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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인들의 무덤

younghwan 2014. 3. 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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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촌호수가 있는 송파구 석촌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는 60여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3호분과 4호분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성백제기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서쪽편 한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무덤들은 고구려 매장방식인 돌무지무덤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백제는 한.중.일 해상무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국제적인 성격이 강했던 국가였는데, 백제의 무덤 방식 또한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초기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지배층은 돌무지무덤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후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석실분이라 불리는 돌방무덤이 만들어졌다.한성백제는 당시 한반도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보유하면서 강성했던 국가였지만, 지배층의 무덤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며, 무덤 양식의 특징때문인지는 몰라도 껴묻거리로 묻혔다가 출토된 유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을 빈약한 편이다.

영원히 사는 곳, 무덤
백제 한성기에는 사람이 죽으면 움무덤.돌무지무덤.흙무지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에 묻었다. 움무덤은 가장 일반적인 무덤이며, 돌무지무덤은 한성기 초기에 상류층이 사용하였다. 흙무지무덤은 두 사람 이상을 묻는 다장묘이며, 돌덧널무덤은 지방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썼다. 돌방무덤은 가장 발달한 형태의 고대 무덤으로 주로 한성기 말기에 상류층에서 사용하였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무덤만들기
백제는 이른 시기부터 국제 교역 중심지로 그 문화가 개방적이며 무덤 또한 시기별, 지역별로 다양하다. 무덤의 축조재료에 따라 흙무덤과 돌무덤, 시신을 안치한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 매장방법으로는 구덩식(수혈시)과 굴식(횡혈식)으로 나뉜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움무덤, 구덩이를 만든 뒤 그 안에 시신을 아치하는 지하식 무덤으로 가장 일찍부터 널리 사용된 방식이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된다. 시신을 널에 넣어 움에 묻은 것을 널무덤, 널을 덧널 안에 넣고 움에 묻은 것을 덧널무덤이라 한다. 서울 인근과 한강 이남에서는 주위에 도랑을 두른 움무덤도 다수 확인되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흙무지무덤, 땅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묻는 지상식 무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시신을 추가로 묻어 봉분이 점점 커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하나의 봉분 안에 둘 이상의 시신을 묻은 무덤을 흔히 다장묘라고 한다. 가락동 1.2호분, 석촌동파괴분, 석촌동5호분, 김포 운양동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돌무지무덤, 땅 위에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묻는 지상식무덤이다. 돌무지무덤은 고조선시대부터 만들었으며, 고구려에서는 초기부터 오랫동안 왕릉으로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고구려의 무덤처럼 봉분 전체를 돌로만 쌓은 순수한 돌무지무덤(석촌동3호분)과 함께 봉분 안을 흙으로 채운 후 돌을 쌓은 돌무지무덤(석촌동2호분, 석촌동4호분)도 만들었다. 석촌동 3호분은 동서 길이 50.8m, 남북 길이 48.5m의 규모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돌무지무덤이며 한성백제 전성기의 왕릉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돌무지무덤 축조모습


서울 송파동 고분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평면은 기본적으로 네모모양이며, 축조방식에 따라 무기단식.기단식.계단식 등으로 나뉜다. 가장 완성된 형식의 돌무지무덤으로 꼽히는 중국 지안의 장군총은 계단식이며 한 변의 길이가 31m내외의 정사각형모양이다. 압록강 중.하류 일대에는 수천개의 돌무지무덤이 분포하여 고구려 지배층의 공동묘지이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잔돌을 깔고 덧널과 널을 설치한 뒤 돌을 쌓아 덮고 다시 흙으로 봉분을 만든 무덤이다. 독특한 축조방식으로 인해 무덤규모가 크고 도굴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조사 결과 금관.금귀걸이 등의 화려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신라의 대표적인 지배층 무덤으로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있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돌덧널무덤, 긴 네모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덧널시설을 만든 다음 나무널을 넣고 돌을 덮는 구덩식무덤이다. 청동기시대에 출현하였으며, 신라.가야지역에서 많이 만들었다. 백제에서는 대개 3세기 이후에 확인된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돌방무덤, 돌로 방을 만들고 한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출입시설인 널길을 만들어 추가장이 가능한 무덤이다. 부부를 비롯한 가족합장 무덤으로 유리해서 삼국시대 후기에 대표적인 무덤이 되었다. 백제의 돌방무덤은 고구려.신라와은 달리 산의 경사면에 땅을 깊이 파고 만들어서 봉분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한성기 돌방무덤은 평면이 네모모양으로 배가 부르게 완만한 곡선을 띠는 것과 직선을 띠는 것이 있으며 널길은 주로 우측에 있으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서울 방이동 고분군


송파,강동구 지역 고분 분포

무덤의 껴묻거리
한강유역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많은 유적들이 사라져 백제 국가형성단계의 무덤 양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1917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는 을총 67기, 갑총 23기만 실려 있으나, 2010년에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촌동.가락동.방이동 일대의 옛 고분 분포도에는 석촌동.가락동 고분군 280여 기 이상, 방이동고분군에 16기가 표시되어 있어 이 지역에 대규모 고분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무덤에서는 짧은 목 항아리.겹입술 항아리.두 귀 달린 항아리.굽다리 접시.완.잔 등의 여러가지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검은 간 토기는 한성백제기의 특징적인 유물로서 표면을 매끄럽게 문지른 토기인데, 우수한 광택과 세밀한 문양으로 보아 중앙에서 제작한 고급물품(위세품)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석촌동고분군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류가 확인되어 이른 시기부터 한강유역이 대외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독널_막음용, 독널_주옹, 서울 가락동2호분 출토 유물


굽다리접시(복제), 칠기(복제), 검은간토기(복제), 서울 가락동2호분 출토 유물


단지, 서울 가락동2호분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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