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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덕수궁] 대한문(大漢門)과 금천교, 덕수궁 들어가는 길

younghwan 2012. 3. 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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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궁궐 앞을 흐르는 작은 하천인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인 금천교이다. 덕수궁 대한문은 시청앞 광장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문으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저 곳에 덕수궁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지나가는 일상과 너무 가까운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은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과는 원래 왕족의 사저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궁궐로 개조했던 별궁으로 규모가 작은편이다. 실제로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에 이곳에 거처하면서 궁궐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대부분읜 건물들은 구한말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지은 건축물이다.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정전인 중화전 정면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1904년 화재로 중화전 등을 재건할 때 환구단을 중심으로 현 시청광장 주변이 도심의 중심지로 바뀌면서 동쪽편에 있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쳐서 정문으로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문 또한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고 서울의 중심 도로인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여러차례 이전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궁궐로 들어가는 돌다리인 금천교가 대한문 바로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덕수궁이 원래 별궁이었던 까닭에 대한문은 경희궁과 함께 단층으로 된 건축물이다. 지금은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하루에 세번씩 수문장 교대식을 하면서 옛 궁궐의 모습을 재현해 주고 있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면 3칸, 옆면 2칸의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성문의 문루같은 인상을 주지 않고 있다. 원래는 동문에 해당되는 대안문이었으나,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편에 도심이 형성되면서 1904년 중건시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덕수궁의 정문이 되었다고 한다.


덕수궁 현판과 화려한 단청의 다포계 공포


덕수궁 정문에 세워진 한쌍의 석수. 원래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계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땅에 묻혔고, 소맷돌만 노출되어 있다.


매일 3번씩 치러진다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덕수궁 대한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궁궐과 바깥세상을 분리한다는 의미를 갖는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인 금천교가 나타난다. 구한말에 지어진 돌다리로 그 폭이 상당히 넓어 보인다.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정비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 중화문 앞에 이르는 길이 궁궐의 중심 행차로였다.


금천교 입구의 하마비


덕수궁 금천교는 인공으로 연못형태로 만들어진 금천을 거너는 다리로 2개의 아치형 홍예로 이루어진 홍예돌다리이다. 다른 궁궐 다리와는 달리 홍예사이에 도꺠삐 문양이 없다.


금천교 난간석. 난간석 끝에는 조각상 대신 봉우리 모양이 올려져 있다.


난간석 기둥 장식


금천교 상판은 마차 2대 이상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넓은 편이며, 가운데를 돌출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모든 궁에는 바깥 세상과 궁궐안을 구분한다는 의미로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御溝)가 있고, 거기에는 석교가 설치되어 있다. 덕수궁에는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는 명당수와 금천교를 만들었는데 현재는 어구가 연못처럼 되어 있다.


덕수궁 내부에서 본 대한문.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만들지는 않고 있으며, 실용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금천교를 지나 덕수궁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길(2010년 여름).


중화문 근처에서 본 대한문


2010년 여름 덕수궁 대한문


2012년 봄날 저녁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대한문 일원
대한문(大漢門)의 본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190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원래 궁궐의 정문은 남족의 인화문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중심이 되자 동문이었던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무러앉게 되었다.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정비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 중화문 앞에 이르는 길이 궁궐의 중심행차로였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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