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지역박물관

양천 겸재정선기념관, 양천현의 옛모습과 정선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곳

younghwan 2014. 11. 3. 14:48
반응형


강서구와 양천구 지역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향교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지방행정 구역으로 양천현이 설치된 곳이다. 양천현 관아는 한강변 궁산 아래 위치하고 있었다.  궁산은 삼국시대 산성인 양천고성이 있었던 곳으로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이지, 한강을 건너는 공암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주변에는 한강 경치가 아름다운 옛 양천읍치의 주산이었던 궁산과 양천향교, 멀지 않은 곳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조선후기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조선시대 대표 천재화가인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그의 그림속에 옛 양천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강서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겸재정선기념관에는 실제 정선이 그린 그림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설명과 양천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도심 가까운 곳에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공간이다.

겸재 정선과 양천 현아 (陽川 縣衙)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 회화양식을 창안하여 우리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데 성공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65세 무렵 원숙한 경지에 올라 절정의 진경산수 작품들을 남겼다. 이때가 바로 정선이 향천현의 현령으로 근무하였던 때이다. 양천현은 오늘날의 강서구 일대로 겸재정선기념관이 위치해 있는 궁산 아래는 정선이 만5년 동안 근무하였던 양천현아가 있던 곳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완성된 곳, 강서구에서 옛 양천현아의 모습과 정선의 작품세계를 감상해 보자. <출처:겸재정선기념관>

 
옛 양천관아가 있었던 양천읍치 서쪽에 세워진 겸재정선기념관. 조선후기 천재화가 겸재정선의 생애와 옛 양천현 관아의 모습을 살펼볼 수 있는 기념관이다.


기념관 내부


정선이 현령으로 지냈던 옛 양천현 관아. 정선이 그린 '양천현아도'를 비롯하여 여러 그림에 표현된 모습을 바탕을 모형을 만들었다.

그림 속 양천현아
양천현아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정선이 현령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정신이 그린 <양천현아> 등의 그림을 통해서 그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양천현아는 동헌인 종해헌(宗海軒)을 중심으로 내아(內衙), 길청(吉廳), 향청(鄕廳), 사령청(使令廳), 장청(將廳), 읍창(邑倉) 등이 둘러져 있다. 현아의 입구인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서면 종해헌이 나타나고,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내아의 모습도 보인다. 현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천향교와 객사인 파릉관(巴陵館)이 위치해 있다. <출처:겸재정선기념관>



양천현아, 간송미술관 소장, 저녘무렵 관원들이 퇴청한 후의 적막한 양천현아의 전체 모습을 그렸다.


종해청조, 간송미술관 소장, 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그렸는데, 종해헌과 부속 관아의 모습이 보인다.


소악루, 개인소장, 궁산 동쪽 기슭에 있는 소악루를 그렸는데, 그 뒷편에 높이 솟은 양천현아의 홍살문과 객사가 보인다. 양천현아, 김희상,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조선후기 화원화가인 김희성이 그린 양천현아 그림으로 정선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정선의 <양천현아> 보다 좀 더 멀리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렸다.

정선이 본 강서의 아름다운 풍광
전선은 양천현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강서지역의 뛰어난 승경을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에 담았다. 강서 지역은 예로부터 한강을 배경으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일찍부터 사대부들 사이에 유람하거나 별서를 마련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중국에서 온 사신들에게도 양천은 승경지로 이름이 높아서 한번쯤 유람하며 풍류를 즐기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정선은 이런 양천의 모습을 여러 차례 그렸다. 그것은 양천이 에부터 뛰어난 승경으로 이름난 곳이라는 연유도 있지만, 양천의 수령으로 일하면서 가지게 된 특별한 관심때문일 것이다. <출처:겸재정선기념관>


소악루, 정선, <양천팔경> 중, 복제본, 한강 하루에서 거슬러 올라오면서 보이는 소악루 일대의 경치를 그린 것이다. 소악루는 현재 가양동 궁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으로, 전라도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그의 집 남쪽 기슭에 지은 것이다. 화면 우측 중경에 소나무 등에 둘러싸인 이유의 집과 기와집이 보이고, 그 너머 중앙에 소악루가 보인다.


개화사, 정선, <양천팔경첩> 중, 복제본, 개화사는 현재 강서구 방화동 개화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의 약사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행주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마주치는 호해 풍광을 조망할 수 있으며,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 북악산, 남산, 관악산과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한강 상류의 물길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개화사, 정선, <경교명승첩> 중, 복제본, 정선의 개화사 그림은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집>에 2점이 전해진다.


빙천부신, 간송미술관 소장, '얼음벼루에서 땔나무를 지다'라는 뜻으로, 눈 쌓인 강변에 땔나무를 지어 나르는 양천현의 백성들의 모습을 그렸다. '벼루'는 낭떠러지 아래가 강이나 바다인 위태로운 벼랑을 일컫는다. 종해청조, 간송미술관 소장, '종해헌에서 한강의 조수 소리를 듣는다'라는 뜻으로, 관아 뒷산인 궁산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종해헌 부근의 풍광을 그렸다. 한강이 흘러드는 서해는 조석간만의 차가 큰 지역으로, 난간에 기댄 채 누마루에 앉아 조수 밀리는 소리를 듣는 정선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출처:겸재정선기념관>


이수정, 양천에서 양화나루쪽으로 배를 타고 가면서 염창동 도당산 상봉에 있던 이수정을 바라보며 그렸다. 현재 이수정 자리는 한강을 따라 김포공항으로 통하는 올림픽대로가 지나가고, 그 맞은편으로는 염창동 아파트 및 주택가가 있다.  소악루, 궁산 동쪽 기슭에 있던 소악루와 그 주변 마을을 그렸다. 궁산 기슭에 소악루을 지었던 이유의 집과, 소악루 서편에 양천객사인 파릉관과 그 홍살문이 그려져 있다.

소악후월도, 고정환, 2008년, 모사복제,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는 뜻으로 궁산 중턱에 소나무와 잡목에 파묻힌 소악루를 그렸다.


설평기려도, 고정한, 2008년, 모사복제, '눈 덮힌 평야를 나귀타고 가다'라는 뜻으로, 눈이 내린 겨울날 새벽 매화를 찾아 떠난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고사를 떠올리며 눈덮힌 궁산 뒷편의 양천평야를 그렸다.


공암층탑도, 고정한, 2008, 모사복제, 구멍이 뚫린 바위란 뜻의 '공암'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산의 중턱에서 옛 석탑 하나가 감추어져 있어 '층탑'이라 하였다.


양천현아도, 고정한, 2008년, 모사목제, 저녁 무렵 관헌들이 퇴청한 후의 적막한 양천현아의 모습을 그렸다.


종해청조도, 고정한, 2008년, 모사복제, 양천현아의 동헌인 '종해헌에서 한강의 조수 소리를 듣는다'는 뜻으로, 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며 종해헌 부근의 풍광을 그렸다.


강서구의 문화유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