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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청대를 지나면서 계속이어져 온 중국의 대외무역금지조치로 산동성의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칭다오는 19세기 아편전쟁에 영국에 패한 이후 청나라 정부는 해안방어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칭다오의 존재를 1891년 승인하였으며, 1897년 독일함대가 칭다오지역을 점령하면서 청나라정부는 칭다오를 독일에 조차하는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후 독일은 칭다오에 항만시설을 건설하고, 칭다오-지난 철도를 부설하고, 칭다오 도시기반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칭다오는 현대화된 도시로 급속히 변모하였으며, 산동지방을 통한 식민지교역의 관문이 되었다. 1914년 1차대전에 참전한 일본이 칭다오에서 독일세력을 몰아내고 칭다오를 중심으로 산동지방에 영향력을 미쳤으며 이는 청나라의 종말을 가져온 5.4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칭다오는 인구 870만의 거대도시로 바뀌었지만, 현재의 모습은 실제로 독일이 칭다오를 점령한 시점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칭다오 도시발전은 개항지에서 대도시로 탈바꿈한 부산, 인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청나라는 방어를 위해 칭다오를 설치하다.(The establishment of Qingdao in the Qing dynasty(1891.6~1897.11))
아편전쟁 패배와 함께, 외국군대가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외국군대의 침략에 대항하여 1891년 청나라 정부는 교주만(Jiaozhou bay)일대 해안을 방어하기 위하여 수비대를 보냈으며 공식적으로 칭다오의 존재에 대해서 승인하였다. 청나라 정부의 해안방어시스템에서의 중요한 역할은 칭다오 건설이 산동지방 내륙과 해안도시간의 변화를 촉진하였다.
With the breakout of the Opium War, foreign troops began to invade China. To guard against foreign invasions, in Jun 1891, the Qing goverment sent garrisons to the coast of Jiaozhou Bay and formally approved the establishment of Qingdao. As an important part of the coast guard system of the Qing government, the establishment of Qingdao promoted the transformation of the city from the coast area to the inland areas of Shandong. <출처:칭다오시박물관>


칭다오 해안 옛 사진. 현재의 인민회당 부근이라고 하는데 보이는 건물은 아마도 천후궁 건물인 듯 하다.


청나라 병사들이 사용한 소총과 철포(Iron cannon)

독일 식민지 건설(The German Colonization, 1897.11~1914.11)
1897년 독일 군함은 칭다오를 공격하여 점령하였고 이다음해 독일은 청나라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악명높은 "교주 양허 조약(Jiaozhou Concession Treaty)"를 체결하여 칭다오지역을 향후 99년 동안 조차하게 되었다. 그들의 식민지 약탈을 위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하여 독일은 도시 기반시설, 항만, 철도, 광산 등을 건설하면서 칭다오는 식민지교역을 위한 관문이 되었다.
In 1897, German warships attacked and occupied Qingdao. In the following year, the Germans forced the Qing government to sign the notorious "Jiaozhou Concessio Treaty" and obtained the leasehold of Qingdao for ninety-nine years. To cater to their colonial plunder needs, the German colonists set up a colonial economy development system by emphasizing the construction of urban utilities, seaport, railway and mines, and turned Qingdao into a colonial trading port. <출처:칭다오시박물관>


독일해군기, 헬멧, 보병용 칼

계획도시의 조기 건설


독일점령기에 사용된 맨홀뚜껑과 하수관로


20세기초 칭다오에 건설된 서양식 건축물들


칭다오 도시계획 도면

20세기초 칭다오 잔교, 기차역, 대항 항만이 건설되다. (The restored scene of Zhanqiao Pier, Railway Station and Dagang Port at the beginning of 20th century.)


칭다오의 잔교(Zhanqiao Pier), 철도, 다강(大港)은 20세기초 독일점령기동안 칭다오의 급속한 개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잔교는 칭다오시 역사에 최초로 건설된 인공 항만시설이었다. 잔교 부두는 청나라 정부의 해안방어시스템의 일환으로 1892년에 처음 건설되었다. 독일점령기 초기에는 잔교가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유일한 항만시설이었으며, 독일은 화물운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철도시설을 설치하였다.
Zhanqiao Pier, Railway Station, Dagang port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is a silhouette of the urban development during German occupation. Zhanqiao Pier was also called iron dock or front sea Zhanqiao Pier and it is the first artificial dock in Qingdao's modern history. The pier was constructed in 1892 after the establishment of defense work by Qing Government in Jiaozhou region. At the beginning of German occupation, Zhanqiao Pier was the only cargo dock available. The Germans laid down light rail on the pier to facilitate transportation. <출처:칭다오시박물관>


칭다오 기차역의 건설은 1901년 가을에 완료되었다. 1904년 3월에는 대항(Dagang port) 항만의 첫번째 도크까지 철도가 연결되었으며 지난-칭다오간 철도를 통해 중국내륙지역과도 연결되었다.
The construction of Qingdao Railway station was complete in the autumn of 1901. On march 6, 1904, No.1 dock of Dagang port was formally open and the Jiaozhou-Jinan railway reached the dock. On June 1, 1904, Jiaozhou-Jinan railway was open to traffic and it connected the hinderland of Shandong to Qingdao as well as the international market. <출처:칭다오시박물관>


칭다오 항만과 철도 건설 관련 사진


당시에 사용되었던 자재

개항이후 식민지경제


소다공장에 사용된 시계(Watch used by a Soda factory)와 독일점령기에 미국회사 Texaco에서 사용된 시계(It is a watch for guard belonging to the American firm of Texaco Inc during the German occupation period)


독일 조선소에서 사용된 칼리퍼(Calipers used at German shipbuilding docks)와 칭다오-제난간 열차 승무원 뱃지와 증명서(Qingdao-Jinan Railway staff certificate and badge)


독일난로(German Fireplace during German Occupation)와 칭다오 발전소 엔진실에서 사용된 전구


칭다오의 주요 산업시설


주요 공장 기계들


공장에서 사용된 기계


독일 회사에서 만든 제품들 (접시, 병, 컵)


칭다오에서 사용된 독일은행의 수표, 동전, 지폐

식민지 시대 교육과 문화


식민지시대 학교


천주교회 75주년 기념컵


독일점령기에 사용된 나무로 만든 냉장고


독일제 재봉틀과 금고


독일점령기 기독교 학교


칭다오에서 사용된 독일 우표


1901~193년까지 발간된 신문인 <胶州报>


독일점령기 생활 모습


독일조차지 경계석(Boundary Stone during German Occupation)."Jiaozhou Lease Treaty, 교주지역 임차조약"에 규정된 토지의 범위를 볼 수 있는 표지석이다. 독일점령기간동안 중국정부와 독일정부는 공동으로 경계석을 설치하였는데, 이 표지석은 청양지겨 마을에서 1965년 발견되었다.
During German occupation in Qingdao, with a view of the scope of leased land prescribed in "Jia Ao Lease Treaty", the Chinese government and German government conducted a joint survey and boundary stones were erected at the dividing line of "German Territory" and "China Territory" This boundary stone was found in the summer of 1965 at Haojiaying village of Chengyang district. <출처:칭다오시박물관>


독일식민지시절 칭다오 거리 모습

일본 점령기,
1914년 제1차세계대전때 일본은 칭다오와 산동지방에 대한 주권을 중국에 돌려준다는 명목을 독일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후 일본은 독일이 건설한 항구, 철도, 도시기반시설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물자를 약탈하였으며, 식민지 산업 건설에 적극적이었다.
In 1914, the 1st World War broke out. Japan declare war against Germany and occupied Qingdao under the pretence of reverting the sovereignty of Qingdao and Shandong to China. The japanese plundered the local goods through the port, railway and urban utilities constructed by the Germans, and at the same time, devoted great efforts to developing Japanese colonial industry and commerce. <출처:칭다오시박물관>


일본점령기 모습


일본 점령기 칭다오 거리


방직회사 상표와 도장


일본인 방직회사와 일본 산업시설들


일본 점령기 자료들


칭다오시에 있었던 일본회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