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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안동 천등산 봉정사 - 화엄강당 (보물)

봉정사 대웅전이 있는 중심 영역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학문을 배우는 수양공간이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사용한 이 건물은 극락전의 건축 양식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극락전과 마찬가지로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워낙 간결하고 깨끗하게 관리되어서인지 최근에 만든 건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특징이 뚜렷한 건물이다. 봉정사 화엄강당은 대웅전 앞 경내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로 정면3칸, 옆면 2칸의 건물이지만 강당으로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봉정사 화엄강당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였다. 뒷쪽편에서 본 봉정사 화엄강당. 단청의 장식이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꾸며졌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 - 고금당 (보물)

봉정사 극락전 앞 마당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아주 작은 건물이다. 예전에는 불상을 모신 불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이다. 극락전, 화엄강당과 마찬가지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주심포 양식으로 사용하여 꼼꼼하게 지어진 건물이어서 그 가치가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봉정사 극락전 앞 마당 서쪽편에 있는 고금당. 앞면 3칸, 옆면2칸의 맞매지붕 건물이지만 규모는 아주 작다. 봉정사 고금당은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이용한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만든 봉황새를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

안동 천등산 봉정사 - 스님들 기거 공간인 요사채 '무량해회'

안동 봉정사에서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인 요사체는 이 사찰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봉정사 요사체는 일반적인 절집과는 약간 다르게 안동지역의 사대부 집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팔작지붕의 사랑채와 툇마루, 안채같은 분위기 집 등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동 지역 일반 사대부 저택의 안채를 연상시키는 안동 봉정사의 요사채 봉정사 요사채에는 '무량해회'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봉정사 요사채인 '무량해회'의 툇마루는 사대부 저택의 사랑채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이 곳을 방문하는 중요 인사가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가 생각되며, 그들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사대부 저택 안채를 연상시키는 건물구조 봉정사 요사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대표적인 고려 주심포 건축 양식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고, 봉정사를 대표하는 불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봉정사 극락전을 처음 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이렇게 새 건물 같은 봉정사 극락전이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니???"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목조 건축물의 특성상 오랜 세월동안 중수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찬찬히 건물을 뜯어 보면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고려의 주심포 건축 양식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봉정사 극락전은 다른 불전에 비해서 다른 양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

안동 봉정사 대웅전 (국보), 고려말 다포계 양식 건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에 가려져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봉정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아주 최근에 국보로 승격되었다. 승격된 사유로는 최근까지 건립연대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으나, 최근에 세종때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됨에 따라 최소한 그 이전에 세워진 건물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고려 다포계 건물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점이 인정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대웅전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곳 안동지역 고택들의 사랑방에 있는 툇마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고려말, 조선초기 목조건물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봉정사 대웅전 건물은 고려의 다포계 건축양식이..

안동 천등산 봉정사 만세루, 사찰 입구의 2층 누각

봉정사 경내를 들어가는 입구인 만세루는 봉정사에 있는 많은 전각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이지만 장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일 오래된 건물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 만세루에 올라서 쉴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어 있다. 오래된 목조기둥과 마루바닥, 그리고 흙벽과 자역석으로 쌓은 만세루에서 봉정사의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에는 대부분의 사찰들에서 볼 수 있는 천왕문 이나 금강문이 없고, 언덕 계단을 올라서 누각 아래로 사찰 경내를 출입하게 된다. 이런 점은 인근의 부석사와 비슷한 구조이다. 천등사 봉정사 누각인 만세루 아래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사찰 경내로 출입하게 되어 있는데 이 곳 만세루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상징물이 없고 작은 쪽문만 있다. 2층..

안동 천등산 봉정사 - 일주문, 들어가는 길

안동 서후면 천등산에 자리잡고 있는 봉정사는 안동 시내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과 대웅전이 남아 있다. 봉정사를 들어가는 길은 물이 흐르는 계곡길을 걸어서 올라가는 일반적인 산중 사찰과는 달리 부석사나 수덕사처럼 언덕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숲속길을 조금 걸어올라가면 사찰의 입구인 만세루을 만날 수 있다. 어떤 특징적인 아름다운면을 표현할 수 있지는 않지만 봉정사를 올라가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젓한 산길을 걸어올라 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안동 천등사 봉정사가 시작되는 일주문. 봉정사 주차장에서 봉정사까지의 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봉정사 오르는 길 옆으로 계곡물은 흐르지 않지만 적당한 경사의 숲속..

서울 옛 조선중앙일보 사옥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안국동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오래된 건물이다. 현재는 농협중앙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원래는 조선, 동아와 함께 일제강점기때 신문사였던 조선중앙일보 사옥이라고 한다. 벽돌로 쌓은 2층 건물로 1930년대 낡은 분위기가 풍기는 건물이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당시 관공서 건축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서울 도심의 빌딩숲에 가려져 지금은 아주 왜소해 보인다. 이층 벽돌건물로 작은 출입문과 창문을 두고 있다. 건물 현관 출입문 건물 자체로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민간 건축물로서 일제강점기를 말해주는 건물이 많지 않아서 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은 1926년 7월 5일 신축하여 일제치하 동아일보.조선일보와 함께 민간 3대 신문의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

[부안 능가산 내소사] 조사당, 삼성각, 무설당

내소사 전각의 배치와 전체적인 형태를 보면 원래 전각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대웅보전과 설선당, 봉래루를 제외하고는 유서깊은 건물은 많지는 않다. 그래고 지금도 많은 전각들이 신축되고 있는데, 조사당을 비롯하여 대웅보전 서쪽편에 있는 건물들이 먼저 복원되고 서쪽편의 전각들은 최근에 복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소사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반드시 있는 명부전이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내소사에는 대웅보전과 설선당을 제외하면 전각이 많지 않았으나, 조금씩 새로운 전각을 만들어서 규모가를 키우고 있다. 내소사의 건물배치로 보아서는 원래 전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조선후기 이후에 많은 건물들이 없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웅보전 우측편에 조사당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있다. 대웅..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화려한 꽃무늬 문살로 장식한 불전

내소사의 중심불전인 대웅보전입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소사는 원래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부터 있는 불전으로는 대웅전이 거의 유일한 것 같고 스님들이 거처하던 설선당과 지금은 조사당으로 쓰이는 삼성각, 그리고 경내를 출입하는 봉래루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규모는 아주 크지 않지만 꽃무늬 문살 등 화려한 장식이 많이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내소사의 중심불전인 대웅보전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물로 조선중기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문살과 처마가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뒷산의 봉우리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쪽편 아래쪽에서 ..

[부안 능가산 내소사] 고려동종(高麗銅鐘) 삼층석탑(三層石塔)

부안의 내소사는 전북의 주변에 속하는 변산반도에 자리한 사찰이기 때문에 문화재는 대형사찰에 비해서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 중에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급에 속하는 고려시대 동종이 이 곳 내소사에 있다. 종의 크기는 크지 않고 원래 다른 사찰에 있던 것을 조선후기에 옮겼다고 한다. 내소사의 대웅전 앞 마당에는 크지 않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3층석탑이 있는데 예술적인 면에서나 역사적 면에서나 가치는 높지 않은 아주 평이한 3층석탑이다. 내소사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동종. 동종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으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용머리를 한 종의 고리가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가까이서 찍은 고려동종의 사진. 크지는 작지만 오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위쪽 고리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해..

[부안 능가산 내소사] 봉래루(蓬萊樓), 범종각, 보종각

내소사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내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눈앞에 커다란 고목이 우뚝 서 있고 뒤로는 내소사의 전각들과 뒷편의 능가산의 풍경이 적절하게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커다란 고목을 지나면 내소사의 실질적인 경내인 대웅전 앞 마당을 들어가는 통로인 봉래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래루는 오래된 건물같지는 않은데 채색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봉래루 기둥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서 걸어둔 쪽지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내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가운데에 아주 오래된 고목이 우뚝 서있고 양편으로는 두개의 범종각이 있으며 뒤로는 능가산 봉우리가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소사의 오래된 고목입니다. 겨울이라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내..

[부안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천왕문, 입구의 벚나무 길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500여m 정도 걸어오면 숲길이 끝나면서 확 트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숲길 끝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면 앞으로는 아름다운 벚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고 끝에는 사철의 실질적인 출입구인 사천왕문이 보보인며, 사천왕문 너머로 아름다운 능가산의 절경이 보이고 그 아래로 아늑하게 내소사가 자리잡고 있다. 입구 서쪽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너머로 내소사와 관련된 부도전이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내소사의 전경이 꽤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넓직한 벚나무길이 약 50m 가량 있고 그 앞에는 실질적인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다. 들어오는 전나무 숲길도 좋았지만 이 길도 꽤나 정겨운 길로, 봄에 벚꽃이 활짝피면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

조계사 대웅전,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인 조계사 중심 불전

조계사는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이 자리한 곳으로 서울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원래 한양도성안에는 원각사 외에는 사찰이 없었으나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을 중심으로 불교 개혁운동의 중심지로서 이 곳에 조계사를 건립하였다. 그래서 조계사에는 불전이 많지 않지만 도심 포교의 중심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은 원래 정읍에 지어진 보천사 십이전을 옮겨온 것으로 1920년대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사찰 건축양식을 적용해서 대형화한 불전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계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조계사를 찾은 많은 신도들을 위해서 천막을 쳐 놓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웅전 문살과 다포계 공포..

제야의 종소리를 울려주는 보신각 (종각)

한양 도성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큰 도로를 종로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으니 근본 내력이 되는 시간을 알려주던 종을 걸어놓았던 곳이 보신각이다. 종각이라는 부르기도 하는 보신각은 고종이 보신각이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현재의 이름이 정해졌다. 보신각에 걸려 있던 종은 원래 원각사에 있던 종을 이 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하는데 1985년까지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이 보신각에서 하루에 2번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 왔으로 당시 한양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표준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보신각 누각은 오랜 기간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새로 지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앞면5칸, 옆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보신각. 2층 누각..

조선 관아 2010.03.21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2호), 유리벽에 갇힌 탑골공원 석탑

서울의 중심으로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이래 오랜 기간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던 탑골공원이 원래는 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경천사지석탑과 더불어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도교사상이 들어가 있는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나라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또다른 북방민족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이다. 이 곳에 원각사라는 절을 세운 사람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무력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살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피를 많이 본 민족인 토번족인 티벳인,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라마교를 많이 숭상하고 이런류의 조각상을 많이..

청계천 세운상가, 건축가 김수근 설계한 70년대 대표하는 상가 건축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는 청계천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던 한때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이끌었던 곳으로, 종묘 앞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4동의 상가 건물을 말한다. 80년대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면서 그 기능이 많이 퇴색되었고, 지금은 낡고 슬럼화된 건물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외부로 드러난 많은 콘크리크 기둥이 김수근 건축작품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건물은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 도로에 날개처럼 2층에 인도를 만들어 놓고 있다. 서울 도심을 가르는 종로, 청계천, 을지로, 퇴계로 사이를 일관성있게 연결해 놓고 있다. 한때는 조립컴퓨터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한때는 불법소프트웨어 복제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서울 녹지축 건설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유..

[화성 행궁] 북군영, 집사청, 느티나무

수원 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군으로 수원 화성 장용외영 친군위가 숙직하던 북군영과 행궁의 잡무를 맡아 보던 집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화성행궁에는 기병으로 구성된 장용외영의 핵심 병력인 친군가 수직근무하던 북군영과 남군영이 신풍루 좌.우에 자리잡고 있으며 각기 100명씩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용외영 기병들이 숙직근무하던 북군영. 지휘부가 숙식하던 건물로 보이며, 주위에 행각들로 둘러져 있다. 북군영 행각들 북군영 '화성성역의궤'에는 관아건물로 분류해 놓았다. 장용외영의 친군위(화성의 기병)는 처음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이 남.북군영이다. (화성행궁 전체는 동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방위로 볼때 남쪼과 북쪽방향에 군영이 있다.) 1789년 군영 24칸을 지은데다..

조선 관아 2010.03.18

[화성 행궁] 화령전 풍화당(재실), 전사청, 내삼문, 외삼문

화성행궁 화령전은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운한각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로 재실인 풍화당, 화령전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전사청이 있으며, 전주의 경기전과 마찬가지로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풍화당과 전사청은 건물이 크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내.외 삼문 또한 장식성이 거의 배제된 경건한 분위기이다. 화령전 풍화당은 재실로서 제향이 있을 때 제를 올리는 사람이 미리와서 머무는 건물이다. 풍화는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전사청은 화령전을 관리하는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로 보인다. 화령전 내삼문 화령전 내삼문 안쪽에는 삼도가 있고, 바깥쪽에는 신도만 있다. 화령전 내.외삼문에는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큰 틈을 두고 있다..

궁궐_종묘 2010.03.18

[화성 행궁]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 운한각

수원 화성행궁에서 정전격이 봉수당과 각종 연회나 행사가 열리던 화성행궁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낙남헌을 지나면 오래된 큰 목조 건물을 중심으로 한 건물군을 볼 수 있다. 이 곳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건설한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으로 정조대왕의 아들인 순조가 세운 봉안각이다. 화령전은 정전인 운한각을 중심으로 재실인 풍화당,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비상시 어진을 옮겨놓은 이안청,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령전은 1800년대에 세운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으로 화령전 정전 내부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있다. 조선후기에 세워진 대표적인 목조건물이라 한다. 화령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목조 건물로 앞에는 월대가 세워져 있는데, 궁궐 정전 건물과 비슷..

궁궐_종묘 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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