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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푸(曲阜) 공묘(孔廟)의 강학공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역대 황제들이 하사한 그림, 글, 서적 등을 보관하던 장소인 규문각(奎文阁)을 지나면, 중국 시안(西安)의 비림과 함께 역사적 가치고 높은 비석들인 십삼비정(十三碑亭)이 있는 정원으로 들어선다. 십삼비정(十三碑亭)은 중국 역대 황제들이 공묘에 세웠던 13개의 비석이 있는 정자를 말한다. 13개의 비정(碑亭)은 금대에 세운 것 2기, 원대의 것 2기, 청대의 것 8기가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금나라 6대 장종때인 명창2년(1191)에 세워졌으며, 공묘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유학은 한나라 이래로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취푸(曲阜) 공묘(孔廟)는 역대 황제로부터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아 왔다. 중국은 역사이래로 중원에 자리잡은 한족(漢族) 정권과 북방 이민족 정권이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묘 대성전 앞에 세워진 십삼비정은 모두 이민족 정권이었던 금(金), 원(元), 청(淸)대 황제들이 세웠으며, 한족 정권이었던 명대 비석은 규문각 앞 정원에 3대 태종(영락제)와 9대 효종이 세운 것이 있다.

 십상비정을 지나면 공자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중앙에 대성문(大成门)을 중심으로 동쪽에 금성문(金声门), 서쪽에 옥진문(玉振门)을 두고 있는데, 이는 맹자가 언급한 '金声玉振, 재주와 지혜가 충분히 조화를 갖추고 있다'을 뜻하며, 이는 공자의 완성된 인격을 가르치는 말이다. 대성문에는 공묘에서만 볼 수 있는 두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솟아오른 모습을 조각한 기둥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청나라 옹정제때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으로 옹정제가 대성문, 금성문, 옥진문 현판과 주련을 직접 썼다고 한다.

십삼비정(十三碑亭, Thirteenth-tablet pavilion)
There are two pavilions of Jin Dynasty, two pavilions of Yuan Dynasty and nine pavilions of Qing dynasty in store here. The pavilions of Jin Dynasty, lying behind the Kuiwen Tower, were built in the second year under the reign of Mingchang of Jin Dynasty(1191). The sets of brackets on top ot the columns were bold and unconstrained: the arrangement was thinly scattered and the structure was exquisite. It was the oldest extant construction in the Confucian Temple. <출처: 취푸 공묘>


역대 황제가 세원 비석이 있는 비정(碑亭). 우리나라에서는 비각(碑閣)이라고 부르는데 공묘에서는 비정(碑亭)이라 부른다. 벽돌로 건물을 세우고 유리기와를 얹은 2층 지붕을 하고 있다.


또 다른 비정(碑亭).


역대 황제들이 세운 비석. 거북받침돌 위에 비석을 세운 전통적이 비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옆쪽에서 본 비석


십삼비정(十三碑亭)이 있는 정원


정원 한쪽편에는 오래된 비석들을 볼 수 있다. 한나라 이후에 공묘에 세워진 오래된 비석으로 보인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출입문 앞 정원

대성문(大成门, Dacheng Gate)
It was first built in the third year under the reign of Chengning of the Song Dynasty (1105). With Jinshen Gate to east and Yunzhen Gate to the west, whose name was due to the hall of Great Accomplishment (Jingsheng Yuzhen according to the saying "Confucius achieved a great accomplishment as from Jinshen, the beginning, to Yuzhen, the end" of Mencius). It was rebuilt after a fire in the second year under the reign of Yongzheng in the Qing Dynasty (1724) with a scale and an antithetical couplet inscribed by the emperor Shizong on it. <출처: 취푸 공묘>


규문각에서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삼도(三道)


공자를 모신 대성전 정문인 대성문(大成门, Dacheng Gate). 대성문(大成门)은 송나라 숭녕(崇宁) 3년(114)에 처음 세워졌다. '크게 성공한다.'는 의미를 가진 대성문(大成门) 동쪽에 금성문(金声门), 서쪽에 옥진(玉振门)을 두고 있는데, 이는 맹자가 언급한 '金声玉振, 재주와 지혜가 충분히 조화를 갖추고 있다'을 뜻하며, 이는 공자의 완성된 인격을 가르치는 말이다. 현재의 건물은 청나라 옹정제때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이라 한다. 


대성문 계단 답도


대성문 기둥은 용이 감싸고 있는 형태로 조각해 놓고 있는데, 이는 이곳 공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기둥에 새겨진 용은 하나의 진주를 함께 물고 하늘로 솟아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룡희주二龙戏珠'라 부른다.


대성문 현판. 청나라때 대성문을 중건하면서 옹정제가 직접 쓴 글씨라 한다.


대성문 양쪽 기둥의 주련 또한 청나라 옹정제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대성문에 걸려 있는 중국종


대성문에서 대성전 앞 정원에 세워진 행단(杏壇)으로 들어가는 길.


대성문에 있는 기념품점. 죽간이나 인장 같은 기념품이 있다.


규문각에서 대성문으로 연결되는 삼도(三道)

금성문(金声门, Jinsheng Gate)
It was first built in the third year under the reign of Chongning of the Song Dynasty(1104) whose name was dure to the Hall of Great Accomplishment (Jinshen Yuzhen according to the saying" "Confucius achived a great accomplishment as from JinShen, the beginning, to Yuzhen, the end" of Mencius). It was rebuilt after a fire in the second year under the reign of Yongzheng in the Qing Dynasty(1724).


공묘(孔廟) 강학공간이라 할 수 있는 규문각 정원에서 역대 황제들이 세운 비정(碑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원래는 규문각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이곳은 작은 쪽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출입문과는 달리 이름이 없다.


출입문에서 금성문으로 연결되는 길


금성문(金声门)은 대성문과 함께 송나라 숭녕3년(1104)에 처음 세워졌다. 맹자에 언급된 공자의 완벽한 인격체를 뜻하는 금성옥진(金声玉振)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화재로 불타버린 후 청나라 옹정제 2년(1724)에 중건되었다.


금성문(金声门) 현판 또한 청나라 옹정제가 직접 쓴 글씨라 한다.


금성문에 세워져 있는 비석

승성문(承圣门, The gate of Chengshen)
Main gate to the east Section of the temple, it was originally built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and was rebuilt in the Ming Dynasty. In Jin Dynasty, it was named "Yanshen Gate" and was given the present name of "Chengsheng Gate" by the emperor in the 7th of Yongzheng of Qing Dynasty(1729), which means "succeeding to the throne".


승성문(承圣门)은 공자 대성전 동쪽 공자 후손들을 모신 사당을 출입하는 문이다. 이 문은 북송대에 처음 세워졌으며 명나대 중건되었다. 금대에는 '연신문燕申门'이라 불렸으며 청나라 옹정제 7년(1729)에 승성문(承圣门)을 바뀌었으며 '공자를 계승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공묘 대성전 앞 십삼비정(十三碑亭)이 있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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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바탱고 2014.02.26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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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포 2014.02.28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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