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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여행] 폼페이, 성문 바깥의 화려한 빌라 (Villa of the Mysteries)

전성기 폼페이는 인구 2~5만 정도가 거주했던 큰 도시로 교역항이었던 항구가 있고, 주변에는 비옥한 농토가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았던 도시였다. 폼페이는 물자가 거래되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로마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휴양도시로 인기가 있었기때문에 많은 인구가 모여들고, 도시는 성벽 바깥으로 확장되었다.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주택과 상가, 공공시설이 밀집한 도심 바깥으로 많은 주거지들이 형성되었는데, 주로 폼페이의 8개 출입문과 연결된 도로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남아 있는 유적지로는 Maria Gate 주변과 Herculaneum Gate 바깥쪽에 당시 거주지인 큰 빌라들이 일부 남아 있다. 이 빌라들은 대체로 도심에 위치한 빌라에 비해서 넓은 마당을 두고 있는 큰 저택의 형태..

이탈리아(Italy) 2012.01.09

[경기도박물관] 고려시대 도자기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고분에 껴묻거리를 묻는 문화가 없어지면서 대체로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유물이 그리 많지 않은편이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진왜란 이후 많은 문서들이 전행기때문에 유물들이 풍부한 편이지만 고려시대는 유형적인 유물로는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 여러 사찰들에 남아 있는 불상이나 불화, 승탑 등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유물이 전해오지는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대체로 고려시대 유물로는 각 박물관에서는 고려자기를 주로 전시하고 있는 형편으로 당시 역사나 생활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인류의 도자 문화는 신석기 시대 곡물의 저장과 조리용으로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

지역박물관 2012.01.08

오대산 월정사,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상원사와 함께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곳을 다녀가고, 오대산 사고를 설치하는 등 왕실과 관련된 원찰의 기능을 갖고 있는 사찰이다. 월정사의 오랜 역사에 비해서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버렸기때문에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중수되어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면 고풍스러운 멋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중수되기 시작한 월정사에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부처를 모신 불전을 여럿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전보다는 승려가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요사채들을 많이 두고 있다. 이는 월정사가 위치한 장소가 민가가 있는 마을과 거리가 떨어..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성문 바깥 도로에 세워진 로마시대 무덤들(Necropleis)

폼페이 무덤들은 주로 폼페이에 있던 8개의 출입문 중 Nola Gate, Herculaneum Gate, Vesuvius Gate 바깥쪽 도로에 세워져 있다. 로마시대 무덤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방이 있는 chamber tomb, 직육면체형태의 cube tomb, 제단 형식의 altar-shaped tomb, 작은 건물 형태의 aedicule tomb 등이 있으며, 초기 공화정 시대부터 연대기식으로 무덤양식의 변화된 형태를 보여주듯이 도로변에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들 무덤들은 대체로 폼페이 귀족층의 무덤들로 보이며 오늘날 국립묘지와 같은 성격을 갖는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시대 무덤들은 주로 도시 외곽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인들은 ..

이탈리아(Italy) 2012.01.08

[경기도박물관] 고구려, 신라.통일신라시대 경기도 지역 유물

경기도는 한성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래로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성백제를 공격하고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등 그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했고, 장수왕이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된다.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은 주로 한강과 임진강을 중심으로 주요 교통로에 구축한 주요 군사시설들로 서울의 아차산성, 연천 임진강변의 호로고루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한강유역에서 고구려 유물들이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여러곳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실제 유물들은 발굴을 주관한 서울대박물관이나 한국 박물관을 대표하는 중앙박물관에 대부분 전시되어 있고 경기도 박물관에는 일부만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는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한 이래로 통일신라시대까지 이 지..

지역박물관 2012.01.07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Herculaneum Gate와 Villa of Diomedes

폼페이는 약 3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7개의 출입문과 방어상 취약한 남쪽과 동쪽에 망루를 두고 있다. 원래 로마시대에는 이탈리아 반도내에서는 외부의 침입에 대한 우려가 없었기때문에 당시 도시들은 실제로 성벽을 쌓고 방어시설을 두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폼페이는 원래 그리스가 이 곳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쌓은 것이 계속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폼페이는 원래 지중해에 접한 항만 도시로 정문격에 해당하는 포럼광장 서쪽편 출입문인 Porta Marina는 항구와 연결되는 출입문이었고, 북서쪽에 위치한 Herculaneum Gate는 포럼광장에서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시 서북방향 도로인 Via Consolare를 통해 폼페이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베수비오 화산폭발시 사라진 Hercula..

이탈리아(Italy) 2012.01.07

[경기도박물관]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

경기도 지역은 한강, 임진강을 비롯하고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이 발달해 있고 넓은 농토와 서해안 갯벌 등 자연적 조건이 사람이 거주하기에 양호하여 구석기시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해 왔으며,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정착농경생할에 따라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삼한 중 마한 54개국이 자리잡았으며, 고구려에서 남하한 한성백제가 이 지역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경기도에는 많은 한성백제기의 유적들이 남아 있으며 주로 한성백제의 수도 위례성, 파주와 연천의 임진강 유역, 중국.일본과 무역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고양 멱절산과 화성 당황성 부근에 한성백제의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경기도 박물관에서는 한성백제 유물로 육계토성이 있었던 파주 주월..

지역박물관 2012.01.06

[이탈리아여행] 폼페이 Via Conslare(북서쪽 대로) 주변의 저택과 상가들

폼페니는 인구 2~5만 규모의 도시로 로마시대에 상업도시이자 휴양도시로 번창했던 도시로 원래 그리스가 식민지로 건설했던 도시였기때문에 로마도시 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성문들을 두고 있다. 또한 폼페이에 동.서, 남.북으로 많은 대로를 두고 있으며, 대로를 중심으로 상업지구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폼페이 포럼광장에서 서쪽 성벽과 나란히 북쪽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Via Conslare라고 부르며, 폼페이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Herculaneum과 연결되어 있다. 폼페이 서쪽 출입문이자 정문격인 Porta Marina는 실제로 육로와 연결되지 않고 항구와 연결되는 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Herculaneum과는 이 대로를 통해서 인원과 물자가 이동하였기때문에 다른 대로에 비해서 Via..

이탈리아(Italy) 2012.01.06

[경기도박물관] 청동기시대 유물, 연천 삼거리유적 출토

경기도는 한강과 임진강, 서해안 갯벌을 중심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경기도의 선사유적지로는 연천 전곡리, 파주 장산리, 용인 평창리, 파주 주월리, 연천 삼거리 등 많은 유적지들이 발굴되고 있다. 청동기시대는 간석기와 민무늬토기 등을 사용한 시기로 본격적으로 정착농경이 시작되고 인구가 늘어나며 크고 작은 마을들이 생겨난 시기이다. 주거 유적과 함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는 이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을 들 수 있으며, 경기도내에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석묘를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한반도를 대표하는 청동기시대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고인돌 외에도 경기도에는 연천 삼거리, 여주 흔암리, 안성 마정리, 평택 소사동 등에서..

지역박물관 2012.01.05

군포 산본동 고분군, 경기도박물관에 이전 복원된 통일신라고분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일대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고분들 중 일부를 경기도박물관 마당에 옮겨 놓은 것이다. 아마도 산본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발굴조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9기의 고분이 발굴조사되었는데 그 중 1,2,3호분만 이전 복원되어 있다. 봉분의 크기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귀족의 무덤에 비해서 그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일반적인 무덤에 비해서는 큰 편이다. 고분내 발굴된 유물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고 경기도박물관 내에 전시된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중요한 유물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산본은 고대 이래로 한반도 연안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부도 안쪽의 안산과 가까운 곳으로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통일신라의 지방 귀족층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경기도박물관 야외에 이전되어 있는..

오대산 월정사, 수광전을 비롯한 불전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월정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팔각구층석탑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세조를 비롯한 왕실의 비호를 받고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원찰의 성격을 갖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월정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비중이 큰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어 건축물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이나 요사채건물은 없고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되어 불전이나 요사채에서 오래된 사찰로서의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뒷편으로는 4동 불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안쪽에 있는 것이 이름난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많이 ..

[경기도박물관] 구석기, 신석기시대 유물

경기도는 한강과 임진강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와 서해안 갯벌이 있어 인류가 거주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지석묘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구석기 연구에 획기전인 발견이 되었던 연천 전곡리 유적지, 암사동 선사유적지 등 많은 선사시대 유적지가 남아 있다. 경기도 일대의 선사유적지들 중 구석기 유적지로는 연천 전곡리, 파주 가월리, 연천 강내리, 용인 평창리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유물로는 구석기시대 연구에 획기적인 발견이 되었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비롯한 주먹도끼, 자리개, 몸돌, 찍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집터에서 발견되고 있다. 토기를 제작하고 농경생활이 시작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유적는 큰강인 한강유역의 암사동과 여주 흔암리, 임진강 유역의 파주 주월리와 연천 삼거리, 경기 남부 지역..

지역박물관 2012.01.03

파주 다율리고인돌, 안산 선부동고인돌

경기도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파주 다율리 고인돌과 안산 선부동고인돌이다. 2기의 고인돌은 경기도 지역 택지개발 과정에서 이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지석묘라고도 불리는 고인돌은 한반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양식으로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중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다율리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로 덥개돌과 받침돌이 온전히 남아 있다. 파주 다율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라 조선시대에는 교하현이 있었던 지역으로 청동기인들이 살기에 적합한 넓은 농토와 강이 있는 지역이다. 선부동고인돌은 현재는 받침돌이 없이 덮개돌만 남아 있는데 원래부터 바둑판식 고인돌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안산 선부동은 현 안산시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한반도 서해안 ..

[중앙박물관 특별전]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강세황과 1784년 사행

강세황(1712~1791)은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당시 한국 화단에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으며, 서양화법을 수용하는데도 기여한 인물이다. 재능이 뛰어나 시문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당대의 화가인 김홍도가 그의 제자라고 한다. 벼슬에 뜻이 없어 주로 작품활동에만 전념하였으며 60대에 과거에 합격하였다고 한다. 72세에 북경사행, 76세에 금강산 유람을 떠날 정도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진취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라 할 수 있다. 강세황은 72세인 1784년에 늙은 몸을 이끌고 먼 북경 사행길을 떠났다. 젊어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작품활동에 전념했던 강세황이 60대에 관직에 들어가 그가 꿈꾸었던 중국을 70대에..

중앙박물관 2012.01.01

하얀 눈으로 덮힌 월정사 전나무숲길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오대천 옆 숲길을 따라 이어진 전나무숲길을 들 수 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소나무숲길이 있는 우리나라의 다른 숲길과는 달리 전나무가 심어져 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약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1km에 이르는 숲길을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말 나옹선사가 월정사에서 공양을 드리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져 공양을 망쳐서 산신령이 소나무대신 전나무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면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 개울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전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는 느낌을 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숲길 중 하나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국 사찰 2011.12.31

[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태평성시도에 본 당시 중국의 도시생할

조선후기 중국 사행을 떠났던 화가들이 그렸던 당시 중국 도시의 풍경이다. 8폭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실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기보다는 중국 당시 보고 들었던 도시의 모습을 한 곳에 모아서 묘사하괴. 화면은 가내구역, 자연환경과 유흥구역, 군사훈련 구역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도시의 상업활동에 비중을 두고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태평성시도, 조선후기 성(城)으로 경계 지워진 도시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의 활발한 모습이 그려 있으며 제3폭 어깨에 '太, 平 문자'가 써 있다.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로에는 수레와 인파가 가득하고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이 등장한다. 화면의 구성은 상업구역, 가정 내의 생활과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가내구역, 자연환경과 유흥의 ..

중앙박물관 2011.12.31

[맛집] 본수원갈비,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문화

경기도 도청소재지인 수원은 조선 22대 정조가 수원화성을 세우고 행궁을 건립한 이래로 경기도 남부 지방의 중심이 되어 온 도시이다. 수원화성 팔달문 부근 팔달시장을 중심으로 상거래가 성행하였으며, 그 중 가축의 거래 또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원은 정조가 화성을 세운 이후 종2품인 화성유수가 수장이 화성부가 설치되면서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고 융.건릉을 중심으로 제사가 많았고, 상주 인구 또한 많았기때문에 음식문화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양반도시라고 할 수 있는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수원 왕갈비를 들 수 있을 것이고, 수원 왕갈비는 수원 부근에 있었던 우시장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지역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원 왕갈비가 크게 알려지고 수원에서 왕갈..

맛집 2011.12.29

오대산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오대산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방문하고 이 곳에 오대산 사고를 두는 등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사찰전각들은 여러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서 문화재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월정사는 주불전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적광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월정사의 주불전은 적광전으로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기슭에 위치한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사리와 대장경일부를 가지고 돌아와 통도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알려진 오래된 고찰이다. 오대산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48호인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보물 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을 제외하고 전각들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기때문에 오래된 건물은 남아 있지 았다. 불교와 관련있는 오대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문수보살이 머무는 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사찰은 조선초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영향으로 이곳에 오대산사고를 설치하고 상원사를 중창하는 등 왕실관 관련이 있는 원찰의 기능을 했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초에 세워진 석탑으로 8각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으로 경..

[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세한도(국보 180호)에 나타난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류

조선시대 사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사행을 가는 것을 명나라때에는 천자에 조공을 간다는 의미로 '조천'이라고 불렀으며, 청나라때는 병자호란의 치욕도 있고 해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조공이라는 뜻보다는 북경을 방문한다는 의미로 '연행'이라고 불렀다. 중국 사행을 오늘날 조공이라는 의미로 폄하하는 경향이 많지만 중국사회는 당시에는 넓은 세상과 문물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기때문에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관동팔경 유람과 함께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특히,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들어서면서 청나라의 국력이 강성해지고 안정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중국을 방문했고,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당시 지식인들이 느낀점을 많은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

중앙박물관 201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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