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지고 처음으로 박람회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악공들이 가져간 악기들은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모드 10점(거문고, 당비파, 양금, 해금, 피리2, 대금, 생황, 용고, 장구)이며, 금번 전시회에는 해금과 용고를 제외한 8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100년이 조금 넘은 악기들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악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구한말 태평양을 건너 먼 이국땅에 우리 문화를 소개했던 역사적인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

120년 만의 귀한, 미국으로 간 조선 악기
대조선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지고 처음으로 참여한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는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높은 문화와 예술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하는 첫 게기가 되었다. 조선의 악공 10명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조선 음악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후 먼 이국땅에 남게 된 이 악기들이 12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의 곁으로 왔다. <출처:중앙박물관>


120년만의 귀환, 미국으로 간 조선 악기

국립국악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은 '120년 만의 귀환, 미국으로 간 조선 악기'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만국박람회에 출품하였던 국악기들이 떠난지 12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조선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지고 처음으로 참여한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는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높은 문화와 예술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하는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그동안 잊혀졌던 국외 소재 고악기 등 국악 유물을 다시금 조망하고, 1800년대 후반, 우리 악기의 음악적 가치와 공예적 아름다움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중앙박물관>


시카고 만국박람회, 1893년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참가여정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와 조선전시실, 시카고만국박람회(1893.5.1~10.30)는 세계 50여개국이 참여하여 당시 가장 성공적이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였다. 조선의 물품은 전통 가옥 양식을 한 조선전시실에 장신구, 의복, 자기 등이 전시, 판매되기도 하였다. 이 만국박람회는 조선이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노력과 주권국으로 조선의 문화와 예술을 전 세계에 소개한 공식적 첫 무대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전시관을 지키던 젊은 조선인은 관람객들의 여러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에 지쳐 우리나라의 지도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종이를 봍여 놓았다.
"Korea와 Corea는 둘다 틀리지 안지만 Korea로 써 주기 바란다. 조선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국가다. 조선인은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조선어는 중국어나 일본어와 다르다. 조선은 미국과 1882년 조약을 맺었다. 여기 전시된 모든 물건들은 정부의 물건들이다. 조선은 전기를 쓰고 있고 증기선, 전보를 사용하지만 아직 철도는 없다. 조선인들은 기와로 만든 지붕과 따듯하게 데워지는 마루가 있는 편안한 집에서 생활한다. 조선의 문명은 오래되었다. 면적은 십만평방피트이고 인구는 천육백만이며 기후는 시카고와 비슷하다. 지리적 한경은 산이 많고 광산물은 아직 덜 개발되었으며 쌀, 콩, 밀 등의 농산물들이 많다."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와 조선음악
시카고만국박람회는 대표 정경원을 비롯해 10명이 궁중음악인이 참가하여 조선의 문화와 예술을 서방에 처음 알렸다. 서양인들은 동양고대음악을 전승한 조선음악에 신비로움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시카고만국박람회 출품 국악기는 폐회 후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모두 10점(거문고, 당비파, 양금, 해금, 피리2, 대금, 생황, 용고, 장구)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돌아오지 못한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국악기 해금, 용고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출품 악기는 모두 9종 10점이다. 대부분의 조선악기는 120여 년의 시간에도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보관이 잘 되어 있지만 해금과 용고는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 전시에는 오지 못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해금(Two-Stringed Fiddle), 지순자 기증, 국립국악원, 말총 활줄로 만든 대나무 활대를 사이에 끼워 긁어서 소리내는 찰현 악기이다. 음색이 도특하여 '깡깡이'. '깽깽이'라고도 불린다. 궁중의식 음악부터 줄풍류와 대풍류, 노래반주는 물론 민속음악 등에 두루 쓰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용고(Drum with Dragon Decoration), 국립국악원, 대취타에 편성되는 악기로 허리에 매고 연주한다. 용무늬 장식이 있다는 점에서 북의 모양이 교방고, 좌고 등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이들 북 중에서 가장 작다. 연주자가 북채를 쥔 손에 한삼을 끼고 연주하는 것이 특이하다. 행악과 관련된 기록에서는 행고라는 명칭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피바디에섹스박물관과 국악기(The Peabody Essex Museum and Korean Instruments)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미국 동부 지역 세일럼(Salem)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9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우리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박물관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80년부터 1916년까지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관장이었던 에드워드모스(Edward S Morse)때문이다.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폐회 후 거문고 등 10점의 악기는 모두 피바디에섹스박물관으로 기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향피리(Doble-Reed Bamnoo Oboe),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관대에 겹서를 꽂아 입에 물고 연주하는 관악기이다. 향피리는 중국에서 전래된 당피리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 몸집에 비해 음량이 크고 길게 소리낼 수 있어 궁중음악을 비롯해 민간음악에서도 주선율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향피리 겹서, 영어로 reed라고 하며 피리에 소리를 내는 부분이다.


장구(Hourglass Shaped Drum),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허리가 잘록한 나무통 양면을 북편과 채편으로 나누어 소리내는 악기이다.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와 당악에 쓰였고 오늘날에는 궁중 음악뿐 아니라 농악, 탈놀음 등의 다양한 민속 음악 연주에까지 널리 사용한다. 오른편은 채로, 왼편은 손으로 치는 것이 일반적인 연주법인데 현재는 곡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형시켜 연주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당비파(Lute with Chinese Origin),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통일신라시대부터 비파를 연주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 후기부터 점차 쓰임이 줄어들었다. 중국 음악 계통의 당악 등에 편성되었고, 네 개의 줄을 나무판이나 손으로 뜯어 연주한다. 목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곡경비파라고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양금(Dulcimer),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우리나라에는 18세기 청나라로부터 소개되었다. '서양의 금', '유럽에서 들어온 악기'라는 의미에서 '서양금', '구라철사금'이라고도 불린다. 네 줄이 한 벌인 14벌의 쇠줄을 사다리꼴 모양의 오동나무 통에 얹어 나무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줄풍류와 가곡 반주에 사용된다. <출처:중앙박물관>


거문고(Six-Stringed Plucked Zither),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고구려의 대표적 현악기로 왕산악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왕산악이 거문고로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것이 유래가 되어, '현학금'으로 불렸으며 훗날 '현금'이라 하였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이어 만든 울림통 위에 여섯 줄을 거는데, 세줄은 16개의 괘 위에 올려 놓고, 다른 세줄은 안족 위에 건다. 오른손에 잡은 술대로 내려치거나 뜯어 연주하며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에 두루 사용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생황(Mouth Organ),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이다. 박으로 몸통을 만들어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관을 꽂고 취구에 입김을 불어 연주하는데, 주로 17관 생황이 쓰인다. 고구려, 백제 음악에 사용된 기록이 있고 통일신라시대 종이나 탑 등 불교 조각에도 새겨진 만큼 우리 역사와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해온 악기이다.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러 궁중음악에 사용되었으며 풍류방에서도 연주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금(Large Bamboo Flute),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대나무로 만든 악기로 취구.청공.치공.칠성공이 있다. 취구가 있는 악기부분을 한쪽 어깨에 얹고 연주하는 횡취악기이다. 궁중음악, 풍류음악, 민간음악 등에 두루 쓰인다. 청의 울림으로 인한 음색의 변화가 특징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국악유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생활의 일부분으로 음악을 연주하며 하늘과 교감하고 평안과 안녕을 꿈꾸어왔다. 찬란한 기록문화를 이뤄온 우리 민족은 음악에서도 다양한 자료들을 남겼다. 우리 음악의 흥과 멋이 집약된 국악유물(고악보, 고악서, 고악기, 음악도상 등)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국악의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민족문화 유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정해년의 궁중잔치, 고종 24년(1887), 비단에 색, 고종 24년 1월에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장면을 그린 10폭 병풍이다. 그림의 구성은 1~2폭은 <근정전 진하>, 3~4폭은 <만경전 내진찬>, 5~6폭은 <재익일회작> 등이 묘사되어 있다. 왕실의 성대한 잔치장면과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화려한 공연을 통해 조선왕실의 의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출처:중앙박물관>


임인년의 잔치를 기록한 책, 대한제국 광무6년(1902), 국립국악원, 고종이 51세가 되어 기로서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는 진연과 고종의 망육순을 기념하는 진연을 기록한 책이다. 이때의 진연 모습이 임인진연도병에 담겼다. <출처:중앙박물관>


악학궤범, 영조 19년(1743), 국립국악원, 조선 최초의 실용음악 이론서로 1492년(성종24) 왕명에 따라 예조판서 성헌 등이 엮은 것이다. 9권 3책으로 악론, 이기, 향.당악의 정재, 의물, 복식 등 음악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궁중음악제도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그림을 남겨 궁중음악 연구의 기본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달 아래에서 생황을 부는 그림, 김양기,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달빛 아래 붉은 난간에 기대어 앉아 생황을 불고 있는 신선의 이미지를 묘사한 그림으로서 김홍도의 아들 긍원 김양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산수.화조.풍속화 등에서 단원의 화품을 따랐지만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신선도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인물의 자세와 묘사 등에서 유사함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거문고 줄 고르기, 신윤복,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이 그림은 조선시대 기녀의 일상을 보여주는 풍속화이다. 머리 맵시가 풍성한 여인들이 악기의 줄을 고르고 있고, 옆에 있는 여자아이는 두 손을 모은 채 다소곳하게 앉아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거문고의 소리는 둔탁하면서도 힘이 있고, 거친 듯 맑은 음색으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악기 중 으뜸에 속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뒷마당에서이 잔치, 이명기,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화면의 낙관으로 보아 조선후기 초상화에 뛰어났던 화산관 이명기의 그림이다. 뒤뜰에서 여흥을 즐기는 장면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유행한 사인 풍속을 보여준다. 넓은 연못이 있는 뜰에서 목이 굽은 당비파를 켜는 기녀와 거문고를 타는 남자의 음악 연주를 두 인물이 감상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피리를 불고 있는 어린 신선, 김홍도, 19세기, 종이에 색,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 피를 열심히 불고 있는 어린 신선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어깨에 맨 바구니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영지가 담겨 있고, 어깨에 매달린 붉은 호리병은 화면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신선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호리병은 수명을 늘리고 생명의 근본을 복돋우는 선악이 담겨 있다. 따라서 호리병을 맨 어린 신선은 장생수복을 상징하며, 이는 인간의 바람과 열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세지향적인 그림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악장요람, 조선후기, 편자.연대 미상의 거문고 및 가야금 악보로 책의 앞부분은 '속악가사상'이라 하여 종묘악장.경모궁악장.무안왕묘악장.종묘영녕전에악보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 악보없이 악장의 가사를 한문과 국문으로 나란히 적어 놓았다. 이어 종묘제례악.경모국제례악보.낙양춘.만.무안왕묘제악보의 거문고.가야금 악보가 실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악후보, 보물1291호, 영조35년(1759), 국립국악원, 오늘날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보는 총보처럼 되어 있는데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노래 가사 등이 한꺼번에 기보되어 있다. 왕이 손수 열람하는 악보인 만큼 고급 한지에 정성들여 음을 기록하였으며 궁중의 위엄과 품격을 느낄 수 있다. 『대악후보』는 예술적, 학술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1291호로 지정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삼죽금보, 19세기 추정, 국립국악원, 명금 홍기후의 제자 이승무가 스승의 가락과 당시의 거문고 곡조를 모아서 펴낸 거문고 악보이다. 연주에 따르는 상세한 주서와 원곡 이외에 변주되는 다른 가락이 첨부되어 있어 당대 거문고 연주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악곡으로는 보허자, 여민락, 영산회상과 천년만세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속악원보, 연대미상, 국립국악원, 7권5책으로 구성되며, 권1~3은 제악보, 권4.5는 여민락의 관.현악보, 권6은 가야금.비파보, 권7은 방향보인 영과, 보허자 악보가 수록되었다. 권1~5와 권6.7에 사용된 기보법이 정간보와 율자보로 서로 달라서 당시 음악적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출처:중앙박물관>

옥적
옥적은 옥으로 만든 것으로 취구, 청공, 지공 등 대금 모양을 본뜬 관악기이다. 옥적은 실제 연주용으로 제작되었다기보다 신성한 악기로, 애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국내에는 국립경주박물관, 국악박물관 등을 비롯해 맹사성 등 여러 가문의 옥적이 전승되고 있다. 이 옥적은 1927년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옥적, 19세기,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옥으로 만든 관악기이다. 옛사람들은 옥을 천지의 정수이며 음양에 있어 지극히 순결한 것이라 생각하고 대지의 정물로 여겨왔다. 옥적은 실제 악기로 사용되기보다 공이 큰 신하들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등 상징적 의미가 크다. <출처:중앙박물관>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찬연한 역사와 수준높은 문화를 지닌 자주국임을 천명하고자 했던 동아시아의 힘없고 가난했던 나라 조선은 세계인들에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20년의 세월동안 역사의 부침과 격동의 시기를 이겨내고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국가로 발전하고 있다. 국립국악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국악유물들의 귀환 전시를 통해 전통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특별전시회 모습. 19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참여했던 악기를 가운데 전시하고, 이 전시회를 개최한 국립국악원 소장 문헌들을 함께 전시하여 국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