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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여행] 품페이, 빵을 팔던 베이커리(Bakery)와 상점이 즐비한 상가골목과 저택(House of Leone)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어느날 갑자기 역사속으로 사라진 폼페이는 인구 2~5만 규모로 베수비오 화산 주변의 넓은 농토와 주요 교통로, 항구가 있었던 로마시대 지방도시 중에서는 상업도시로 꽤 번창했던 도시이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 그대로 화산재에 파묻혔 있었던 폼페이 유적지에는 당시 생활상을 모여주는 많은 주택들과 생활 도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대 도시의 기준으로도 도로망, 수도, 공공건물들이 잘 배치되어 있는 도시로 로마시대 번창했던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폼페이의 중심인 포럼광장 뒷편으로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여러개의 주도로가 있고, 폼페이 시민들이 살았던 주택가들을 연결해 주는 크고 작은 도로들이 바둑판처럼 잘 짜여 있다. 도시의 중심인 포럼광장 뒷편으로는 휴양...

이탈리아(Italy) 2011.12.27

[중앙박물관 특별전]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사행과 화가들

조선시대 중국과의 무역과 인적교류는 명나라의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지한 해금정책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절차로 사신들이 상호 방문하는 조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조공은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에 사신단이 상호 방문하는 공식적인 절차였으며 사신행렬에 상인들이 참여하여 많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과의 조공관계는 양국간에 상하관계를 의미한다고 하여 폄하가 되는 경향이 있으나,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관례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 총 500여회에 걸쳐 중국에 사신단을 파견하였으며, 조선에서 그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북경을 방문하는 사신단에 참여함으로서 새로운 세상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신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를..

중앙박물관 2011.12.26

남한산성 사당과 비석군, 현절사와 청량당

병자호란은 인조 14년(1636) 겨울에 청나라와 조선간에 2번째로 벌어진 47일간의 전쟁이다. 당시 청나라는 만주족.몽골족.한인으로 이루어진 1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임경업 장군이 지키던 의주의 백마산성을 우회하여 13일만에 서울을 공략했다. 인조는 원래 강화로 피난하기로 했으나 청군에 의해 길이 막혀 불가피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남한산성가 천혜의 요새라서 큰 전투가 없었지만 전쟁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혹한과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강화가 함락되고 주위 정세가 불리함에 따라 부득이 하게 삼전도에서 청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여러 사당들이 있는데 그 중 병자호란 47일간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현절사와 청량당이 있다.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끝까지 반대했던..

남한산성,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연무관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방어상 취약했던 부분을 보강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산성 방어시설을 보완하는 것과 함께 행정적으로도 산성내 행궁을 설치하면서 광주목 관아도 산성내로 옮겨지면서 행정중심 도시로서의 기능도 함께 했다. 광주목사는 원래 외관직 정3품의 상당히 높은 관직이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목이 광주부로 승격되고 고을 수령도 오늘날 장.차관급에 해당되는 광주유수로 승격되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별도의 군사조직인 수어청이 정조대에 남한산성으로 옮겨지면서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남한산성내 동쪽편에 위치한 행궁은 광주부 수장으로서 행정의 중심지였다면 산성내 중앙도로 북쪽편에 위치한 연무관과 주위 건물들은 군사조..

남한산성, 지수당과 비상시 대비 물을 저장했던 연못

남한산성은 한강 남쪽에 위치한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동쪽은 높고 경사진 지형이며, 동쪽은 완만하게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지형적인 장점을 갖고 있는 곳으로 주위의 산으로 둘러싸여 산성내 물은 풍부한 편이었다. 산성내에는 비상시에 대비하여 3개의 큰 연못이 파고 물을 저장해 두고 있다. 원래의 연못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매몰되거나 훼손되어 현재는 2의 연못이 남아 있다. 연못에는 1672년에 부윤 이세화가 세운 정자인 지수당이 복원되어 있으며 1804년 유수 김재찬이 지은 관어정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남한산성 내에는 조선시대 차관급에 해당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사를 겸했..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산성도시를 세우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남쪽 성벽 부근을 비롯하여 방어상 취약했던 지점에 옹성을 쌓는 등 많은 보완이 있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한강 동남쪽 지역을 관장하던 광주목 관아를 옮기고 행궁을 건설하는 등 행정적으로도 보완이 있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갖춘 유일한 행궁으로 비상시 국왕이 거처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였다. 남한산성을 관장하던 광주목사는 원래부터 정3품의 높은 관직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부로 승격하여 종2품의 부윤 또는 정2품의 유수가 수장으로 있었으며,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청 수장인 수어사도 겸하게 되었다. 평사시 남한산성에는 약 천명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주민은 4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산성을 축..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左翼門)

남한산성은 한강 유역이 내려다 보이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주변 산능선을 따라서 석축을 쌓은 둘레 8km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을 두고 있으며 좌익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동문은 광주지역과 연결되는 성문으로 한반도 중부내륙지방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동문은 산성내 행궁을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어서 좌익문이라고 부른다. 동문은 남문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가장 통행이 많았던 성문으로 광주에서 계곡을 따라 평탄한 길이 나 있기때문에 아마도 산성내 필요한 물자는 동문을 통해서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동문은 지형적인 이유로 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성문을 축조했기때문에 실제 우마차나 사람들의 통해은 남쪽편에 있는 제11암문을 이용했을 것..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포럼광장 뒷편 상가지역과 대저택(House of Pansa)

폼페이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함께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도시이다. 이 도시는 인구 2~5만 규모의 항구가 있는 상업도시이자 수도 로마의 휴양지 역할을 했던 도시이다. 현재 남아 있는 폼페이 시가지 유적들은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매우 가치가 높고 소중한 유적지이다. 이 곳에 남아 있던 모자이크 벽화, 조각상 등 아주 중요한 유물들은 주로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소장.전시하고 있고, 현재 유적지는 당시 도시의 모습과 구성, 주택 들을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남아 있다. 폼페이 도시의 중심지인 포럼광장 북쪽 쥬피터신전을 지나서 대로를 따라서 걸어가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주택들과 상가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폼페이 유적지를 걸어가다 보면 로마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

이탈리아(Italy) 2011.12.19

남한산성, 제3남옹성에서 동문(좌익문)까지

남한산성은 한강 유역이 내려다 보이는 서장대가 있는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작은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서쪽으로는 서울 송파나루를 비롯하여 성남을 거쳐 서울로 연결되고 있으며, 남쪽은 검단산, 동쪽으로는 경기도 광주를 거쳐 이천, 여주, 진천 등 한반도 중부내륙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성곽은 병자호란 당시 드러난 방어상 취약지점인 남쪽편 성벽 앞으로 설치된 3개의 옹성을 지나면 동문인 좌익문까지는 약간 경사진 지형을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다. 남장대 부근의 평탄한 지형이 끝나는 지점에 설치된 방어시설인 치(雉)를 지나면 특별한 방어시설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지형에 따라서 성벽과 여장만 설..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병자호란 47일간 기록

남한산성은 수도를 방어하고 한강이남 주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천혜의 요새이지만, 병자호란 47일간 항전의 현장이자 치욕의 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626년 청나라는 백마산성을 비롯하여 주요 공격로에 배치된 산성을 이용하고자 했던 조선의 방어전략을 무력화시키면서 이를 우회하여 무려 10여일만에 수도인 한양을 직접 공략하였다. 워낙 청나라의 전략과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였던 까닭에 원래 강화도로 피신할 계획이었던 인조는 불가피하게 남한산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식량의 부족과 청나라의 효과적인 공략으로 47일만에 항복하게 되었다. 병자호란은 1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크게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전쟁기간은 47일에 불과하기때문에 이 전쟁에서 개별 사건이나 인물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고, 당시 ..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포럼광장, 도시의 중심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 남동쪽에 있었던 로마시대의 항구도시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했던 도시이다. 남부 이탈리아에 위치하고 있어 나폴리와 함께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로 제정로마 초기에 크게 번성했던 도시이다. 기존 상업도시에 수도인 로마와 가까워서 휴양도시로서 역할을 겸했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도시 중에서는 그 규모가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 시기에 도시가 형성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도시의 모습은 대부분 제정로마시대에 정형화된 로마의 도시로 정비되었다. 인구 2~5만 규모의 큰 도시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항구가 있는 서쪽편에 도시의 주요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북쪽과 동쪽편에 주택가들이, 남쪽편에 극장과 원형경기장 등 위락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포럼(Forum)은..

이탈리아(Italy) 2011.12.16

남한산성, 남장대에서 제3 남옹성까지

한강 이남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작은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한강과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북쪽과 동쪽은 경사가 심한편으로 적이 공격하기가 쉽지 않고, 동쪽은 경사가 원만한 편이지만,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서 쉽게 공략하기는 힘든 지형을 하고 있다. 반면에 남쪽은 약간 떨어진 곳에 검단산이 있고, 두 지역을 연결하는 능선에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검단산에서는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검단산까지 성곽으로 연결하게 되면 방어해야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 단점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남쪽 검단산 지역에을 점거하여 강력한 화포로 남쪽편 성벽을 공략하여 남한산성에서 농성하..

[이탈리아여행] 폼페이(Pompeii), 포럼광장에 전시된 유물들

폼페이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갑자기 사라진 도시로 이 곳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은 당시 로마사람들이 살았던 거리와 건물,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당시의 생활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유적지이다. 현재 폼페이 유적지에서는 주로 당시의 건물들을 위주로 복원하여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폼페이에서는 건축물 외에도 조각상, 모자이크 벽화, 회화 등 다양한 미술품 들도 출토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나폴리의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폼페이 유적지의 입구이자 중심에 해당되는 포럼광장 한쪽편에서는 이 곳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Cast라고 하는 화산폭발 당시에 갑자기 묻혔던 사람이나 동물들의 형체가 전시되어 있다. 앉..

이탈리아(Italy) 2011.12.14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남한산성의 축성과 무기류

남한산성은 광주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한성백제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을 쌓은 주장성에서 오늘날과 같은 산성의 모습으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전기에도 효과적으로 몽고군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다.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등장한 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조 2년부터 4년에 걸쳐 주변 지형에 따라 오늘날의 형태와 비슷하게 축조되었으며, 행궁과 관아시설, 4개의 대문과 장대 등을 갖추어 유사시를 대비하고 했다. 행궁은 서쪽의 청량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향으로 건축되었고, 중요 관청의 위치와 방향 및 도로 역시 행궁의 방향을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산성안에는 산성을 축조할 때 동원된 승려들..

남한산성, 제1남옹성에서 남장대까지

남한산성은 한강 남쪽에 위치한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한성백제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후기 인조대에 청나라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쌓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장대.돈대.암문 등 다양한 방어시설과 행궁 등 관아 건물들을 두고 있다. 남한산성은 전체적으로는 높고 경사진 지형에 석축을 쌓았기때문에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 이래로 성이 함락된 적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남한산성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남쪽편 검단산 정상과 연결되는 능선지역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검단산과 약간 떨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산성을 쌓아서 방어하기에는 그 범위가 넓어지는 약점..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통일신라시대 주장성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소재한 경기도박물관에는 2011년 가을에 '남한산성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소재한 남한산성은 한강 이남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로 삼국시대 백제때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이 실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삼국통일 이후 문무왕대에 당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주장성으로 둘레 8km 정도의 산성으로 현재 남한산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과 남한산성 행궁지에서 출토된 대형기와, 성벽에서 발견된 옛 성곽 유구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남한산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천혜의 요새로 나라를 지키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도와 국가의 ..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포럼광장 남쪽에 자리한 원로원 청사(Municipal Office)

폼페이 성문인 Porta Marina를 지나서 잘 포장된 대로를 따라서 조금 걸어가면 이 도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포럼광장이 나타난다. 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유럽과 중동의 오래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구조로 신앙의 중심이 되는 건물(오늘날의 성당 또는 모스크)인 쥬피터신전, 아폴론 신전이 배치되어 있고, 집회장소(의회)라 할 수 있는 바실리카, 행정기관인 시청사, 상업거래의 중심인 시장이 포럼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폼페이에는 행정집행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사 건물인 Municipal Office가 포럼광장 남쪽편에 재판정이자 집회장소인 바실리카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폼페이 시청사라고 할 수 있는 Municipal Office는 AD62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시 세워..

이탈리아(Italy) 2011.12.12

남한산성, 남문(지화문)에서 제1남옹성까지

남한산성은 경기도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산성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하여 항전을 하다가 청에 항복한 치욕적인 역사를 갖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에는 문루.장대.돈대.암문.우물.보 등의 방어시설과 행궁을 비롯한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을 두고 있었다. 현재의 남한산성은 주로 인조대에 쌓은 것을 숙종대에 크게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산성은 북쪽과 서쪽편으로는 경사가 심한편이고, 동쪽편으로 계곡을 이루고 있어 광주를 비롯한 경기도 남동부 내륙지역과 연결되고 있다. 반면에 산성 남쪽편으로는 검단산과 이어져서 약간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는 남한산성에서도 방어에 제일 취약한 지점으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집중적으로 공략한 지점이라고 한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포럼광장 들어가는 포장도로와 비너스신전 (Temple of Venus)

폼페이 정문인 Porta Marina를 들어서면 도로 남쪽편에 첫번째로 보이는 건축물이 비너스(아프로디테)여신을 모시는 비너스신전(Temple of Venus)이 있고, 북쪽편으로는 포럼광장 입구의 아폴론 신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축물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대로쪽으로는 상가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안쪽으로는 중정 마당이나 홀로 사용된 아트리움이 있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로마의 도시들은 좁은 영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현대적인 도시와 비슷하게 도시내에 신전을 비롯한 공공건물들이 모여있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살았던 주택들과 별도로 분리하지는 않고 있다. 비너스 신전은 폼페이 도시의 중심인 바실리카와 붙어 있으며, 바실리카와 함께 도시의 서남쪽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중요한 신전으로 여겨진다. ..

이탈리아(Italy) 2011.12.09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는 통일신라가 이 곳에 주창성을 쌓고 한강유역을 지키는 중요 산성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도 남한산성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성곽으로서 그 역할이 크게 중요시 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했던 성으로 45일간 이곳에서 항전하였다. 지금에 와서 볼 수 있는 견고한 석축과 방어시설이 완비된 산성으로의 모습은 상당부분 숙종때 쌓은 것이며, 정조대에 크게 개축하였다고 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성남에서 올라오는 출입문인 남문에 제일 큰 규모로 실제 남한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송파나루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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