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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영암 도갑사, 불전들 (국사전, 미륵전, 천불전, 명부전, 산신각)

도갑사에는 국사전, 미륵전, 천불전, 명부전, 산신각의 불전이 있으며 그 중 도선국사와 수미왕사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산신각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미륵전은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지어 불전으로 만든 것이다. 도선국사와 수미왕사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조사당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 도갑사에서는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불전 이름인 국사전으로 부르고 있다. 대웅전 우측편 언덕에 위치한 국사전 국사전에 모셔진 도선국사 영정 도갑사 뒷편 계곡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석조여래좌상을 모신 불전인 미륵전. 석가여래를 모셨지만 미륵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웅전 뒷편에 있는 천불전 요즘 사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명부전. 이 곳..

영암 도갑사, 주불전인 대웅전

도갑사 중심불전인 대웅전은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규모가 큰 건물이다. 도갑사 사찰 규모에 맞지 않게 크게 지어져서 전체적으로 약간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물로 보인다.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으며 화엄사 각황전을 연상시키는 삼국시대 불전이 금당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처럼 아담하면서도 기품있게 지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불전이다. 도갑사 대웅전, 오래된 고려시대 석탑인 도갑사오층석탑이 경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그 뒤로 중심불전인 대웅전이 있다. 출입문인 해탈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대웅전의 모습 화엄사 각황전을 연상시키는 규모로 크게 건물을 지었다. 뒷쪽에서 본 도갑사 대웅전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1433호)과 석조

월출산 도갑사 경내를 들어서면 정면에 웅장한 대웅전 건물을 볼 수 있다. 도갑사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크기가 큰 건물로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보물 143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최근까지 탑신만 남아 있다가 하층기단부가 새롭게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도갑사 오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균형미, 조형미 등이 약간을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다. 도갑사 오층석탑. 2층기단부 위에 5층의 탑신이 얹혀 있다. 도갑사오층석탑의 기단부. 상층기단는 높고, 하층 기단은 낮게 만들어졌는데, 그 비례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화려하다거, 웅장하다는 느낌은 많지 않고 평범한 고려시대 석..

[월출산 도갑사] 범종각, 주변 풍경

월출산 도갑사 출입문이 해탈물을 들어서면, 넓은 사찰 마당과 정면의 대웅전이 보이고 대웅전 경내 남쪽편에는 범종, 법고, 목어가 걸려있는 범종각을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 세워진 전형적인 범종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천왕문 다음에는 강당이 있고, 그 아래쪽에 범종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곳 도갑사는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웅전이 나타난다. 이런 광경은 월출산 남쪽 무위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 복구하는 과정에서 마당을 넓힌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범종각.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3칸규모의 건물로 전형적인 범종각이 모습을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범종각 도갑사 해탈물을 들어서면 월출산이 있는 남쪽 방향에 범종각을 볼 수 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북쪽 방향..

[월출산 도갑사] 해탈문 (수리중)

도갑사 해탈문은 사찰의 출입문으로 보통 사찰은 사천왕문이나 금강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이 곳 도갑사는 해탈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갑사를 찾은 이유 중에 하나가 해탈문을 보기 위해서 였는데 마침 수리중이라서 제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국보급으로 선정된 문화재이지만 유흥준씨가 책에서 혹평했듯이 건축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이 해탈문을 들어서면 넓은 도갑사 경내가 펼쳐지는데 이 또한 대형 사찰의 경내처럼 넓은데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수리중인 도갑사 해탈문. 지붕은 뜯어서 없어졌지만 몸체는 남아 있었다. 도갑사 경내로 들어가는 계단길 도갑사 입구에서 수리중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수리중인 장면을 보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도갑사 입구의 돌계단. 궁궐처..

[월출산 도갑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신라말 풍수설로 잘 알려진 도선국사와 관련된 사찰인 도갑사는 월출산 북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도갑사는 월출산 남쪽 계곡에 있는 무위사와 함께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도선국사는 영암출신으로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에 많은 정신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며 전국 각지에 그의 흔적을 남겨 놓고 있으며, 도갑사도 그 중 하나이다.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면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개울물이 있고, 약 50m정도를 걸어가면 도갑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월출산 도갑사 입구. 도갑사 주차장에서 보이는 도갑사 일주문과 들어가는 길 주차장 반대편으로 보이는 월출산 작은 봉우리. 바위산으로 되어 있는 월출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월출사 도갑사 일주문.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전국 사찰의 일주..

옛 공업전습소 건물, 구한말 탁지부에서 설계한 건물

대학로 방송통신대학 내부에 있는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재경부격인 구한말 탁지부에서 기술자 양성을 위해서 설립한 공업전습소 건물로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현재는 방송통신대학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이전에 건축된 많지 않은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등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들과는 다른 양식을 사용하였으며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방송통신대학 교문을 들어서면 남쪽편에 하얀색 목조건물로 지어진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건물과는 달리 입구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통로가 없다. 외벽에는 목재로 비늘판을 붙였다. 유럽식 목조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출입문, 창문, 외벽 대학로 도로에서 본 구공업전습소 건물 대한제국 순종 융희 2년(1908)에 건립된 이 건물은 본래 기계시험소..

옛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남쪽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문화재로 지정된 옛날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건물로 시작해서 해방 후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지금은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뒷쪽으로는 방송통신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전에 있었던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당시 건물의 모습을 하고 공공기관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구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벽돌로 쌓은 3층 건물로 건물이 크고 웅장한 편이 아니다. 지금은 문화예술진흥원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아치형 출입구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마로니에 광장에서 본 옛날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건물 뒷마당 대학로 도로에서 본 옛날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일제..

대한의원 건물 (의학박물관), 서울대학교병원

조선시대 창경궁 맞은 편 궁궐정원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 서울대학병원이 있다. 젊은이의 거리인 대학로와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곳에는 구한말 국가에서 설립한 대한의원 건물이 있다. 민간에서 주도한 제중원은 한옥으로 지어진데 비해서 이 곳 대한의원은 바로크식 2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의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한건물 앞에는 서울대학 의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구한말 종두를 도입한 지석영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제중원을 승계한 세브란스 병원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층 건물인 대한의원 건물.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 중의 하나인 시계탑이 우뚝 솟아 있다. 창경궁 정문에서 서울대학 병원으로 들어..

북한강 철교와 경춘가도, 가평 자라목 부근

북한강을 따라서 이어져 있는 46번 국도인 경춘가도는 우리나라 있는 많은 아름다운 길 중에서 그 경치가 가장 빼어난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추억의 열차인 경춘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 이 국도는 지금은 4차선 국도로 바뀌면서 많은 부분이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그 경치와 낭만이 많이 남아 있는 길이 가평읍내에서 춘천 방향으로 춘성대교까지는 2차선 옛길이 남아 있다. 춘천 가는 길에 굳이 빠른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잠시 옛길을 달리면서 아름다운 길과 북한강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경춘선 철교. 경기도와 강원도를 연결해 주는 철교이기도 하며, 반대편은 춘천지역은 새로운 도로가 생기기전까지는 가평에서 자동차로 다니는 길이 없었고, 멀리 강촌에서 들어오는 길이 있었을 것..

한국의 풍경 2010.02.16

양산 영축산 통도사 - 적멸보궁, 사리탑

양산 통도사의 상로전 영역의 주불당인 대웅전 뒷편에는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모신 사리탑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웅전 건물의 명칭이 북쪽 방향에서는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통도사의 사리탑이 우리나라 최고의 성지로 여겨지며 그래서 통도사를 불보사찰이라고 불리워지는 까닭입니다. 사리탑에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탑을 돌면서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서 본 쇠똥구리 석상을 도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가운데 석종 형태의 사리탑이 있습니다. 사리탑을 밝히는 석등, 통도사에는 길목마다 많은 석등이 있습니다.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라 건물이름이 적별보궁으로 바뀝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사리탑 측면을 지키는 부조상 통도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신라시대 석조계단. 국보 제290호. 높이 300cm, 너비..

[김제 모악산 금산사] 방등계단과 적멸보궁

금산사 뒷편 송대위에 세워진 방등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에는 속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내력이 있는 사리계단이이다. 이층의 넓은 기단위에 석종형 탑을 세워 놓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는 통도사 금강계단보다는 작지만 상당히 규모가 있고, 높은 송대위에 석탑과 함께 세워진 유서깊은 사리계단으로 보인다. 그 옆에 있는 적멸보궁은 최근에 지은 불전으로 보인다. 금산사 방등계단. 2층의 넓은 기단 위에 석종형태의 탑이 있다. 주위에는 많은 석상들로 둘러져 있다. 방등계단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석상들 방당계단 기단에 새겨진 불상 방등계단 귀퉁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금산사 방등계단은 미륵전 바로 옆에 높은 송대위에 세워져 있다. 사리계단과 석탑이 모여서 하나..

양산 영축산 통도사 - 봉발탑 (보물)

통도사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탑인 봉발탑입니다. 아마 그 독창성으로 보물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용화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봉발탑 봉발탑 안내표지판 입구에서 본 봉발탑 영축산(靈鷲山)에 자리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3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이며,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와 승복의 하나인 가사(袈裟),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모시고 창건하였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중요한 절이었다. 이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

경주 토함산 불국사, 사리탑

불국사 비로전 옆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로 지정된 불국사 사리탑입니다. 석가모니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에 만든 사리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우에노 공원을 장식하고 있다가 1933년 반환된 것이라고 합니다. 불국사 사리탑입니다. 비로전 서쪽편 비각에 모셔져 있는 이 사리탑은 석등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탑신입니다.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의 탑신으로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고 있으며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감실에는 여래상과 보살상을 새겨 놓고 있습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지붕돌입니다. 불국사 사리탑의 기단은 반원형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기둥의 무늬는 ..

하동 삼신산(지리산) 쌍계사(雙磎寺) -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쌍계사 누각인 팔영루를 돌아서면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쌍계사 경내는 특이하게 석탑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탑비가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쌍계사의 내력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우리나라에 도입한 진감선사탑비입니다. 이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몸통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 같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입니다. 몸돌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역사적/문화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쌍계사의 팔영루를 지나서 본당이 있는 마당에 들어서면 다른 사찰에는 보통 석탑이 가운데에 자리하는 경..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碑,보물)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사리탑 뒷편에 있는 탑비로서 비석 자체는 장식이 없고 특별한 조형미는 없습니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탑비에 적힌 글씨가 매우 뛰어나고 그 비문을 조선초 공신인 권근이 지어서 탑비의 글씨와 내용에 가치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륭탑 뒷편에 있는 탑비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보물로 지정된 탑비입니다. 조선초 권신인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그 글씨체가 매우 뛰어나나고 합니다. 비문에 적힌 글씨체입니다. 아주 잘 쓴 것으로 느껴집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입니다. 탑비 자체의 조형적인 특징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역시 글씨에 의미를 두는 것 같..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여주 고달사지에 세워져 있는 상당히 큰 탑비로 비석은 사라지고 없고 귀부와 머릿돌만 남아 있다. 고려초기 승려인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원진 탑비로 탑이름을 '혜진'이라고 고려 광종이 내려주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기술이 많이 남아 있던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탑비라서 그런지 크기가 웅장하고 조각기술이 상당히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조각기법이 웅장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귀부와 머릿돌만 남아 있는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비. 무서운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귀부의 머리. 용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머릿돌 귀부의 거북은 발이 땅을 찍어누르는 모습을 사실적 표현하고 있다. 거북의 뒷모습 탑비의 깨어진 조각 근처에는 새끼 거북인양 서 ..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위전비

충주 중앙탑이 있는 남한강변에서 남한강변 도로를 따라서 원주방향으로 30분쯤 가면 있는 지금은 사라진 청룡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위전비와 종모양의 부도입니다. 청룡사는 사라지고 없지만 산중에 부도만 몇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청룡사지에 있는 부도들은 문화재로의 가치가 높아서 국보 1점, 보물2점, 지방문화재 2점이 남아 있습니다. 충주 남한강에서 원주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사찰인 청룡사지 입구에 있는 위전비입니다. 청룡사 건립과 유지에 기여한 신도들이 이름 등이 적혀있는 비문으로 사찰 운영에 좋은 자료가 되는 유물입니다. 청룡사지 위전비에 적혀 있는 글자들입니다. 안내표지판 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가첨석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 벽암대사비 외

법주사 입구에 있는 비석들이다. 오늘날 법주사를 존재하게 한 벽암대사를 중심으로 여러개의 비석들이 서 있다. 벽암대사비. 그외의 비석들. 법주사의 절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벽암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벽암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각성이며, 벽암은 그의 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해전에 참여하였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려들을 이끌고 3년만에 공사를 완성시키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천도하자 승려 수천 명을 모집하여, 호남의 군사들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전쟁이 끝나버리므로 승려들을 돌려보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인조 24년(1646)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머물렀고, 희..

한산도 충무공 유적지 제승당 가는 길

한산도는 거제와 통영사이에 있는 섬으로 임진왜란중 한산대첩의 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산도를 가기 위해서는 통영을 통해서 가거나 거제도에서 가는 방법이 있다. 그 중 통영을 통해서 가면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를 즐기면서 갈 수 있다. 한산도에서는 충무공 유적지인 제승당을 방문하게 되는데 제승당 가는 해안가 산책길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깨끗하다. 제승당 입구입니다. 수목들이 무척 깨끗합니다. 제승당 입구에 있는 건물. 한산도를 덮고 있는 상록수들.. 제승당을 가는 아름다운 해안길 제승당 앞 선착장. 제승당 앞 바다 한산면의 ‘한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인 ‘한산도(한산섬)에서 유래했다. 중세기의 한산도는 완만한 산야에 초지를 이루고 있어 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목장으로 관리되었으며, 이를 ‘한산..

한국의 풍경 201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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