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중국에서는 오대십국을 통일한 송나라가 있었고, 북방에서는 거란,여진,몽골이 연이어서 크게 번성하였다. 고려와 송과의 관계는 북방 민족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발한 상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는 신안 보물선 등에서도 나타났듯이 송에서 만든 도자기류가 많은 것으로 보이며, 인쇄관련 서적류, 청동 거울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은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통교하였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각종 서적과 예악.의학기술 등을 들여와 고려의 인쇄문화와 의료 및 각종 학문.사상과 의례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비단.약재.악기.차.향료.상아.물소뿔 등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들을 주로 수입하고, 금.은.구리, 인삼.잣, 동물가죽, 마포, 화문석, 나전칠기, 종이, 금은 세공품 등을 송에 수출하였다. 서닌문물의 수용이 주목적이던 고려는 거란이나 금의 동향에 따라 송과의 외교관계를 끊었다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실리 외교를 펼쳤다.
송(宋)과의 관계
중국 대륙 중심부에서 오대십국의 혼란을 수습하며 건국한 송은 동북방의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통교하였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각종 서적과 예악.의학기술 등을 들여와 고려의 인쇄문화와 의료 및 각종 학문.사상과 의례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비단.약재.차.향로.상아.물소뿔 등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들을 주로 수입하고, 금.은.구리,인삼.잣,동물가죽, 마포,화문석,나전칠기,종이,금은 세공품 등을 송에 수출하였다. 선진 문물의 수용이 주목적이던 고려는 거란이나 금의 동향에 따라 송과의 외교관계를 끊었다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실리 외교를 펼쳤다. 고려와 송 사이의 교역에서 가장 큰 상인들의 무역이었다. 특히 송 상인들의 고려 왕래는 고려 상인의 송 왕래에 비해 한층 비번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된 경우만도 260여년간 120여회에 걸쳐 5천여명의 송 상인들이 고려를 찾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송 상인은 주로 8,8월 경에 고려를 찾아왔고, 여진인.탐라인.일본인 등과 더불어 팔관회에 참석한 후 돌아갔다. 송상인들은 양국의 외교가 끊어진 시기에도 고려를 찾아와 교역하였고, 두 정부 사이의 비밀문서나 승려들 사이의 서신 전달, 불교 진적 등의 구입 요청. 납품을 매개하는 일 등을 하기도 하였다. 11세기에는 대식국의 상인들이 3회회에 걸쳐 고려를 찾아왔는데, 이 역시 송상인들을 통해 고려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때문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개성 출토 중국 거울 ("호주"명 동경, "항주"명 동경), 개성출토
"호주의봉_석가진정일색청동경"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거울이다. 명문으로 볼 때, 중국 "호주"의 한 공방에서 제작되어 고려에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수도이던 개성 지역에서 출토된 점, 같은 형태.내용의 거울이 고려와의 교류가 특히 활발하던 송대에 많이 만들어진점, 호주의 위치 등으로 볼 때, 이 거울은 북송이나 남송에서 제작되어 고려에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항주대륙가청동조자_"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거울이다. 명문으로 볼 때, 중국 "항주"의 "대륙가"라는 공방에서 제작되어 고려에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형태.내용의 거울이 고려와의 교류가 특히 활발하던 송대에 만들어진 점, 항주의 위치 등으로 볼 때, 북송이나 남송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출처:중앙박물관>
고위관리 무덤에서 나온 송나라 동전들(파주 권준묘 출토 송전), 파주 서곡리 출토
고려말 재상 권준의 무덤에서 나온 송나라 동전들이다. 이처럼 몇 세기 앞선 송나라 때 주조된 동전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는 것은 송나라와 고려사이의 경제 교류가 그만큼 활발하엿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실상 송나라 동전들이 고려사회에서 오래도록 화폐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들 송나라 동전은 다양한 시기의 고려 유적들에서 전국적인 범위로 출토되고 있다. <출처:중앙밥굴관>
송 상인들의 활약
고려와 송 사이의 교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상인들의 무역이었다. 특히 송 상인들의 고려 왕래는 고려 상인의 송 왕래에 비해 한층 빈번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된 경우만도 260여 년간 120여 회에 걸쳐 5천여 명의 송 상인들이 고려를 찾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송 상인은 주로 7, 8월경에 고려를 찾아왔고, 여진인.탐라인.일본인 등과 더불어 팔관회에 참석한 후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송 상인들은 양국의 외교가 끊어진 시기에도 고려를 찾아와 교역하였고, 두 정부 사이의 비밀문서나 승려들 사이의 서신 전달, 불교 전적 등의 구입요청.납품을 매개하는 일 등을 하기도 하였다. 11세기에는 대식국(아라비아)의 상인들이 3회에 걸쳐 고려를 찾아왔는데, 이 역시 송 상인들을 통해 고려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때문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백자 참외모양 병, 송나라
청백자 사자모양 베개, 청백자 주전자와 승반, 송나라
청자 연꽃무늬 합, 청백자 꽃모양 완, 송나라
송나라 승려가 보내온 목판으로 인쇄한 화엄경 해설집 (대방광불화엄경소 권재30), 보물 1124호, 14세기, 목판본, 송성문 기증
중국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 '대방광불화엄경'에 대한 징관의 해석과 부연 설명을 송나라의 정원이 각 본문 아래 기록하여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찍은 목판은 정원이 고려로 가는 상인을 통해 의천에게 전달한 것이다. 의천은 송나라에 유학할 당시 정원과 깊이 교유하였다. 이 책은 고려와 송의 대표적 고승들을 통해 이루어진 불교 교류를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인쇄 상태로 보아 실제 인쇄 시기는 14세기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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