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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부(曲阜) 공묘에서는 대성전 앞 마당에 행단이 세워져 있는데, 중국 송나라때 단을 쌓았으며, 금나라때에 오늘날과 같은 정자를 크게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행단은 명나라때인 1389년에 크게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대리석 난간이 있는 단을 쌓고 그 위에 앞면 3칸, 4각형을 하고 있으며 지붕은 유리기와를 얹은 2층지붕을 하고 있다. 행단 내부에는 청나라 건륭제가 세운 행단찬비(杏壇贊碑)가 세워져 있다.

 행단은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전해지면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는 않다.우리나라에 유학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어떤 연유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균관 또는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고 강당인 명륜당을 세워 강학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살았던 집에 사당을 세운 이래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공묘는 중국 각지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지역에 세워진 공자묘의 모범이 되는 곳이지만 공간배치가 다른 곳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경 국자감, 성균관, 향교 등은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과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이 분리되어 전학후묘, 전묘후학, 동묘서학 등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곡부(曲阜) 공묘는 대성전과 행단이 같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고, 서적 등을 보관하던 규문각이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행단(杏坛, Xingtan Pavilion)
It was built on the place where Confucius used to lecture to his disciples. The terrace was built in the Song Dynasty, and the apricot trees were planted here, the pavilion was built on the site of the terrace in the Jin Dynasty and rebuilt in the Ming Dynasty(1389). <출처:취푸 공묘>


행단은 공자가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졌다. 현재의 행단은 송왕조때 세워졌으며, 살구나무가 이곳에 심어졌다고 한다. 정자건물은 금나라때 처음 세워졌고, 명나라때인 1389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공자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 정문인 대성문을 들어서면 측백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넓은 정원과 강학공간을 상징하는 행단이 세워져 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행단


행단 앞에 세워져 있는 석물. 밤에 횃불을 밝히는 정료대로 생각된다.


행단 현판


석재로 쌓은 단 위에 정자를 세우고 있다. 자금성과 비슷한 형태의 난간은 후대에 중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2단으로 쌓은 대성전과는 달리 1단으로 쌓고 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행단 난간.


행단 내부.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행단 내부에 세워진 비석. 행단찬비(오른쪽)는 청나라 건륭제가 세웠다고 한다.


행단에서 보이는 대성전


행단내부에서 보이는 대성문


서쪽편에서 본 행단


대성전 앞 월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행단


대성전 월대


대성문에서 행단으로 들어오는 길.


공자가 손수 심은 전나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선사수식회(先师手植桧, The Hui Tree planted by master). 전설에 따르면 이곳의 전나무는 공자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면 여러차례 죽고 새로 났으며, 현재의 것은 청나라 옹정제때인 1732년에 새로 난 것이라고 한다.

Rumour (Legend) has it that it was planted by Confucius himself, undergoing flourishing and withering for several times, the present tree was reborn in the tenth year under the reign of Yongzheng of Qing Dynasty(1732) <출처: 취푸 공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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