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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영주 소수서원, 고려 유학자 안향을 모신 최초의 서원

younghwan 2011. 7. 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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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은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에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선 중종때인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안향 선생을 모시는 백운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명종때인 1550년 퇴계 이황의 건의로 임금이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적은 현판을 내리는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최초의 서원인 소수 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세운 서원이지만,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는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상액서원답게 건물의 칸수도 많고 큰 규모의 서원으로 이 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다른 서원에 비해서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소수서원의 건물배치는 경사진 언덕에 계단식으로 강학공간과 배향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일반적인 서원의 건물배치가 아니라 죽계천변에 평평한 공간에 여러 건물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있다. 서원의 중심에는 '백운동서운'이라는 현판이 걸린 강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직방재와 일신재, 학구재, 지락재와 서고, 전사청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강당 뒷편에 안성선생을 모신 문성공묘가 배치되어 있다.

1.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


소수서원 매표소에서 서원입구까지는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덮여 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이 곳이 절터임을 알려주는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퇴계 이황 선생이 즐겼다는 죽계천의 작은 정자인 취한대가 보인다.


소수서원을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


숙수사지 당간지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이 곳이 원래는 사찰터였음을 알려주는 문화재로 숙수사는 통일신라 전기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소수서원 정문.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임에도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 출입문으로 사용하는 삼문의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도산서원에서도 볼 수 있다.


서원 입구에 있는 시생대. 제사를 지낼 제물을 잡는 공간이다.

2. 강학공간의 중심인 강학당


소수서원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강학당은 성균관 명륜당과 같은 기능을 하는 강학공간의 중심공간이며 앞면 4칸, 옆면 3칸의 규모가 큰 건물이다. 건물에는 백운동서원이라는 현판에 걸려 있고, 내부에는 중종이 내린 소수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3면이 개방된 넓은 대청마루와 작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면에 '백운동'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퇴계 이황의 건의로 중종이 내린 '소수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을 비롯하여 많은 글들이 강당 내부에 걸려 있다.

3. 유생들이 기숙사


강학당 옆쪽으로는 경북북부 지역 한옥 사랑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일신재와 직방재이다.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 형태로 공부하는 유생들의 학문 수준에 따라서 일신재와 직방재로 나누고 있다. 소수서원은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에서 동.서재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의 기숙사 건물을 두고 있다. 각 건물에는 별도의 대청마루를 두고 있어서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락재와 학구재는 1,2번째로 단계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작은 건물로 별도의 작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그 중 지락재는 앞면 3칸의 작은 건물로 1칸의 방과 2칸의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2단계 유생들이 공부하던 학구재이다. 앞면 3칸의 작은 건물로 가운데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서원에서 소장한 책을 보관하던 장서각.



서원에 불을 밝히던 정료대와 손을 씻는 대야를 올리는 관세대


해시계를 올려 놓던 일영대

4. 배향공간인 문성공묘,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사당

 


소수서원은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안죽, 안보, 주세붕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와는 달리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분을 모시는 서원의 역할을 제시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안향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은 원래 없던 건물로 큰 특색이 없는 건물로 1975년에 영정을 모시기 위해 별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문성공묘에 제사를 모시기 위한 제기 등을 보관하는 건물인 전사청


 

서원 뒷편에는 충효교육관과 사료관이 있다.


고려 충숙왕 때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죽계별곡'의 무대인 죽계천이다. 죽계천의 풍경이 아름다워 옛날에는 큰 사찰인 숙수사가 있었고, 이런 연유로해서 이곳에 백운동 서원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죽계천 옆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취한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산기운과 죽계천의 맑은 물에 취해서 시를 짓고 즐기라는 뜻에서 취한대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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