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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일원 (보물 1764호), 마지막으로 왕족이 거처하던 곳

younghwan 2012. 11. 1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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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낙선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89년까지 마지막 이씨왕조 후손들이 살았던 공간을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왕의 침전이다. 구한말인 헌종 13년(1847)에 지어진 낙선재는 기존의 궁궐전각 형태가 아닌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국왕의 침전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처음부터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경우도 있지만, 일부 국왕들은 사저에 태어나 일반인처럼 살다가 왕위를 이을 세자가 없어서 대신 왕위에 오른 경우가 많다. 이런 왕들은 민간인으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여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전각을 짓고 거처하는 경우가 있었다. 낙선재와 마찬가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이 이런 연유로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은 전각들이다. 낙선재는 먼저 국왕의 서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사랑채 형태의 낙선재를 짓고, 왕비를 위해 안동 하회마을 종택인 양진당 안채와 비슷한 형태의 'ㅁ'자형 한옥 안채인 석복헌, 대왕대비를 위한 'ㄱ'자형 한옥인 수강재를 지었다. 헌종대에 처음 지은 낙선재는 이후 고종이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 이은이 1970년까지, 부인 이방자여사가 1989년까지 기거하였다.

 사랑채인 낙선재는 구한말 크게 유행하였던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 건물로 넓은 마당에 행각으로 둘려져 있는 건물이며, 석복헌은 경북 북부지방 사대부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ㅁ'자형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러져 있다. 대왕대비를 위한 처소로 지은 수강재는 석복헌과 달리 안채가 아닌 'ㄱ'자형 사랑채 건물과 비슷하게 지어졌다. 낙선재는 궁궐내 전각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단청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사대부저택과는 달리 다양한 문양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복도와 행랑채의 구성이 일반 사대부 저택과는 약간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로 당대의 유명한 목수들이 참여하여 지은 사대부 저택 형태로 건축적인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궁궐전각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건물로 사치를 경계하는 의미를 갖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사대부저택으로 상당히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낙선재 일원
헌종은 명헌왕후에게서 후사가 없자 1847년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중희당 동쪽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을 지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를 모신곳이었다. 헌종의 뜻에 따라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외형을 지녔으며, 또한 외국 문물에 대한 왕의 기호를 반영하듯 낙선재 창살무늬와 상량정의 건축 양식 등에서 청나라 양식을 볼 수 있다.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이며, 대청마루 앞 주련에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 옹방강의 글씨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는 구한말에 지어진 전각으로 사대부의 99칸 저택의 형태를 하고 있는 국왕의 침전이다. 사랑채인 낙선재, 안채인 석복현, 별채인 수강재와 뒷편의 크고 작은 정자들로 이루어진 대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채인 낙선재는 앞면과 왼쪽편은 행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문간채에 솟을대문이 있지만, 옆에도 신하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두고 있다.


낙선재 출입문이 사대부저택의 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는 장락문. 궁궐건물이지만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솟을대문만 있다. 아마도 국왕을 제외하고는 옆문으로 출입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대문을 들어서면 낙선재 누마루와 그 뒷편의 중국풍 정자인 상량정이 보인다.


낙선재는 돌출된 누마루가 있는 'ㄱ'자형 사랑채 건물로 구한말에 많이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앞면 6칸에 대청마루, 온돌방, 누마루로 이루어진 건물로 국왕의 집무실이자 서재로 지은 건물이다.


석재로 길게 만들어진 주춧돌 위에 건물을 얹은 누마루는 구한말 양반들의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건물은 간소하게 지어졌지만, 문살과 장식등에서 궁궐 전각의 화려함이 남아 있다.


'낙선재'라고 적힌 현판은 당시 중국의 뛰어난 명필이었던 섭지선이 쓴 글씨라고 한다.


대청마루와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서 걸터 앉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퇴마루는 복도역할을 하면 행랑채와 안채인 석복헌과 연결되어 있다. 기중에 쓴 주련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인 청나라 명필 옹방강이 쓴 글씨라고 한다.


낙선재 대청마루


낙선재 온돌방


낙선재 왼쪽편 행각. 낙선재가 일반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지기는 했지만, 국왕은 워낙 많은 수행원을 거느려야 했기때문에 일반 사대부 저택에 비해서 행랑채의 규모가 크고 방도 많은편이다.


낙선재는 솟을대문이 출입문이기는 하지만 궁궐건물이기때문에 신하들이 출입할 수 있는 출입문을 왼쪽편 행각에 두고 있다.


낙선재 남쪽편 행각


2012년 가을 낙선재


2009년 가을 낙선재


낙선재에서 안채인 석복헌으로 연결되는 작은 쪽문.


석복헌과 낙선재 사이의 공간. 실제 출입이 많지 않았던 통로로 보이며, 작은 마당에 툇마루를 바깥쪽으로 달아내어 놓고 있으며, 굴뚝이 있다.


낙선재 안채 건물이 석복헌을 출입하는 출입문. 안채건물로 솟을대문을 사용하지 않고 문간채가 있는 출입문을 하고 있다. 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고, 연결복도가 보인다. 여자들의 공간이 안채 내부를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한 동선배치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문간채들이 있고, 'ㅁ'자형으로 된 안채 중문이 있다.


안채이 석복헌 중문이 있는 문간채. 다른 건물에 비해서 특히 사대부 저택의 형태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석복헌은 중정행식을 하고 있는 'ㅁ'자형 사대부 저택의 안채 형태를 하고 있는데, 특히 안동 하회마을의 양진당 안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석복헌 안채는 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가 연결되어 있다.


안채 오른쪽 날개채는 문간채와 행랑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도 역할을 하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복도 역할을 하는 툇마루


부엌이 있는 안채 왼쪽편 날개채와 행랑채


부엌내부. 실제 궁궐전각으로 부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궁이가 있는 공간만 있고 실제 부엌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문이 있는 문간채.


왕비가 머무는 처소인 석복헌은 대왕대비 처소로 마련한 수강재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 뒷편 아궁이


낙선재 동쪽편 끝에 위치한 대비를 위해 마련한 공간인 수강재는 안채 형식인 석복헌과는 달리 'ㄱ'자형 사랑채와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다. 일반사대부 저택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건물형태나 배치는 궁궐 전각의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강재는 가운데 2칸 대청마루와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구조이다.


수강재 대청마루와 툇마루


대청마루 내부


수강재 앞쪽의 행각. 수행원들이 많은 까닭에 크고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강재 출입문은 동쪽편에 있다.


바깥쪽에 툇마루를 두어 바깥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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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낙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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