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봉림산문(鳳林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원감대사 현욱(玄昱, 787~869)이 봉림산문을 처음 열었다. 현욱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13년간 머물면서 선법(禪法)을 배웠으며 837년 귀국하여 남원 실상사에 머물다 왕명에 따라 여주 고달사(高達寺)를 크게 중창하고 선법을 베풀었다. 현욱의 제자 진경대사 심희(審希, 855~923년는 김해지역 호족의 후원을 받아 창원에 봉림사를 창건하여 본격적으로 봉림산문을 형성하였다. 봉림사는 후삼국 전란 중에 지역 호족들이 몰락하며서 쇠퇴하여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며 여주 고달사는 고려초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하였다.
여주 고달사(高達寺)
여주 고달사는 창건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구산선문 봉림산파를 열였던 현욱이 왕명을 받고 머물면서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고려초 원종대사 찬유(璨幽, 869~958년)가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려초 광종 이후 고려왕실의 후훤을 받아 크게 번창하여 고려초 3대 사찰로 손꼽혔다. 고달사에는 석조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현 남아있는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승탑(국보4호), 원종대사탑(보물7호), 원종대사탑비(보물6호), 석불대좌(보물8호) 등이 절터에 남아 있으며, 쌍사자석등(보물282호)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고달사지 금당터에는 거대한 석조대좌(보물 8호)가 놓여 있다. 석조대좌는 높이 1.54 m의 상당히 큰 규모의 대좌로 사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가운데 받침돌에는 큰 안상을 새겼으며, 아래받침돌 아래쪽에도 각면에 4개씩 작은 안상을 새겼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을 올렸던 석조대좌 중에서 그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초 승려 원종대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으로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3단으로 만든 기단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높이 2.5 m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고려초를 대표하는 승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원종대사는(869~958년) 통일신라 경문왕때 태어나 고려광종 때까까지 활동했던 승려로 이름은 찬유(璨幽)이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출가하여 중국에서 공부하였으며, 이곳 고달사에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려 광종 때 고달사에서 입적했으며, 원종이라는 시호와 혜진이라는 탑이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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