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조선 관아

안성객사(安城客舍), 고려 주심포계 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

younghwan 2010. 9. 21. 15:42
반응형

 경기도 안성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객사입니다. 객사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고,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중앙관리가 잠시 머무는 숙소역할을 하는 곳으로 각 지역마다 해당 지역의 규모에 걸맞는 규모의 객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안성은 전국에서 평균에 가까운 규모의 지역으로 전형적이 객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원래는 안성읍내에 있던 것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성객사는 고려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의 주심포계 양식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건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안성읍에서 중부고속도로가 있는 죽산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객사입니다. 원래는 안성 읍내에 있었으나, 일제시대부터 여러곳이로 이전했다가 지금의 안성도서관 앞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면에 궐패를 모시는 정청이 있고 이 지역을 방문하는 인사들이 머무는 방인 좌우 익랑이 양쪽에 있습니다. 

안성 객사 가운데 건물인 정청입니다. 객사에서 정청은 임금의 위패인 궐패를 모시고 신년 등 여러 행사때 절을 올리는 곳입니다. 지방 관청 건물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우리나라에는 여러 지방에 이런 객사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안성 객사의 정청은 기둥 머리 위에만 지뭉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를 얹은 고려 주심포계 양식의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안성객사의 좌.우익랑입니다. 우익랑은 정면 2칸을 방으로 사용하고 있고, 좌익랑은 1칸짜리방이 있습니다. 마루는 공통적으로 정면 2칸입니다.

안성객사 좌.우익랑의 마루입니다. 아마도 객사에 머물던 중앙 정부 인사와 연회를 가지는 장소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성객사를 방문한 중앙 관리가 머물던 좌.우익랑의 방입니다. 우익랑은 정면2칸, 좌익랑은 정면1칸의 방이 있습니다.

안성객사 좌익랑 천정입니다.

안성객사의 뒷마당입니다. 좌.우익랑은 난방을 위한 온돌 굴뚝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본 안성객사 정문입니다.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우 익실로 구성되어 있다.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이 쓰여진 기와는 조선 숙종 21년(1695)에 고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원래 읍내의 관아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명륜여자중학교로 옮겨졌다가 1995년에 해체·수리되어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다. 업무를 보던 정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에 지붕 옆면에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는 맞배집의 정청이 가운데 있고, 양 옆에는 앞면 2칸·옆면 2칸에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 붙어있는 형식이다. 정청은 기둥 머리 위에만 지붕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를 얹은 주심포계 양식이다. 기둥 높이에 비해 기둥 사이의 거리가 좁고 가운데가 가늘게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기둥 가운데를 약간 굵게 하는 배흘림기법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해체·수리 때 조사한 결과 일제시대에 옮겨지면서 기둥 아랫부분이 잘려나가고 기둥 사이의 거리도 줄여져서 생긴 현상이다. 이 객사는 우리나라에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주심포계 양식의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