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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갑사, 계룡산에 자리잡은 화엄십찰

younghwan 2010. 9. 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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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는 충남을 대표하는 명산인 공주의 계룡산 북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사찰이다. 갑사의 연원은 많은 설이 있지만 백제때 세워진 사찰로 보이며, 실제로 갑사가 그 존재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은 신라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절의 크게 짓고, 그 이름을 갑사로 바꿈으로서 그 실제적인 내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해인사, 화엄사, 부석사, 범어사 등과 함께 화엄십찰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갑사는 화엄사, 해인사, 부석사 등에 비해서 그 규모가 크지 않고, 오래된 전각도 많지 않은 편이다.
 
 갑사철당간, 갑사부도, 갑사동종, 월인석보판본 등 전각이외에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의 갑사는 옛날 위치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갑사가 다시 중흥하게 된 것은 이 곳에서 출가한 영규대사가 의병장 조헌과 함께 큰 공을 세우고 전사했던 까닭에 국가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아서 오늘날의 갑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갑사는 계룡산 골짜기의 아름다운 계곡물과 숲속길 등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사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1. 갑사 들어가는 길


계룡산 갑사는 계곡에 위치한 고찰로 오래전부터 대형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금도 사찰규모가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 내력이 오래된 사찰이라서 들어가는 길은 오래된 고목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산책하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 곳 출입문인 일주문과 천왕문은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실제 이 곳의 오랜 내력을 보여주는 모습은 갑사 입구가 아닌 대적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철당간과 당간지주에서 그 내력을 느낄 수 있다.


갑사 일주문 거리.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갑사 들어가는 길

2. 갑사 강당


계룡산 갑사의 실제 출입문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강당이다. 이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장식을 크게 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형태로 봐서는 원래 강당 아래에 출입문이 있는 누각의 형태로 보이는며, 이런 형태가 일반적인 사찰 강당의 형태인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통로가 강당 우측편 계단을 사용하고 있다.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조선후기 건축물이다.


실제로 갑사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


갑사 출입문 앞 마당의 풍경

3. 갑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계룡산 갑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앞면 5칸의 규모가 있는 건물로 맞배지붕에 공포는 다포계를 하고 있는 건물로 화려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형태이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일반적으로 많이 있는 석탑을 두고 있지 않으며, 중심불전인 대웅전과 경내에 삼성각외 다른 불전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뒷편에 팔상전과 원래 갑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에 대적전을 두고 있다.

4. 화엄십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적전과 삼성각


계룡사 갑사에는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보조 불전의 성격을 갖는 명부전이나, 나한전 등을 두지 않고 있으며, 원래 사찰의 중심불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적전을 두고 있다.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지만 이 곳 갑사의 대적전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화엄십찰의 하나인 관계로 아직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전을 두고 있지만 후대에 와서 그 의미가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뒷편에는 칠성.산신.독성을 모신 삼성각을 두고 있다.


대적전 옆에 있는 요사채


대웅전 뒷편에 있는 삼성각.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서 건물이 크고 오래된 편이다.

5. 갑사의 요사채들


갑사 경내 오른쪽에 위치한 적묵당. 'ㄴ'자형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종무소와 갑사를 방문하는 손님이 묵는 곳으로 보인다.


갑사 경내 왼쪽편에 위치한 진해당. 내부에는 약사불을 모신 불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며, 뒷쪽으로 여러동의 요사채와 팔상전 등이 있다.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대웅전 뒷편 언덕에 위치한 대적선원.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보인다.

6. 갑사 동종 (보물)


갑사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동종이다. 조선시대 중기 선조때 만들어진 동종으로 전체적으로는 크지는 않지만 용뉴, 유두, 당자를 비롯하여 종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이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종꼭대기에는 음통이 없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동종에 많이 있는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상이 있다.


갑사 동종 용뉴의 용모양 고리.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잘 만들어졌다.

7. 갑사 부도 (보물)


원래 갑사가 있었던 자리로 보이는 갑사 서쪽편 대적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 보통 부도탑은 사찰에 큰 업적을 남긴 고승의 사리를 모신탑으로 일반적인 경우 누구의 사리탑인지 잘 알려져 있으나, 이 곳 갑사 부도는 그 내력이 알려지지 않은 듯 설명이 별도로 없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힘이 넘치는 편이나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맞지 않고 있다. 이 부도탑은 갑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사찰 뒷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화엄십찰의 하나인 계룡산 갑사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사찰이지만, 중간에 사찰의 역사가 끊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이 부도탑을 비롯하여 전각의 배치, 남아 있는 문화재 등에서 느낄 수 있다.

8. 갑사 철당간과 당간지주 (보물)


갑사동종과 함께 계룡산 갑사를 대표하는 유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철당간과 당간지주이다. 원래 갑사 중심불전이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원래 사찰의 위치를 말해주는 유물이다. 청주 도심부에 위치한 철당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당간이다. 계룡산 갑사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으로 계룡산 숲속에 우뚝 솟아 사찰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9. 갑사 계곡


계곡을 내려보고 있는 작은 건물. 갑사 사찰용 건물은 아니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지만, 건물 전체를 두르고 있는 유리창문이 일본식 건물을 연상시킨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박찬호 선수와 강호동이 얼음을 깨고 냉수마찰을 하던 그 장소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갑사 중창에 큰 공이 있는 소를 기리는 작은 탑이 있다.


갑사 계곡을 따라서 옛날 갑사로 들어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산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계룡갑사(鷄龍甲寺)·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설, 556년(백제 위덕왕 3) 혜명대사(惠明大師)가 창건했다는 설,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혜명대사가 중창했다는 설이 있다. 679년(문무왕 19)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건물 1,000여 칸을 더 짓고 절 이름을 계룡갑사에서 갑사로 바꾸어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다. 1579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1654년(효종 5) 사정(思淨)·신휘(愼徽) 등이 관청의 도움을 받아 중수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강당·대적전·천불전·응향각·진해당·적묵당·팔상전·표충원·삼성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갑사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 갑사부도(보물 제257호), 갑사동종(보물 제478호), 월인석보판본(보물 제582호) 등이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화엄10찰
최치원이 찬술한 〈법장화상전 法藏和尙傳〉을 보면, 중악(中岳) 공산(公山)의 미리사(美理寺), 남악(南岳) 지리산(智異山)의 화엄사(華嚴寺), 북악(北岳) 태백산의 부석사(浮石寺), 강주(康州) 가야산(伽耶山)의 해인사(海印寺)와 보광사(普光寺), 웅주(熊州) 가야협(迦耶峽)의 보원사(普願寺), 계룡산(鷄龍山)의 갑사(岬寺), 양주(良州) 금정산(金鼎山)의 범어사(梵魚寺), 비슬산의 옥천사(玉泉寺), 전주(全州) 모악산(母岳山)의 국신사(國神寺), 한주(漢州) 부아산(負兒山)의 청담사(淸潭寺)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 〈삼국유사〉 의상전교조(義湘傳敎條)에도 화엄십찰 중 6개 사찰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중 5개 사찰은 〈법장화상전〉에 나온 사찰(부석사·해인사·옥천사·범어사·화엄사)이고, 나머지 1개 사찰은 원주의 비마라사(毗摩羅寺)이다. 여기서 화엄십찰의 10이라는 숫자는 반드시 10개 사찰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10을 만수(滿數)로 생각하여 화엄십찰이라 한 듯하다. <출처:브리태니커>

영규(靈圭, ? ~ 1592년)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 호는 기허, 속성은 박으로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서산대사의 고제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으로 무예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500명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 전투에서 청주성을 탈환했다. 그리고 다시 제2차 금산 전투를 벌였고 격전 끝에 싸우다 전사하였다. 금산의 칠백의총에 묻히고 종용사에 제향되었으며 법도, 대인에 의해 진락산에 영각이 세워졌으며 의선이란 편액이 하사되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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