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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86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2호), 유리벽에 갇힌 탑골공원 석탑

서울의 중심으로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이래 오랜 기간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던 탑골공원이 원래는 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경천사지석탑과 더불어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도교사상이 들어가 있는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나라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또다른 북방민족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이다. 이 곳에 원각사라는 절을 세운 사람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무력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살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피를 많이 본 민족인 토번족인 티벳인,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라마교를 많이 숭상하고 이런류의 조각상을 많이..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보물 520호)

보물 520호로 지정된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이름으로 봐서는 술정리동삼층석탑과 한쌍의 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동삼층석탑과는 같은 술정리 내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석탑의 제작수법이 동삼층석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탑 제작기술이 많이 쇠퇴한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린 술정리서삼층석탑. 기단과 탑신의 몸돌.머리돌의 비율에서 술정리동삼층석탑보다는 많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술정리 서삼층석탑 기단부. 한쪽면에 문짝을 새겨놓고 있는데 후대에 새긴 것이라 한다. 탑신은 동삼층석탑에 비해 날렵함이 없어 보이고, 탑의 상륜부에 장식이 남아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술정리서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국보 34호),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

창녕 술정리는 창녕읍에서 가장 중심인 재래시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비화가야가 있었던 시기부터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생각된다. 국보 34호로 지정된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아마도 현재의 위치에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처럼 도심지에 있었던 사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이 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양식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이런 형태의 석탑이 보편화되던 시기, 석탑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예술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아서 국보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녕읍 중심부 술정리에 위치한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이층의 기단부 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어놓고 있는 있는데 그 비율이나..

창녕 퇴천삼층석탑, 통일신라 석탑

창녕읍 만옥정공원에 있는 퇴천삼층석탑이다. 원래 민가에 무녀져 있던 것을 해체,보수하여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창녕의 술정리석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석탑으로 기단부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없어져서 보물급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만든 수법이나 형태로 봐서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석탑이다.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것으로 당대의 다른 석탑과 마찬가지로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퇴천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부는 낮게, 상단부는 높게 만들어져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는 듯하면 한쪽면은 없어져 새로운 돌로 수리해 놓고 있다. 3층으로 된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들의 비율이 잘 배치되어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

강진 무위사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무위사 삼층석탑은 경내 서쪽편에 선각대사편광탑비 아래에 위치한 고려초기 석탑이다. 석탑의 전성기였던 통일신라시대를 지나서 만들어진 석탑이라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이 없는 평범한 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돌이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져서 지금은 잘 인식하기 힘들지만, 형식에 맞추어서 여러 장식을 새겨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 또한 극락전 앞에 2개가 있는데 다른 절의 당간지주에 비해 크기도 작고, 조각등 장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위사 삼층석탑은 석탑이 대중화되던 시기인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술적 가치는 많이 높지 않지만 원형은 잘 보존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은 낮고, ..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백제 석탑 양식이 남아 있는 석탑

전남 남해안 부근의 명산인 월출산 자락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월남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이다. 월남사는 무위사 동쪽 수km 지점에 있으며, 절터 뒷쪽편에 월출산 봉우리가 보인다. 원래는 이 절에은 두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절터에 우뚝 선 석탑과 월남사를 창건한 사람으로 알려진 진각국사 탑비만 남아 있다. 보눌 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모전석탑의 외형을 하고 있으며, 돌을 쌓은 것처럼 보여서 모전석탑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석탑으로 명칭이 정정되었다. 이 삼층석탑은 단층의 기단만 있는데 그 모양새로 보아서는 하층의 기단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한다. 월출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월남사지삼층석탑. 단층의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는데,..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1433호)과 석조

월출산 도갑사 경내를 들어서면 정면에 웅장한 대웅전 건물을 볼 수 있다. 도갑사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크기가 큰 건물로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보물 143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최근까지 탑신만 남아 있다가 하층기단부가 새롭게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도갑사 오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균형미, 조형미 등이 약간을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다. 도갑사 오층석탑. 2층기단부 위에 5층의 탑신이 얹혀 있다. 도갑사오층석탑의 기단부. 상층기단는 높고, 하층 기단은 낮게 만들어졌는데, 그 비례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화려하다거, 웅장하다는 느낌은 많지 않고 평범한 고려시대 석..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112호), 한국 석탑을 대표하는 두개의 탑

우리나라 석탑을 대표하는 국보 112호로 지정된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다. '두개의 탑'이란 의미가 저절로 다가오는 웅장한 규모의 석탑으로 후대 석탑의 전형을 제공하는 탑으로 정림사지 석탑과 함께 보통 생각했던 일반적인 석탑에 비해 상당히 크고 당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은 규모의 석탑니다.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신라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국사에서 토함산 고개를 넘어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가다가 동해와 만나기 직전 북쪽편에 우뚝 서 있는 두개의 탑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책으로만 보아왔던 웅장한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직접 눈으로 보는 첫번째 장면입니다. 감은사지는 통일신라 가람배치의 특징인 1금당, 쌍탑형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개의 탑'이란 느낌이 저절로 ..

경주 분황사석탑 (국보 30호),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전 석탑

경주 황룡사와 더불어 신라시대 경주 시가지에 존재했던 사찰인 분황사에 있는 국보 30호로 지정된 분황사 석탑이다. 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과 대조를 이루는 석탑입니다. 이 분황사석탑은 모양은 구운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전탑처럼 보이지만 돌을 깎아서 벽돌처럼 만들어 쌓아 올린 아주 특이한 석탑으로 전탑을 모방했다고해서 모전석탑이라고 불린다. 사방의 입구에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기단의 4곳 모서리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탑을 흉내냈었으면서도 아주 독창적인 느낌을 주는 석탑이다.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분황사 모전석탑입니다. 생긴 모양새는 전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작을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서 전탑처럼 세운 모전석탑입니다. 현재 보이는 분황사석..

영양 산해리 모전오층석탑 (국보 187호), 반변천가에 홀로 서 있는 아름다운 석탑

국보 187호로 지정된 봉감모전오층석탑으로 불리웠던 산해리 모전오층석탑은 영양에서 안동으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강변에 홀로 서 있는 석탑이다.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이 석탑은 외형상으로는 전탑처럼 보이지만 작을돌을 벽돌처럼 쌓아올린 분황사 석탑과 같은 종류인 모전석탑이다. 이 봉감모전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는 상당히 화려한 석탑이다. 이 석탑으로 규모로 볼때 이 곳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는 도로에서 많이 떨어진 강가에 자리잡고 있지만, 옛날의 기준으로 보면 안동에서 강을 따라 올라오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대한 평지사찰이었던 것 같다. 봉감모전오층석탑은 자연석을 벽돌처럼 깍아서 쌓았기때문에 전탑처럼 보인다. 분황사모전석탑과..

충주 탑평리칠층석탑 (국보 6호), 한반도 중심이라 중앙탑으로 불리는 석탑

충주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중앙탑으로 정식 명칭은 중원탑평리칠층석탑이고 국보 6호로 지정된 중요한 문화재이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중앙탑이라고 많이 불린다. 중부지역에서는 거의 유일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석가탑처럼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장식은 별로 없지만 웅장함이 돋보이는 석탑이다. 이 지역은 고구려 전성기때 신라와 고구려간의 분쟁이 치열했던 곳으로 이 곳에서 수킬로미터 이내에 중원고구려비와 고구려 산성인 장미산성이 있다.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불리는 충주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입니다. 충주 남한강변에 조성된 공원 중앙에 탑평리칠층석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위는 약간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든탑으로 석가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9호), 백제 석탑의 전형

백제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보 9호로 지정된 정림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이후 대부분의 석탑이 이 형태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탑에 낙서를 하는 바람에 소정방이 세운 석탑이라는 오해를 갖고 있었던 석탑으로 그 제작연대가 석탑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편이고, 탑의 크기와 웅장한 자태, 균형미 등이 뛰어난 석탑이다. 감은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당나라 소정방이 세겨 놓았다는 글씨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측면쪽에서 본 정림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정림사지 본당 건물쪽에서 본 오층석탑입니다. ☞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국보 86호),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중국풍의 석탑

새로이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인 국보 86호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중국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불교 석탑이지만 석탑을 구성하는 요소와 세부 조각들은 도교에 나오는 신선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 석탑은 고려 충목왕때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런 석탑의 형태가 만주족, 몽고족을 포함해서 북방 민족들이 선호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도 북경을 가서 보면 상당수 문화재들이 이 경천사지 십층석탑에 표현된 내용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은 새로이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서 박물관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석탑은 3층의 기단과 10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289호), 백제계 석탑 양식 흔적 남은 고려전기 석탑

익산 왕궁리는 마한시대 도읍지로 알려져 있으며, 백제 무왕이 왕궁을 조성했던 장소에 있는 오층석탑이다. 왕궁리는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궁궐로 조성했으나, 의자왕대에 이르러 사찰로 변모했다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존속했다고 한다. 이 왕궁리 오층석탑은 궁궐이 사찰로 변한 후에도 존재않지 않았으며, 지금 석탑이 있는 자리는 원래는 목탑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국보 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오층석탑은 고려전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밝혀졌으며, 1단의 기단과 5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석탑 기단부가 낮아서 약간 균형미가 떨어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백제계 사찰에 많은 여러가지 면에서 백제 석탑의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 이 왕궁리 석탑 주변에는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백제시..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보물 114호),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석탑

안동 구도심 주택가 한 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보물 114호로 지정된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이다. 바로 옆에 점집이 있어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 석탑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주위 골목길들은 온통 '탑길'로 이름 붙혀져 있다. 통일신라 중기 이후 석탑이 보편화된 시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이며, 그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석탑의 규모는 초기 석탑인 감은사지 석탑 등에 비해서 상당히 작아졌지만 균형미, 조형미는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석탑이다. 안동 옥동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의 형태를 보이며, 크기는 작아졌지만 조형미는 상당한 수준이다. 안동 옥동 삼층석탑은 주택가 한 가운데 있고 마치 개인주택 마당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보물 609호), 조각상이 화려한 통일신라 후기 석탑

경북 영양에서 경북지역 동해안에서 가장 부유하고 넓은 평야가 있는 영해지역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변 영양 화천리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보물 609호로 지정된 화천리 삼층석탑이다. 이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단과 탑신에 다양한 부조 조각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어 약간 초라해 보이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원래는 상당히 화려했던 석탑이었던 것 같다. 영양 화천동삼층석탑은 영양에서 동해안 영해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주위가 잔듸밭이지만, 원래는 밭 한가운데 있었던 석탑이었던 것 같다. 영양 화천동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졌는데 기단석과 탑신에 화려한 조각상이 새겨져..

구례 화엄사 서오층 석탑 (보물 133호)

화엄사 경내에 서 있는 두개의 탑 중 화려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보물 133호로 지정된 서오층석탑이다. 크기는 않지만 화엄사 경내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화엄사 경내에는 두 개의 탑이 안정적으로 경내에 위치하고 있고 정면으로 대웅전, 서쪽으로 각황전이 있는데, 화엄사 가람배치 자체가 서쪽을 중시하는 것 같다. 화엄사 각황전 정면에 서오층 석탑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와 석등이 어울려 하나의 개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서쪽을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서 내려다 본 서오층석탑. 많은 부조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서오층석탑 안내 표지판입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 앞에 있는 꽃무늬가 있는 돌입니다. 용도는 ? 화엄사 경내에 조화를 이룬 두개의 탑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구례 화엄사 동오층 석탑 (보물 132호)

화엄사 경내에는 통일 신라시대의 전형적이 형태인 두개의 탑이 경내에 서 있다. 크기나 규모는 경주 불국사나 감은사지에 비해서 훨씬 작습니다. 하지만 화엄사 경내 마당 크기에 어울리는 규모로 만들어 졌다. 화엄사 서탑에서 바라본 화엄사 동오층석탑 화엄사대웅전과 함께한 동오층석탑 화엄사 동오층석탑 표지판 각황전 앞에서 바라본 동오층석탑 화엄사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두개의 탑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서 있다. 그 중에 동쪽에 서 있는 것이 이 탑으로 크기는 서로 비슷하지만 서탑이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정하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서탑의 기단이 2단인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104호), 백제 흔적 남아 있는 고려전기 석탑

서산의 유명한 사찰인 개심사가 자리잡고 있는 상왕산 동쪽편 보원마을에 있는 절터인 보원사지에 우뚝 서 있는 보물 104호로 지정된 보원사지 오층석탑이다. 가까이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더불어 이 지역에 백제 불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석탑이다. 이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고려전기에 세워졌다고 하며, 이층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쌓고 있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백제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석탑을 중심으로 보원사지 절터가 있는데 지금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이층으로 기단석을 쌓고, 그 위에 오층탑신을 쌓았다.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전기 석탑 중에서 걸작이라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 249호),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진 석탑

보물 249호로 지정된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 동쪽편 언덕, 조사당을 올라가는 숲속길 입구에 세워져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시기인 통일신라 문무왕때 세워진 석탑이다. 당시에 경주에 세워진 감은사지 석탑을 비롯한 여러 삼층석탑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당시에는 보통 사찰 경내에 동.서 2개의 탑을 세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부석사 삼층석탑은 언덕에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세워진 석탑이라 그런지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고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석탑이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주 불전인 무량수전이 있는 경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사당을 올라가는 언덕길에 위치하고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석탑기술의 화려하게 꽃피우던 통일신라 전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크지는 않지만 전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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