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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 금관가야와 대가야, 가야연맹체를 주도했던 세력

younghwan 2012. 4. 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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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는 삼한시대 변한에 해당하는 낙동강 서쪽을 중심으로 군소 성읍국가들이 발전한 연맹체 형태였다. 주로 낙동강 하류의 금관가야, 가야산일대의 대가야, 남해안 일대의 소가야, 함안지역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국가들이 철을 기반으로 한.중.일 연안무역의 중심지로서 삼국시대에는 백제, 신라와 패권을 다투었다. 


 구지봉 전설과 김해김씨의 시조로 잘 알려진 수로왕이 서기 42년에 세운 금관가야는 가야, 남가야, 가락국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구야국에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남해안 연안무역로를 장악하여 해상활동과 낙동강을 통한 철의교역을 바타으로 전기 가야를 주도했다. 금관가야의 유적지로는 왕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김해 봉황대 유적과 통치자들의 무덤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신라와 영역 다툼을 벌이던 금관가야는 400년 무렵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고구려에게 패배한 이후 더 이상 가야의 중심 역할을 못하고 532년에 신라에 투항하였다.

 대가야(大伽倻)는 경상북도 고령지역에 있던 6가야중 하나로 520년간 존재하다고 한다. 금관가야가 고구려-신라연합군에게 공격을 받은 후 힘이 약해지자 가야연맹체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으며,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침입하기도 했다. 대가야는 철의 주산지였던 고령지역에서 철생산과 교역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며, 대가야의 주요 유적지로는 지배층의 무덤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합천 옥전동 고분군 등이 있다. 대가야 고분에서 고구려와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인 환도대도를 비롯하려, 판금갑옷, 말갖춤 등 다양한 철제 무기들이 출토되고 있다.


금관가야
<삼국유사>에 의하면 금관가야는 서기 42년 시조 수로왕에 의해 건국되었다. 금관가야는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며, 가야, 남가야, 가락국, 남가라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변한 12국 가운데 구야국에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풍부한 철생산력을 바탕으로 전기 가야연맹을 주도앴다. 왕궁은 현재 김해 봉황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며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금관가야의 왕묘로 추정된다. 금관가야는 532년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역사를 마감하였다. <출처:김해박물관>


고리모양청동기(Ring-shaped bronze implement), 뼈화살촉(Bone arrowheads), 김해 대성동


재갈(Bit), 쇠판(Iron plate), 쇠화살촉(Iron arrowheads), 김해 대성동


목걸이(Necklaces), 김해 대성동


목걸이(Necklaces), 김해 대성동


굽다리접시(mounted cup), 김해지역


화로모양토기(Brazier-shaped pottery), 김해 대성동, 김해 구지동


목항아리.그릇받침(Long-necked jar & pottery stand),원통모양그릇받침(Cylinder-shaped stand), 김해 대성동, 김해 부원동,


굽다리접시(Mounted cup with handle), 김해지역


단지.그릇받침(Wide mouth jar & pottery stand), 그릇받침(Pottery stand)


항아리(Mounted jar)

금관가야 신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의 가락국 건국신화가 실려 있다. 서기 42년 3월 계욕일 구지에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상한 소리만 들였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였으므로 너희들은 모름지기 이 산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 놓아라, 아니 내어 놓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어라" 구간들이 그 말에 따라 기뻐하며 춤을 추니 자줏빛 줄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지고... 줄 끝의 붉은 보자기에 싸여 있는 금합을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6개의 황금알이 있었다. 12시간이 지난 이튿날 아도간의 집 탑 위에 모셔둔 금합을 열자 알에서 나온 용모가 매우 뛰어난 6명의 아이가 있었다. <출처:김해박물관>


대가야
<삼국사기> 지리 고령군조에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대, 520년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가야는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반로국에서 발전하였다. 서기 400년 금관가야가 고구려에게 큰 타격을 입고 약화되자, 대가야는 그 자리를 대신하여 후기 가야세력을 주도하였다. 지금의 전북 지역과 섬진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지만, 562년 신라에게 멸망하였다. 대표적 유적으로는 고령 주산성과 그 아래의 왕궁터, 그리고 왕묘인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 <출처:김해박물관>


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Sword with round pommel), 합천 옥전
칼 손잡이 끝에 달린 둥근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신된 것으로 가야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곳에서 나온다.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여 장식대도라고도 한다.


금귀걸이(Gold earing), 목걸이(Neckleces), 고령 지산동


금동관(Gilt-bronze crown, 복제품), 고령 지산동. 고령 지산동 32호묘에서 출토된 것이다. 불상 광배모양의 솟은 장식 양쪽으로 작은 연봉오리모양의 장식이 하나씩 있다. 관테의 안쪽에 천이나 가죽을 덧대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쇠낫(Iron sickle), 낫모양철기(Sickles-shaped iron tool), 끌모양철기(Chisel-shaped iron implement),)고령 지산동
 

쇠도끼(Iron axe), 쇠투겁창(Iron spearhead), 고령 지산동


미늘쇠(Saw knife), 방울(Bell), 발걸이(Stirrup), 고령 지산동


고리자루칼(Sword with round pommel), 고령 지산동


말띠꾸미개(Horse strap decorations), 말띠드리개(Horse strap pendant), 화살통꾸미개(Arrow-quiver ornaments), 띠고리(Belt hook), 고령 지산동


원통모양그릇받침(Cylinder-shaped stand), 합천 반계제, 목항아리.그릇받침(Long-necked jar & pottery stand), 고령 지산동


굽다리접시(Mounted cup with cover), 합천 옥전, 굽다리접시(Mounted cup), 뚜껑접시(Flat cup), 고령 지산동


항아리(Shot necked jar), 목항아리.그릇받침(Long-necked jar & pottery stand), 손잡이잔(Mug), 항아리(Mounted jar with handle), 고령 지산동


여러잔토기(Bowl with flat cups), 고령 지산동. 쟁반같은 큰 그릇에 작은 토기들을 넣은 독특한 형태의 그릇이다.

대가야의 신화
대가야와 관련한 문헌기록으로는 <삼국유사> 5가야조에서 "대가야는 지금의 고령이다"의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고령군조에서는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시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세, 520년에 이르렀으나, (신라의) 진흥왕이 이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으로 하였으며, 경덕왕이 이를 개명하야 그대로 부른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대가야국의 건국은 서기 42년이고 그 시조는 이진아시왕이었다. <출처: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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