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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유명하고 전형적인 리키아 무덤 양식으로 통모양의 석관 형태인 파야바 석관입니다. 석재를 이용해서 목조 구조물처럼 만들었습니다. 주위에는 화려한 부조 조각으로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리키아는 터어키의 서남부 해안에서 고대 그리스 시기 동안에 독립적으로 국가를 유지해 오던 지역입니다. 장식된 부조 조각상을 보면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화가 융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The tomb of Payava, a Lykian aristocrat, 파야바 석관>입니다. 터어키 해안지방 산토스에서 발견된 유물로 그리스 시대에 번성했던 리키아를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목조건축 양식을 본떠서 석재로 만든 무덤입니다.

파야바 석관 전면부에 새겨진 섬세한 부조 조각입니다.

파야바 석관의 중간에 위치한 부분은 장식이 없고 아주 간결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목조 건축의 양식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입니다.

파야바 석관의 지붕입니다. 화려한 부조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석관의 부조 조각상입니다.

<Relief panel from the Harpy Tomb, 하피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터키의 Xanthos에서 발굴된 유물로 소아시아 지역의 Lykia 유물입니다. 이 무덤은 석회암으로 만든 전형적인 Lykia 무덤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리아와 팜필리아 사이의 지중해변에 위치했으며, 내륙으로는 타우루스 산맥 능선에까지 뻗쳐 있었다. BC 14~13세기의 이집트·히타이트·우가리트 기록에는 리키아인들이 북변의 히타이트인과 해안의 아카이아 그리스인들 사이에 쐐기처럼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루카로 알려진 그들은 메르네프타(BC 1231경) 5년 해안 민족들의 이집트 공격에 참가했다(→ 해상민족). 그뒤의 리키아에 대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다가 BC 8세기경에 그들은 번영하는 해안거주민으로 등장하여 적어도 20개 도시들이 모여 리키아 동맹을 형성했다고 되어 있다. 리카아는 프리지아나 리디아의 지배도 받지 않았으나 결국은 키루스의 하르파구스 장군에게 한 차례 영웅적으로 저항한 후에 굴복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와 그 뒤를 이은 로마의 지배하에서 리키아는 상대적인 자유를 누렸고, 아우구스투스 때까지 동맹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령 팜피리아에 합병된 후(AD 43) 이 고대 지역은 4세기 이후에 별개의 주(州)로 분리되었다. 고고학적 유적이 크산투스·파타라·미라와 그외 다른 도시들이 있던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돌을 목조형식으로 다듬어 만든 무덤이 딸린 독특한 분묘건조물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