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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수원 화성] 북동치, 북동포루,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 성곽길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과 제일 아름다운 구조물인 화홍문 사이는 거리가 멀지않고 그 사이 성곽길에는 북동적대, 북동치, 북동포루의 3개의 방어시설이 있다. 이 성곽길 바깥쪽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많은 야외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성곽길을 걸어가면 성안 서쪽편 팔달산과 서장대가 보이고 거기에서 이어진 화서문, 장안문과 동쪽의 동장대가 보인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편안하게 성곽길을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장안문 동쪽 옆에 있는 북동치는 북동적대와 같이 붙어있다. 북동치를 지나서 화홍문을 가는 성곽길. 화홍문을 서쪽편에 있는 북동포루. 벽돌을 쌓은 중국풍 전성의 모습이 보이는 곳이다. 돈대와 치성의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북동쪽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수원 화성] 북문인 장안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

수원 화성 북쪽 출입문인 장안문은 서울의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오는 길과 연결된 장안문은 그래서 특이하게 북문임에도 정문으로 여겨지는 성문이다. 바깥쪽에는 옹성이 있고 팔달문과 함께 옹성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다는 것이 화서문, 창룡문과 다른점이다. 조선시대에는 누각이나 궁궐 정전 건물은 보통 팔작지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곳 장안문은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이층건물로 아마도 자금성을 포함한 북경의 주요 건물이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을 표방하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한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고, 옹성에도 아치형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아치형의 옹성 출입..

[수원 화성] 장안문을 지키는 북서적대, 북동적대

적대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좌우에 설치해 놓은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는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 설치하였는데, 팔달문 양쪽 적대는 없어지고 장안문 양쪽에 있는 적대만 남아 있다. 적대는 치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화포를 전시해 놓고 있는데, 화포가 들어갈 자리는 아닌것으로 생각된다. 장안문 서쪽편에 위치한 북서적대. 북서적대 내부에는 화포가 전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흉벽에서 총이나 조선의 주력화포였던 블랑기를 발사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안문 동쪽에 위치한 북동적대. 장안문과 북동적대 사이에 수원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북동적대 바로 옆에는 북동치가 바로 붙어 있다. 아마도 장안문 부근이 돌출되어 있어 북동적대가 전 방향을 감당할 수 없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적..

[수원 화성] 북포루, 북서포루,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 성벽

수원 화성의 사대문인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 창룡문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으로 출입문이 난 것은 아니다. 화서문과 장안문은 약간 북서방향으로 출입문이 나있고, 그 거리도 가까운 편에 속한다. 그래서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는 치가 없고, 북포루와 북서포루의 2개 포루가 있다. 북포는 치성위에 누각을 쌓은 보통의 포루와 비슷하지만, 북서포루는 공심돈과 비슷하게 벽돌로 성밖에 돌출된 치를 쌓고 그 내부을 비워놓고 군사들이 포를 발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 성벽 바깥쪽으로는 공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북포루.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을 지나서 조금 걸어가면 있는 포루로 성벽에서 돌출된 치성 위에 누각을 올려놓고 있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북포루 누각 수원 화성 성벽 바깥에서 본 북포..

[수원 화성] 서북공심돈,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공심돈

수원 화성은 정약용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이 동서고금의 성곽에 대한 기술을 연구하여 쌓은 조선시대 최고의 읍성으로 다양한 시설을 두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러 시설물 가운데 하나인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돈대이다. 구운 벽돌을 쌓어서 만든 시설로 당시 정조대왕이 크게 자랑스러워했다는 시설이다. 아마도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천하제일관의 문루와 돈대, 성벽 등의 시설을 보고 수원 화성 축성시 많이 참조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인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은 성벽위에 벽돌을 2층으로 쌓아 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놓고 있다.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참조했을 것으로 보이는 산해관 성벽위에 설치된 돈대. 조선후기 청나라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

[수원 화성] 화서문, 수원화성의 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1896년 (정조 20면)에 완공된 성문으로 약 200년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화서문은 축성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팔달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화선문은 화성 남쪽 서해안 방향으로 연결되는 길이 출발하는 곳으로 그 중요도에 있어서 정문격인 팔달문보다 낮았던 것으로 보이며, 성문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이자 정조대왕의 최측인 채제공이 썼다고 한다. 팔달산 성벽길을 따라서 걸어 내려오다 서북각루에서 잠시 쉰 후, 평지에 도달하면 수원화성의 서쪽 출입문인 화서문과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 역할을 하는 공심돈을 볼 수 있다. 화서문 부근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수원화성은 큰 돌을 쌓은 석성을 기본으로 하여 암문, 옹성, ..

[수원 화성] 서일치, 서북각루

수원 화성 서쪽 출입문인 화서문에서 팔달산으로 오르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 서북각루와 서일치이다. 팔달산 능선을 따라서 경사진 길을 내려오던 성벽길이 평지로 바뀌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평지인 주변지역과 서쪽편 정면에 위치한 숙지산을 잘 감시할 수 있는 약간 높은 위치이다. 멀리 동북쪽 방향으로는 수원화성에서 높은 지역에 속하는 동장대 큰 누각이 보인다. 팔달산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성벽길. 팔달산 서쪽 성벽 밖으로는 수원역과 경기도청 등 행정기관에 많이 몰려 있다. 우리나라 행정기관 위치의 특징 중 하나가 성벽을 허문 자리 또른 성벽 주변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는 치성이다. 서북각루. 수원화성 서문격인 화서문 주변을 감시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설치한 누각으로,..

[수원 화성] 서포루, 서이치, 팔달산 성벽 내려가는 길

수원화성 지휘소 역할을 하는 서장대에서 화서문 부근 서북각대까는 거리도 짧으면서, 지휘소인 서장대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아서 그런지 포루와 치의 간격이 약간 좁은 것 같고, 서포루는 수원 화성 5개의 포루 중에서 가장 중무장했다고 한다. 서쪽문이 화서문과 팔달산 정상 서장대까지는 거리도 짧고, 성벽너머에는 수원역, 경기도청 등 수원의 중심부가 자리잡고 있다. 팔달산 정산 서장대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 약간 경사가 있는 계단길을 따라서 성벽이 이어져 있다. 서이치.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서이치를 지나 성벽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평지와 가까운 지점에 설치된 서포루를 볼 수 있다. 서포루는 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포루로서 수원화성의 5개 포루 중 가장 중무장한 포루라 한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

[수원 화성] 팔달산 정상 서장대,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수원화성 서쪽편에 위치한 팔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이다. 연무대라 불리는 동장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이 곳 서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뚫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수원 화성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장대 편액은 정조대왕의 친필로 쓴 글씨이며,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원화성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서포루와 작은 암문인 서암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도 제일 중요한 시절 중의 하나인 서장대를 볼 수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2층 누각으로 사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군사를 지휘하는 곳이다. '화성장대'라고 쓴 ..

[수원 화성] 팔달산 정상 서암문, 서노대

수원화성 서포루를 지나면 연무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 제일 중요한 시설로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를 만날 수 있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수원시내늘 물론이고, 북쪽으로는 광교산, 용인방면이 남쪽으로는 화산, 오산 독산성까지 눈으로 들어오는 경관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장대는 정조대왕이 친히 쓴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화성행궁이 자리잡고 있다. 서암문은 아마도 서장대를 출입하기 위해서 만든 암문으로 보이며, 수원 화성에서 설치된 암문 중에서도 제일 교모하게 설치한 것 같다. 서노대는 서장대와 함께 사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수원화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 서장대를 가기 직전에 교모하게 설치된 서암문이 있다. 아마도..

[수원 화성] 서삼치, 서포루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서남암문을 지나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까지는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연결되어 있는데, 서삼치, 서포루, 서암문의 시설들이 있다. 수원화성 중 산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분으로 팔달산 아래 남쪽 방향을 보고 있다. 이 곳 성벽 아래로는 수원의 주요 행정시설과 수원역이 있고, 멀리 사도세자 능이 있는 화산이 멀리 보이는 곳이다. 서남암문을 지나면 성벽길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하게 걸어서 팔달산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서장대까지 걸을 수 있다. 서삼치.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수원화성 성곽 외부에서 본 성벽.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통로가 있고, 그 아래에는 매점같은 시설이 있다. 원래있던 출입문은 아니고 수원화성 관람의 편..

[수원 화성] 서남각루, 용도동치, 용도서치

수원화성 팔달산 정상부에 위치한 서남암문을 나서면 남쪽 능선을 따라서 '용도'라 불리는 길이 있고, 길 양쪽으로는 화성의 성벽보다 낮은 성벽으로 보호받고 있다. 용도의 끝에는 서남각루라 불리는 누각이 있어서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남각루에 올라서면, 수원 화성 팔달산 남쪽방면 경관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다. 서남포사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용도. 수원화성 서남암문을 나서면 서남각루까지 용도가 이어져 있다. 용도 좌.우에는 '치'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용도동치 '치'는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로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수원 화성]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수원화성 성벽길 남포루를 지나면 팔달산 정상 부근에 이르면 성벽이 서남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는데 이 성벽길을 용도라고 부른다. 이 용도를 나가는 출입문으로는 서남암문이라 불리는 암문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는 병사들이 상주하던 시설인 서남포사가 있다. 암문과 포사가 하나로 되어 있는 특이한 시설물이다. 남포루를 지나서 팔달산 정상으로 성벽길을 계속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약간 급해지면서 팔달산 정상부근에 위치한 서남암문과 서남포사에 도착하게 된다. 성벽길에서 본 서남포사의 옆면, 병사들이 상주하던 곳으로 출입문이 있다. 서남포사 아래로는 화성의 5개 암문 중 하나인 서남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을 나서면 수원화성 성벽 중 돌출된 부분인 용도와 연결되어 있다. 용도에서 본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용도에서 본 ..

[수원 화성] 남치, 남포루, 팔달산 오르는 성벽길

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에서 서쪽편에 있는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이다. 팔달문에서 서쪽을 보면 크게 높지 않은 산인 팔달산이 있고, 성벽을 따라서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성벽중에서 경사가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성벽을 오르기에 크기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성벽을 오르다 보면 방어시설물인 '남치'와 '남포루'를 만날 수 있다. 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과 지동시장에서 끊어졌단 성벽이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팔달산을 오르면서 수원화성 성벽 걷기를 시작한다. 수원화성 동쪽편인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 원래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이동하는 통로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가 별도로 있다. 팔달산 오르는 성벽길에서 본 팔달문과 부근의 지동시장. 이 곳이 수원지역 재래시장으로서 서울의 남..

[수원 화성] 팔달문, 사통팔달 수원화성 남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능침을 화산 부근으로 이전하고 이곳에 있는 읍성을 현재의 팔달산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당시 최대 규모의 신도시이다. 당대의 실학자 정약용, 채제공 등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하여 조성한 수원화성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고, 의궤 등에 수원화성 축성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아주 독특한 성곽이다. 그 중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던 성문이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 주변으로는 지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꿋꿋히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은 아마도 북경에서도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 만리장성에..

[창녕박물관] 창녕지역 양반문화, 이장곤 교지

창녕지역 양반문화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문신 이장곤 선생을 모신 연암서원 유물들을 중심으로 이 지역 양반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판 등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유물로 이장곤 교지를 들 수 있다. 이장곤은 홍명희 작품 '임꺽정'의 전반부늘 장식하는 주인공으로 그 내용은 갑자사화때 화를 입어 도주하여 함흥의 고리백정들과 같이 살았던 사람으로 많은 전설을 만들었다. 그 외에 이 지역에 보관하고 있던 책판들이 있다. 이장곤 교지. 후대인 조선말 철종때 내려진 교지로 보인다. 이장곤(李長坤, 1474년 ~ ?)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희강, 호는 학고와 금헌, 금재, 우만, 시호는 정도이며 본관은 벽진이다.참군 이승언의 아들이자 김굉필의 문인으로 1495년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지역박물관 2010.03.09

[창녕박물관] 구한말 보부상 유품

창녕박물관에는 이 지역에 기반을 둔 보부상 조직인 상무사에서 사용하던 전적과 인장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충남지역 보부상 조직의 유물과 함께 조선시대 서민 경제활동의 내용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구한말에 보부상 조직이 구체화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창녕지역 보부상의 인장과 인장함 보부상 전적. 거래와 관련된 서류로 보인다. 각종 보부상 유품들 이 유물은 구한말 1884년 이후 창녕중심으로 설치된 상무사에서 사용하던 전적과 인장으로 당시 경남북일원의 상업 실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치가 있습니다. 상무사는 좌사는 보상, 우사는 부상으로 구성되었으며 창녕의 보부상은 상무좌사 소속입니다. 보부상은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으로 나누어지며, 보상은 주로 방물, 장신구 등 귀중품을 주로 취급..

지역박물관 2010.03.09

[창녕박물관] 비화가야 생활도구

가야시대 생활용구는 주로 교동, 계성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 농기구, 부엌용품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당시에 화폐 기능을 겸했던 것을 보이는 덩이쇠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유물들로서는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당시 모습을 엿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 중 가락바퀴는 실을 만드는 도구로 여성이 묻힐 경우 껴묻거리로 같이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락바퀴. 끼워졌던 목재는 남아 있지 않고 바퀴만 출토된다. 실을 만드는 도구라 한다. 가락바퀴는 옷감을 짜기 위한 실을 만드는 도구이다. 끼워진 목재는 썩어 없어져 남아 있지 않고 재질로는 토제와 석제가 있으며 깨진 토기조각을 갈아 만든 것도 있다. 가락바퀴의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으며 형태는 원판형, 구슬형, 원추형, 주판..

지역박물관 2010.03.09

[창녕박물관] 비화가야 토기

철제무기류와 함께 가야고분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로 토기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야의 토기는 고온에서 구워낸 단단한 토기로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토기류의 상당부분이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다. 가야에서 토기가 많이 출토되는 것은 대형고분이 유행하면서, 고분에 묻힌 사람의 사후세계에 필요한 제기 등의 의식용 물품들이 갇히 묻어주었던 것으로 보이며, 가야인의 사후세계관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목이 긴 항아리인 장경호.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항아리 형태이다. 대표적인 가야토기인 굽다리접시를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접시들. 목이 짫은 항아리인 단경호 뚜겅이 있는 토기들 항아리 중에 크기가 유별나게 큰 항아리 가야토기의 특징은 10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단단한 토기로 대표되며 출현시..

지역박물관 2010.03.09

[창녕박물관] 비화가야의 철제무기, 마구류

가야지역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 철제무기와 마구류들이다. 가야는 철의 왕국답게 여러지역에서 다양한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었으며, 철기병을 운영해서 그런지 마구류들도 많이 출토된다. 이 곳 창녕박물관에는 교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마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부는 계성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도 있다. 아마도 더 많은 유물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종류별로 대표적인 유물들만 전시한 것으로 보인다. 창녕 계성 고분군에 출토된 삼지창, 화찰촉 등 교동 구분군에서 출토된 각종 창, 투창, 도끼 대표적인 가야 유물인 환두대도 창녕을 비롯한 가야지방의 선조들은 힘을 이용해 각종 무구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무덤에서 나온 각종 유무로 확인되고 있다. 우수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가야시대의 무..

지역박물관 20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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