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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다오박물관] 5.4혁명 이후 근대산업도시로의 발전

younghwan 2014. 1. 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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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5.4운동은 중국 베이징대학 교수, 강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으로 중국 공산당과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아시아 근.현대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1차세계대전이 독일을 패배로 종결됨으로써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칭다오시를 중심으로 한 산동지방에 일본군이 참여하여 점령하고 일본은 중국정부와 협상을 통해 독일이 가지고 있던 이권을 승계받고자 하였으며, 파라강화회의에서 이를 승한하는 것으로 결정하자, 베이징대학 학생과 교수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위운동이 일어났으며, 중국 전역으로 반일,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5.4운동의 결과로 중국 정부는 칭다오에 대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이 산동지방에서 영향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중국정부는 칭다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도시의 건설과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방면으로 빠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으며, 특히 경공업과 섬유공업분야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5.4운동 민족주권회복(The resumption of Qingdao's Sovereignty, 1922.12~1938.1)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의 관심은 독일 조차지역이었던 칭다오 주권 회복이었다. 그것은 당시 중국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이러한 국가적인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5.4운동'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범세계적인 애국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2년 중국은 칭다오지역 주권회복을 재개했다. 칭다오의 주권을 회복한 이후 칭다오는 도시의 건설, 문화, 교육, 민족산업, 선진적인 해양조사 등에서 빠른 발전을 이루었으며, 특히 경공업과 섬유공업분야가 두드러졌다.
After the 1st World War, the focus of the Chinese nation was the resumption of Qingdao's sovereignty. It became the supreme mission of the entire nation at that time. That led to the world-famous "May Forth Movement". Influenced by the patriotic movement, China resumed the sovereignty over Qingdao on December 10th, 1922. From then on, Qingdao entered a new period of development characterized by rapid development in the fields of urban construction, culture, education and national industry, and preliminary systems for marine research and industrial development, especially for light and textile industries. <출처:칭다오시박물관>


1922년 중국이 접수한 칭다오수도국 문건(Document on China's Takeover of Qingdao in 1922)


1915년 이대쇠(李大钊, Li Dazhao) 격문 (A Public Notice of Li Dazhao). 이대쇠는 1910년대 진독, 루쉰 등과 함께 베이징대학 재직시 마르크스주의 연구회를 결성하고 이를 선전하는 많은 글을 썼다.


중국 5.4운동 관련 자료


5.4운동 표어(May Fourth Movement Banners), 5.4운동 관련 만화(May fourth Movement Cartoons)


상공업계 5.4운동 관련 탄원서(Petition No.1 of the Businessmen  Salvation team)


5.4운동 전단지(May Fourth Movement Leaflets)


30년대 칭다오 특별시 건설 계획, 5.4운동으로 칭다오에 대한 주권을 개발한 중국 국민당은 기존이 도시를 근대도시로 적극적으로 개발하였으며, 민족 상공업육성에 힘썼다.


1930년 칭다오시 도시개발이 진행되던 당시의 모습


칭다오-지난간 철도 중국 회수를 기념하여 만든 종(Commemorative Bell foe China's takeover of the Qingdao-Jinan Railway)과 1930년 칭다오 특별시 설치를 기념해서 만든 뱃지


1930년대 칭다오에 지어진 건축물. 천주교당, 화석루를 비롯하여 팔대관경구의 서양식 건축물들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1929년 칭다오 항만사무소에서 사용한 전화기,  칭다오시 정부에서 1935년 발행한 채권


1932년 타이동(Taidong, 台东)지역 발전 계획


서진공원 표지석


1931년 영국 담배회사에서 종업원 근대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한 펀치시계 (The punch clock used by Great Britain Tobacc Company to manage its workers in 1931)


1930년대 사용한 청기와


1930년대 일본 방직공장 실험실에서 사용한 원사 무게를 재는 장비(Yarn Weight Insturment)


상공업의 발전


1930년 칭다오지역 상공업 생산 통계와 관련된 자료들


칭다오지역 방직공장과 상공업시설들


1930년대 칭다오지역 제철소에서 사용한 송풍기


칭다오지역 민족교육


산동대학배지(Certification and badge of Shandong University), 국립산동대학목도장(Seal of the preparation Office for Shandong University)


칭다오지역 신문


1930년대 칭다오지역 학교


1935년 칭다오 철도중학교 발간 출판물(Qingdao Railway Middle School Publication), 1936년 교육관련 잡지


1930년대 칭다오지역 체육활동


17회 북중국 체육회 뱃지(Certification and badge of the 17th North China Sports meeting),칭다오기상대 인장(President seal of Qingdao Observatory)


1930년대 출판물


칭다오를 대표하는 문인들. 캉유웨이(康有为, 1858~1927), 중국 청나라말기 학자이자 정치가로 무술변법 운동의 중심적지도자이다. 원이둬(闻一多, 1899~1946), 중국 현대문학시인. 라오서(老舍, 1899~1966), 중국 북경출신으로 칭다오 산동대학교수를 근무하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자산가의 자녀> 등이 있다. 칭다오 구도심에 그를 기념하는 노사공원이 있다. 왕퉁자오(王統照, 189~1957), 산동성출신으로 '문학연구회'에 참가하여 창작활동을  한 중국의 소설가겸 시인, 주요 저서로 <봄비의 밤., 일엽> 등이 있다.


량스추(梁实秋, 1902~1987). 선충원(沈从文, 1902~1988), 칭다오시에서 활동했던 현대문학가. 훙선(洪深, 1891~1955), 중국 최초로 서유런 근대극 방법론을 도입했던 극작겸 영출가, 영화감독. 萧红(1911~1942), 萧军(1907~1988) , 중국 현대문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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