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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감은사터 사리갖춤

younghwan 2010. 8. 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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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찰이었던 감은사지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에서는 각각 출토된 사리갖춤이다. 서탑 사리갖춤은 1959년에 해체 수리과정에서 출토되었고, 동탑 사리갖춤은 1996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다시 한번 출토되었다고 한다. 2개의 사리갖춤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아마도 2개의 사리갖춤이 출토된 시기가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먼저 출토된 서탑에서만 사리갖춤이 있을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것으로 보이다.

 감은사터 사리갖춤의 금동 사각 외함에는 네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수법이 상당히 뛰어나고 일반적인 우리나라나 중국의 조각수법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조각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을 만든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인 양지스님이 이 사리함을 조각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양지스님이 만든 조각 작품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조각양식과는 달리 표현을 아주 사실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서역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
 


1996년 감은사지 삼층석탑 동탑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사리갖춤의 외함. 이 외함 안쪽에 집 모양의 사리기를 넣고, 사리병을 안치하였다.


불국사, 황룡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 중 하나였던 사천왕사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상을 만든 조각가 양지스님이 이 사리함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사천왕상의 표현 기법이 중앙아시아의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 한다.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상


감은사 터 동탑 집모양 사리기. 실제 사찰 건물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그 제작 수법이 다른 사리기에 비해서 상당히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청동방울과 작은 금동불상 


사리병, 유리상자, 풍탁, 유리구슬

감은사터 동탑 사리갖춤 (통일신라, 682년, 보물 1359호)
감은사는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682년에 지은 절이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로 나란히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이 사리갖춤은 1996년 감은사 동탑 삼층 탑신의 해체 수리시 출토된 것으로서 통일신라 문화의 독창성과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드러내는 걸작이다. 금동 사각 외함의 네면에는 각각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장식되어 있다. 사리 외함 안에는 집 모양 사리기를 넣고, 사리기에 사리병을 안치하였다.

경상북도 월성군 감은사 터에 있는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가운데 1996년 동쪽에 있는 석탑을 해체·수리하면서 발견된 일괄유물 중 사리기 세트이다. 1959년에 발견된 감은사지서삼층석탑내유물(보물 제366호)인 청동제사리기와 구조가 비슷하며, 바깥을 감싸고 있는 외함과 안쪽의 사리기, 그리고 사리병 등으로 물있다. 외함의 네 벽면에는 사리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표현되어 있으며, 사천왕상의 주변에는 구름무늬를 새겼고 좌우에는 귀신의 얼굴 모양을 새긴 고리가 배치되어 있다. 사리를 모셔 둔 내함은 기단부, 몸체, 천개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의 네 모서리에는 별도로 만든 사자가 있으며 기단면에는 안상(眼象) 모양의 장식을 크게 투조하였다. 투조된 내부에는 신장상과 공양보살상이 각각 돋을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몸체는 사리를 넣어둔 복발형 용기를 중심으로 사천왕과 승상을 각 네구씩 따로 만들어 배치하였으며, 외곽으로는 난간을 돌리고 네 모서리에 대나무 마디 모양의 기둥을 세워 천개를 받치고 있다. 수정으로 만든 사리병은 높이가 3.65cm이며, 정교하게 금알갱이 장식된 뚜껑과 받침, 그리고 원판 수정제받침, 금동제 투조받침 등과 세트를 이루고 있다. 이 사리기 세트는 제작기법이나 유물 형태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조각사와 공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감은사지 서탑 사리갖춤의 외함. 사천왕상이 사방에 새겨져 있는데 동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감은사 터 서탑 집모양 사리기. 동탑의 사리기와는 그 형태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 월성군 감은사터에 있는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가운데 서쪽에 있는 석탑을 해체·수리하면서 3층 탑신에서 발견된 사리장치이다. 사리를 모시기 위한 청동제사각감과 그 안에 있던 사리기이다. 사리기를 넣었던 사리감은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발견 당시 몹시 부식된 상태였다. 사각형의 깊숙한 상자에 완만한 원뿔모양의 뚜껑이 있는 형태로, 전체 높이가 약 31㎝정도 된다. 사리감의 네 옆면에는 각각 사천왕상이 1구씩 새겨져 있고, 그 양 옆에는 각각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다. 주위는 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모두 동판에 따로 새겨 작은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꽃과 잎무늬로 가득 메운 가는 장식판을 이용해 단을 돌렸는데, 뚜껑의 둘레에도 마찬가지로 단을 돌렸다. 네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은 그 자세나 옷의 무늬가 중국 당나라의 조각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오히려 중앙 아시아의 조각상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청동으로 만든 사리기는 정사각형의 기단과 사리병을 모셔 둔 몸체, 그리고 수정으로 만들어진 보주의 3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치 목조 건축물을 연상케 한다. 사리기의 기단과 몸체 부분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나, 그 윗부분인 보개는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식되었다. 사리기의 기단은 안상을 새기고 신장상을 배치하였으며, 기둥을 세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단의 맨 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그 안에 4개의 주악상과 4개 동자상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사리병은 고리가 달린 그릇모양의 외피속에 넣고, 그 위에는 수정으로 만든 보주를 올려 놓았다. 감은사터의 사리장치는 오랜 세월에 많이 부식되어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각 부분에 나타난 섬세하고 조각이 아름다운 중요한 문화재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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