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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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 20

서울 효창공원(사적330호), 백범 김구선생과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도심공원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이후 귀국하면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이곳에 마련하고, 이후 임정요인 중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역도 조성되었다. 이후 백범 김구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곳에 그의 묘역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 이후 독립운동가의 묘역은 더 이상 조성되지 않았고, 현재는 안중근 의사를 위한 가묘가 삼의사 묘역에 마련되어 있다. 효창공원은 도심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찾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묘역의 격이 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과 가까운..

한국의 풍경 2014.04.28

광주 개원사, 남한산성 승병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

남한산성 남장대가 있는 능선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인 개원사이다. 지금 볼 수 있는 개원사는 규모가 크지 않고 문화재도 거의 없어 전통이 없어 보이는 사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 승군들의 본영으로 전국의 사찰들을 규찰하는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던 사찰이다. 병자호란에 대비하여 조정에서는 전국에서 승려들을 동원하여 남한산성 축성 임무를 맏겼다. 이때 승려들의 숙소와 수행을 의한 공간으로 10개의 사찰을 신축하였는데, 개원사는 산성내 승군들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이었다. 개원사는 병자호란때 창건된 이래로 남한산성 방어와 유지보수에 승려들이 큰 역할을 했던 까닭에 개원사는 구한말 갑오경장으로 승병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을사늑약과 군대해산 때 일제가 사찰에서 보관하던 무기를 수..

전국 사찰 2014.04.24

[맛집] 서울 장충동 족발거리 (뚱뚱이할머니집)

족발은 전국적으로 주요 시장에는 유명한 식당과 골목이 많은 음식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장충동 족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에도 시장마다 족발을 파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장충동 족발이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여러 매체이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60~70년대 전국적으로 선풍을 끌었던 프로복싱과 레슬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장충동 식당에서 술안주로 족발을 먹기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족발이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장충동에는 원조를 표방하는 족발집이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맛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족발은 지금은 많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푸짐하고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이다. 족발은 돼지발에 털을 제거한 다음 천천히 ..

맛집 2014.04.22

서울 홍난파가옥, 서울성곽 언덕에 남아 있는 근대 서양식 주택

홍난파가옥은 을 작곡한 홍난파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6년간 살았던 집이다. 원래는 1930년 독일인 선교사가 지은 주택이라고 한다. 서울성곽 바깥쪽 언덕에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지하1층, 지상1층의 단독주택으로 외관상 2층주택처럼 보인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마당도 비교적 좁지만 언덕에 위치하고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홍난파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여러 작품들을 작곡했다고 한다. 서울 교남동 골목길로 알려진 경희동 서쪽편 인왕산 자락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산이 가깝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독일영사관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독일인 거주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교남동 일대가 재개발로 주택들이 대부분 허물어지고 언덕에 홍난파 가옥을 비롯하여 일부만 남아..

서울 양천고성지(사적 372), 삼국시대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던 산성

양천고성지(사적 372호)는 조선시대 양천현 관아가 있던 강서구 가양동에 궁산(해발 74m) 정상에 남아 있넌 산성터이다.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은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요새였다. 성은 궁산 정상에 길이 200m 정도의 성벽을 쌓은 테뫼식산산성으로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양천고성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 성에 머물렀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궁산이 있는 양천현은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정선은 궁산에 올라 한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여러 작품을 남..

서울 용마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아차산 일대에 쌓은 보루

아차산보루군은 삼국시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5~6세기에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몽촌토성 지역을 압박하기 위해 고구려군이 쌓았던 소규모 군사요새로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 보루 등 17여개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10여개가 고구려군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용마산보루는 아차선 능선 북쪽의 4보루 북쪽 능선에서 시작하여 용마산 일대 능선에 쌓은 보루를 말하며 용마산 정상을 비롯하여 7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보루는 주로 중랑천 일대 넓은 평야지대를 감시.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이며 정상부 부근 능선에 3곳, 평지와 가까운 낮은 곳에 4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용마산보루에서는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연..

서울 아차산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쌓은 보루를 복원한 아차산4보루

한성백제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북쪽 아차산 능선을 따라서 고구려군이 세웠던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4보루이다. 등산로를 따라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다른 보루와는 달리 4보루는 시범적으로 고구려군이 쌓았던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고 있다. 아차산4보루는 둘레 249m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은 방어시설이다. 조선후기 강화도 일대에 쌓은 돈대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여장이나 총구 등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 안쪽 건물터에는 온돌, 배수로, 저수조 등이 있었으며, 투구.창.도끼같은 무기와 낫.쇠스랑같은 농기도, 말갖춤이 발굴되었다. 아마도 군사들이 주변에 둔전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보루(사적455호)는 삼국시대 고구..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가 한성백제를 장악하기 위해 쌓은 요새 (1,3,5보루)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는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가 되는 아차산 일대에 있는 17여개의 보루를 말하며, 그중 일부를 제외하고은 고구려가 쌓았다고 한다. 아차산 보루군은 5세가 한강유역을 진출한 고구려가 한성백제의 왕성 위례성을 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아차산과 용마산, 수락산 능선을 중심을 중랑천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보루(堡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군사들이 주둔할 수 있도록 쌓은 요새로 조선후기에 강화도 일대와 남한산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돈대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보루를 쌓은 지점은 홍련봉이나 구의동 보루처럼 평지와 가까운 낮은 언덕에 쌓은 것도 있으며, 아차산이나 용마산 보루처럼 능선에 쌓은 것도 있다. 대부분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위례성을 ..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구한말 조선왕실의 지원으로 설립된 여성교육기관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이다. 이화여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대학으로 이화여대가 외국선교사가 설립한 반면, 숙명여대는 조선왕실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었다. 캠퍼스는 1934년 설립당시부터 있었던 제1캠퍼스, 1980년대에 준공된 이과대학캠퍼스, 2000년대에 준공된 제2창학캠퍼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9개의 단과대학, 3개 독립학부, 일반대학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학생인 1만65명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의 부지는 넓지 않은편이며, 캠퍼스 건물 또한 대부분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는 유서깊은 건물은 없다. 숙명여대는 1905년 고종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왕귀비의 지원으로 설립된 민족여성교육기관이었던 명신여학..

한국의 풍경 2014.04.11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와 임정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묘역

일제가 도심공원으로 조성한 효창공원에는 해방 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해방되던 시기에 돌아가신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묘역을 마련하면서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백범 자신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묻혔다. 이곳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의 능역인 효창원이었던 것으로 구한말까지 상거래이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은 능역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효창공원을 들어서면 정면에 이곳에 처음 묘역을 조성한 삼의사 묘역이 있고, 동쪽편 언덕에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서쪽편 언덕에는 마지막으로 조성한 백범 묘역과 백범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범 묘역 아..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선생 묘역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다. 김구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원이 되었던 효창공원에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본인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진 후 삼의사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이런 연유로 효창공원은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효창경기장이 들어서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 묻히지 못하게 됨으로써 도심공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약간 아쉬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립현충원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공원에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백범 선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02년에 백범 김구선생의 생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백범기념관이 묘역부근에 세워졌다. 효창공원..

서울 효창운동장, 60년대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지어졌던 아마추어 축구의 요람

효창운동장은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던 효창공원에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세워진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인 1956년 독립운동가 묘역이었던 이곳에 운동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여론의 반대로 실천되지 못하다가 1959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축구경기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로 지어진 일반경기장과는 달리 언덕을 깎아서 경기장을 조성했다. 원래는 천연잔듸구장이었으나, 관리비용문제 등으로 지금은 인조잔듸가 깔려 있다. 최초의 축구전용경기장이지만 지금은 낙후된 경기시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곳으로 학생들을 비롯하여 아마추어 축구경기가 주로 열리는 곳이다. 효창공원은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도 도심 가까운 곳에 넓은 능역을 확..

한국의 풍경 2014.04.08

[고궁박물관특별전] 헝가리 왕실의 보물, 합스부르크왕가와 헝가리 귀족 사회

2013년 겨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헝가리국립박물관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는 1000년부터 시작된 헝가리 역사를 상징하는 '신성한 왕관'을 중심으로 오스만투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지만, 외세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통해 오늘날까지 정체성을 유지해온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는 우랄산맥 근처에서 거주하던 유목민이 도나우강 유역의 중부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유럽의 방패 역할을 하면서 그 세력을 유지했으나, 16세기 근동지방의 강자로 등장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공격해왔던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세력이 약화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기 시..

지역박물관 2014.04.08

서울 와룡묘, 남산 아래 자리잡은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

남산공원 북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와룡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선조대에 와룡묘를 짓게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남산 와룡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와룡묘는 구한말 고종의 후궁으로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설립하는 등 큰 엄귀비가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사당은 192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3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묘가 중국 전통 사당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와룡묘에는 단군사당, 삼성각 등 민속신앙 요소가 강한 사당들을 같이 모시고 있어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한국적인 사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와룡당이라 부르는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와 비슷한 성격을..

[맛집] 부산 부평시장 수제어묵

부산 부평시장은 1910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공설시장으로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부산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거래하던 재래시장들은 최근 다양한 먹거리로 일반시민이나 관광객들의 관심을 새롭게 끌고 있는데 부산 부평시장은 그 중 대표적인 시장일 것이다. 먹거리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족발을 비롯하여, 부산을 대표하는 오뎅, 팥죽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오뎅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로 어묵을 무 등과 함께 국물에 삶아낸 요리를 말하지만 한국에서 보통 어묵을 오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어묵은 생선을 녹말 등과 넣아 반죽하여 튀긴 것으로 부산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져 대표적인 간식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만들어 튀기는 수제어묵이 인기를 끌고 ..

맛집 2014.04.06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신라

삼국시대 한강유역은 475년 고구려가 백제 수도 한성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가 76년간 장악하였다. 이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해 한강유역을 되찾기는 했으나 553년부터는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래 통일신라가 멸망하기까지 약 350년간 신라의 주요 거점으로 존재했었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로 중국과의 뱃길을 확보하고 지방조직인 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산성을 쌓았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라 유적지로는 하남 위례성 동남쪽 남한산성 자라게 쌓은 이성산성을 들 수 있다. 이성산서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1.6km의 산성이다. 이곳에서는 신라가 쌓은 산성 석축을 비롯하여 자.방망이.톱 등 다양한 생활유물도 출토되었다. 신라, 마침내 한강으로 삼국 가운데 국가체제 정비가 가장 늦었던 신라는 5세기 이..

지역박물관 2014.04.05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와 남산 드라마센터

서울 남산1호터널 입구 주변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드라마센터, 교통방송, 적십자사 등의 공공기관과 학교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구한말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통감부를 세웠던 장소로 경복궁으로 이전하기까지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곳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서울 도심 명동과 충무로가 가까운 이 지역에 주거지가 들어서지 않고 많은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드라마센터는 60년대 미국의 지원으로 연기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공연장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방송국 부속시설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이며, 연기자들 양성하기 위한 연극아카데미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KBS가 여의도로 이전한 70년대 이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대학은 안산으로 이전하고 공..

한국의 풍경 2014.04.03

[한성백제박물관] 한성기 이후 백제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강한 압박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한성을 버리고 남하하게 된다. 새로운 도읍지로 금강을 방패삼아 공산성이 있는 웅진으로 왕성을 옮기게 된다.이후 538년 지형적으로 좁은 웅진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배후에 두고 있는 사비성으로 옮겨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존속하게 된다. 백제가 수도를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 자리를 잡았던 시기는 약 200여년의 백제 역사에서 27% 정도의 기간이지만 오늘날 남아 있으면서 잘 알려진 백제유적과 유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강유역에 물러난 이후 백제는 주변국과의 동맹에 크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국 남조,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일본에..

지역박물관 2014.04.02

[맛집] 부산 돼지국밥, 지역을 대표하는 장터 음식 (신창국밥)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인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은 돼비뼈를 고아서 육수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넣어서 국밥을 만든 것으로 실제로는 순대국밥과 거의 비슷한 음식이다. 부산을 비롯하여 창원, 밀양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인데 실제로 유명한 돼지국밥집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며, 체인으로 운영하는 음식점도 거의 없다. 경남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기때문에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맛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부산을 여행하면서 부산 구도심을 대표하는 옛 경남도청이었던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신창국밥'이라는 돼지국밥 전문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부평시장 뒷편 보수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식당은 이곳이 본점이고 다른 곳에 분점도 있다고 한다. 국밥은 순대국밥과 거의 비슷한 편으로..

맛집 2014.04.02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고구려

고구려는 삼국시대를 주도했던 국가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동시대를 이끌었던 주도세력이었지만,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오늘날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다만 한성백제기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 주둔했던 고구려 군대가 쌓았던 산성이나 보루, 요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유물은 경주를 비롯하여 남부지역에서도 일부 출토되기는 하지만, 많은 유물들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쌓았던 아차산 일대 보루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들 보루에 주둔했던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군인들이었으며, 둔전의 형태로 농사를 짓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되는 유물들은 철제무기, 말갖춤, 각종 농..

지역박물관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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