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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요새는 이스라엘 건국의 상징이자 로마시대 유대국가 멸망의 흔적입니다. 격렬한 저항을 통해 멸망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에 비해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후 이천년 가까이 유대민족은 나라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66년~73년 팔레스타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은 맹렬한 게릴라 전사들이었다. 그리고 시드니 토이의 말대로라면, 그들 요새 상당수는 '우리시대 초기의... 군사적 건축물 가운데 가장 휼륭한 작품'이었다. 그런 이유로 로마는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자원을 총 동원해야만 했다. 예루살렘은 3중 띠와 같은 성벽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다. 외벽하나가 두께 4.5미터, 높이 9미터 이상 되었으며, 곳곳에 잇달아 쌓아 올린 거대한 사각형 탑으로 강화되었고, 위에는 몸을 숨기고 활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의 포위공격 장비는 그에 걸맞을 만큼 대규모였다. 티투스는 400미터 거리에서 50키로그램의 돌을 쏘아 보낼 수 있는 강력한 투석기를 사용했다. 또 그는 18미터 높이의 포위공격 탑을 세 개 지어 겉에 철판을 씌웠다. 성벽은 차례로 잠식되었고,70년 8월 사원은 불탔으며.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대량 학살되었다. 그것은 유대민족과 그들 종교에 가해진 참혹한 재앙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란은 아직 괴멸되지 않았다. 최후의 게릴라들이 마사다 요세에서 73년까지 저항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 요새는 중세의 성과 현저하게 닮은 것이어서 장벽처럼 넓은 막벽 근처에 직사각형의 아성이 딸려 있었다. 로마군이 마사다로 진입했을 때, 그들은 모든 수비군과 그 가족들이 산채로 잡히느니 차라리 서로를 죽이고 자살한 것을 보게 되었다.
(출처, 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승영조 옮김)
아마도 이 마사다 요새가 오늘날의 유대민족과 유대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 될 것이다. 이후 고난의 세월을 거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마사다 요새 전경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사진출처:야후>
요새내에 있는 건물의 유적입니다. <사진출처: 야후>
마사다는 해발 400m의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주변의 사해(死海) 인근 지역이 바다표면보다 40m가 낮기 때문에 마사다의 실질적인 높이는 440m 가 되어 밑에서 쳐다보면 가파르기 그지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브라함, 그리스도, 마호메트로 집약되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의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수난과 고통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곳이라고 하는 이 자그마한 땅의 남쪽, 사해를 면한 언덕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문화속에 지워지지 않는 자유와 존엄의 상징인 '마사다(Masada)'요새가 있다. '산의 성'을 의미하는 '메쓰다'에서 그 어원이 유래한 마사다는 해발 40m의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주변의 사해(死海) 인근지역이 바다표면보다 400m가 낮은 연유로 마사다의 실질적인 높이는 440m가 되어 밑에서 쳐다보면 가파르기 그지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므로 마사다의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정상에 올라 보면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르고 황폐한 환경과 멀리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사해만이 시야에 들어와 철저한 군사요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마사다성 안에는 두 개의 궁전이 있는데 건축의 방법이 매우 다양하여 매우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유대의 건축왕으로 불리던 헤롯대왕이 여름별장으로 계획된 연유로 언덕의 꼭대기에는 테라스와 풀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온탕, 냉탕, 스팀시설까지 갖추어진 목욕탕이 있다. 이 목욕탕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욕탕과 동일한 형식으로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2천년전의 생활상을 아련하게 짐작시켜 준다. 또한 군사요새라는 기능에 걸맞게 입구를 찾기 어렵도록 만들어진 창고도 있는데 이 안에서는 포도주, 기름, 밀가루와 같은 식품을 저장하는 독특한 모양의 용기도 다수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관광문화원)
66년~73년 팔레스타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은 맹렬한 게릴라 전사들이었다. 그리고 시드니 토이의 말대로라면, 그들 요새 상당수는 '우리시대 초기의... 군사적 건축물 가운데 가장 휼륭한 작품'이었다. 그런 이유로 로마는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자원을 총 동원해야만 했다. 예루살렘은 3중 띠와 같은 성벽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다. 외벽하나가 두께 4.5미터, 높이 9미터 이상 되었으며, 곳곳에 잇달아 쌓아 올린 거대한 사각형 탑으로 강화되었고, 위에는 몸을 숨기고 활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의 포위공격 장비는 그에 걸맞을 만큼 대규모였다. 티투스는 400미터 거리에서 50키로그램의 돌을 쏘아 보낼 수 있는 강력한 투석기를 사용했다. 또 그는 18미터 높이의 포위공격 탑을 세 개 지어 겉에 철판을 씌웠다. 성벽은 차례로 잠식되었고,70년 8월 사원은 불탔으며.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대량 학살되었다. 그것은 유대민족과 그들 종교에 가해진 참혹한 재앙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란은 아직 괴멸되지 않았다. 최후의 게릴라들이 마사다 요세에서 73년까지 저항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 요새는 중세의 성과 현저하게 닮은 것이어서 장벽처럼 넓은 막벽 근처에 직사각형의 아성이 딸려 있었다. 로마군이 마사다로 진입했을 때, 그들은 모든 수비군과 그 가족들이 산채로 잡히느니 차라리 서로를 죽이고 자살한 것을 보게 되었다.
(출처, 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승영조 옮김)
아마도 이 마사다 요새가 오늘날의 유대민족과 유대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 될 것이다. 이후 고난의 세월을 거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마사다 요새 전경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사진출처:야후>
요새내에 있는 건물의 유적입니다. <사진출처: 야후>
마사다는 해발 400m의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주변의 사해(死海) 인근 지역이 바다표면보다 40m가 낮기 때문에 마사다의 실질적인 높이는 440m 가 되어 밑에서 쳐다보면 가파르기 그지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브라함, 그리스도, 마호메트로 집약되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의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수난과 고통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곳이라고 하는 이 자그마한 땅의 남쪽, 사해를 면한 언덕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문화속에 지워지지 않는 자유와 존엄의 상징인 '마사다(Masada)'요새가 있다. '산의 성'을 의미하는 '메쓰다'에서 그 어원이 유래한 마사다는 해발 40m의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주변의 사해(死海) 인근지역이 바다표면보다 400m가 낮은 연유로 마사다의 실질적인 높이는 440m가 되어 밑에서 쳐다보면 가파르기 그지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므로 마사다의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정상에 올라 보면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르고 황폐한 환경과 멀리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사해만이 시야에 들어와 철저한 군사요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마사다성 안에는 두 개의 궁전이 있는데 건축의 방법이 매우 다양하여 매우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유대의 건축왕으로 불리던 헤롯대왕이 여름별장으로 계획된 연유로 언덕의 꼭대기에는 테라스와 풀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온탕, 냉탕, 스팀시설까지 갖추어진 목욕탕이 있다. 이 목욕탕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욕탕과 동일한 형식으로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2천년전의 생활상을 아련하게 짐작시켜 준다. 또한 군사요새라는 기능에 걸맞게 입구를 찾기 어렵도록 만들어진 창고도 있는데 이 안에서는 포도주, 기름, 밀가루와 같은 식품을 저장하는 독특한 모양의 용기도 다수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관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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