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전파된 이래 전국 각지 사찰에서 세워진 탑은 석가모니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나온 유골인 사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대상물이었다. 이 탑에는 보통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데 초기 불교 사원인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다. 현재는 그리스의 헬리니즘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간다라 불상의 영향으로 신앙의 중심이 불상과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부처의 사리는 그 숫자가 유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리갖춤은 탑에 사리를 봉안하는 보관함으로 사리는 일반적으로 유리나 수정용기에 담고, 그 용기는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넣어서 탑에 안치한다. 탑과 사리가 당시 불교 신앙의 중심이었기때문에 사리갖춤은 당시 금속세공을 비롯하여 모든 기술을 막라하여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었기때문에 그 예술적 가치 또한 상당히 높았던 것 같다.
이 사리갖춤은 불국사삼층석탑, 감은사지 삼층석탑, 미륵사지석탑 등 웬만한 유명한 탑에서는 대부분 발견되고 있으며, 그 내용물 또한 상당히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탑은 해체/보수하기가 쉽지 않고 도굴하기 또한 상당히 어렵고, 불교신앙에서 중용성이 아주 높기때문에 최근까지도 미륵사지석탑의 경우처럼 석탑의 해체/보수과정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고 있다.
황복사 터 삼층석탑 사리갖춤 (경주, 통일신라, 692년경). 통일신라 성덕왕이 신문왕, 효소왕, 신목대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이 있는 사리갖춤이다. 에밀레종으로 유명한 성덕대왕신종과 관련된 성덕왕은 불교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황복사 사리엄장구와 같이 봉안된 고배와 유리구슬
황복사는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아들 효소왕이 세운 절이다. 이 사리갖춤은 효소왕이 사망하자 706년에 성덕왕이 추가로 봉안한 것이다. 이 사리함은 704년 한역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형태, 금동 외함의 네 면에 99기의 탑이 점선으로 묘사되었다. 뚜껑 안쪽에는 신문왕, 효소왕, 신문왕의 왕비인 신목대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안하였다는 글귀가 남아 있다. 금제 불상 2점, 고배와 녹색 유리구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갖춤(경주, 8세기). 나원리오층석탑 사리갖춤에는 탑과 불상이 같이 봉안되어 있다.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갖춤의 외함과 사리병, 사리. 외함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이 사리갖춤은 통일신라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인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39호)에서 1996년 출토되었다. 금동 사각 외함의 네 면에 각각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사리함 안에는 금동제 구층소탑과 여래입상, 그리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종이조각이 있었으며, 사리는 여래입상의 대좌 아래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사리합.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사리갖춤이다.
봉인사 부도 사리갖춤 (남양주, 1620년, 보물928호). 사리갖춤의 구성요소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만든 수법이 뛰어나서 조선시대 사리갖춤임에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봉인사 부도 사리갖춤
이 사리갖춤은 광해군 때 왕실에서 세운 봉인사 석가세존 부도에서 출토된 것이다. 봉인사 부도는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87년에 되돌아와서 현재 경복궁에 자리하고 있다. 사리는 수정 사리병에 넣어 유제, 은제 그릇에 크기순으로 차례로 담아 마지막으로 대리석제 그릇에 넣고 비단 보자기로 싸 봉인하였다. 은제 그릇 뚜껑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고 밑바닥에 1620년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만들었다는 글귀가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정덕5년명 사리갖춤(조선시대, 1510년)과 사리그릇 (조선시대, 16~17세기)
사리갖춤. 경기도 안성에서 출토된 사리갖춤과 탑지
이 사리갖춤은 1972년 경기도 안성에 있는 어느 탑에서 수습되었다고 한다. 원통모양의 청동제 사리그릇은 윗단과 아랫단의 2단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향목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호리병 모양의 사리병은 사리그릇 윗단에서 발견되었으며, 주머니에 넣어져 있었다. 한편 곱돌제의 탑지에 새겨진 글씨에 의해 이 사리갖춤은 997년 장명사의 오층석탑에 봉안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리그릇 (부여, 고려시대, 14세기), 부여에 있는 보광사지탑 발굴된 금동제팔각당형사리갖춤과 사리탑(고려,14세기)이다.
사리탑과 사리그릇(고려, 14세기)
사리갖춤
기원전 6세기경 석가모니불이 열반에든 뒤 그의 제자와 신도들은 부처의 시신을 화장하여 스투파(탑파,탑)에 안치하였다. 사리는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이며, 사리갖춤은 사리를 담는 그릇과 그릇 속에 넣은 불상, 작은 탑, 경전과 구슬, 장신구 등의 공양물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유리 또는 수정 용기에 사리를 담고, 이 용기를 다시 금, 은, 동, 철, 돌 등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차례로 넣어 탑에 안치한다. 한국에는 6세기 중엽에 사리 신앙이 전래되었다. 통일신라 때에는 왕실과 귀족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많은 탑을 세우면서 사리 신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난간 위에 드림장식이 있는 집 모양 사리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사리그릇의 모양이 점차 원통형 또는 팔각형 등으로 바뀌면서 종종 바깥 그릇으로 도자기가 쓰였다. 고려 후기에는 라마교의 영향으로 라마탑 형태의 사리기도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사리그릇의 형태가 단수내 지면서 뚜껑이 있는 원형의 그릇이 널리 사용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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